고독한 밤의 코코아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이번주 일요일에는 드물게 둘의 휴일이 겹쳐서 일찌감치 약속을 잡아놨다. 나는 부모님과 사니까 사실은 외박을 하면 큰일이지만,

"어쩌면 미오코네 집에서 자고 올지도 몰라" 하고 친구 이름을 말해뒀다. 지금까지 서너 번 그랬는데 그때마다 열한시쯤에는 귀가했기 때문에 엄마의 신용은 있었다. 나는 그날도 미오코의 이름을 꺼내뒀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준비 만전이었다.

그가 다섯시쯤 온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점심때가 지나 머리를 세팅할 생각이었다. 머리가 엉망이었다. 화장은 네시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입을 옷을 고르고 다리미질을 했다.

가방 안에는 세면도구까지 넣었다. 어쩌면 샤워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가슴 두근거리는 스릴이 있었다. 여자들의 소지품은 가짓수가 많기도 하다. 나는 생각을 바꿔먹고 큰 가방을 가져가기로 했다. 앙증맞은 팬티까지 챙겼다. 일이 잘 풀리면 좋겠는데.

마치 여행 준비를 하는 것처럼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정신없이 챙기고 있는데,

"좀 이르긴 하지만" 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그가 왔다.

"이따 밤에 일을 하게 돼서 그러는데 지금 놀러가면 어때? 좀 쌀쌀해도 날은 화창해. 왜건이지만 회사 차도 가져왔으니까 조금 멀리까지 다녀오자."

나는 머리도 화장도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번들거리는 맨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정해놓은 시간에 정해놓은 방법으로 와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왜 이렇게 느닷없는 짓을 하는 거예요!"

나는 말했다.

"왜 이렇게 멋대로 구느냐구요, 내게도 사정이란 게 있단 말이죠……"

"……"

그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일찍 와서 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충직한 나는 내 계획을 충직하게 실행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p, 24~25 (충직한 연인 中)​

 

 

 

 

 


 

 

 

 

 

 

 

 

서른 넘어 함박눈》이라는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작가, 다나베 세이코.

이 책을 보자마자 작가도 마음에 들었고, 《고독한 밤의 코코아》라는 책 이름도 예뻐 찜목록에 넣어두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찜목록에서만 잠자고 있던 이 책을 이번에 도서관에 갔을 때 보게되어, 빌릴 수 있는 최대 권수인 4권을 손에 들고도 못내 아쉬워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오빠가 빌려주었던 책입니다.

저번에 읽었던 책도 사랑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집이었는데 이 책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집이네요. 《서른 넘어 함박눈》이 서른 즈음의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이번에 읽은 《고독한 밤의 코코아》는 코코아처럼 달콤하기도 하면서 씁쓸하기도 한, 그러한 사랑을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였달까요.

 

인터넷 서점에 적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보니

서른 넘어 내리는 눈은 차분하고,

스물 넘은 나의 밤은 언니의 밤보다 고독하다.  

라고 적혀있네요. 그만큼 사랑을 하는 20대 여자의 감정을 잘 다루고 있는 소설들이었어요.

김칫국을 들이마셔보기도 하고, 상처를 받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에 설레보기도 하고, 너무나 평범함에 실망해보기도 하고, 이런 감정들을 이제 느끼기 시작할 갓 20대가 된 스무살 여자들부터 이런 감정들엔 익숙하다못해 뻔히 다 꿰뚫고 있다 생각하는 30대가 되기 직전의 여자들까지. 두루두루 읽어도 좋겠어요. ​

보통 단편소설집의 전체 제목을 정할 때, 그 소설집에 속한 단편들 중 가장 임팩트 있는 소설의 이름을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다나베 세이코의 책은 항상 이렇게, 단편들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아요. 어느 것 하나에 애정을 치우치지 않고 고루고루 정을 주는 느낌이 들어, 이러한 세심함 마저 좋아요.

포스팅의 맨 위에 적어두었던 '충직한 연인'이라는 단편의 내용이 저에겐 가장 공감이 되어 저렇게 적어보았는데, (저도 가끔 저렇게 제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되려 투정을 부리곤 하기 때문이었을까요,) 이 글을 읽고계신 다른 분들은 어떤 사랑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는지 궁금하네요. 요즘은 이렇게 저 혼자만이 아닌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제가 되도록이면 포스팅에 줄거리를 적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기다릴게요. 많은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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