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일하지만, 결국 손발처럼 사용하는 책은 내 주위 반경 1미터에 갖다 둔 분량 정도다. 이 책들은 책장에서 꺼내 책상 위에 쌓아두고, 발밑이나 바닥에도 책의 탑이 몇 개쯤 쌓여 있다. 전체 장서량에 비하면 소비세에도 못 미칠 만큼 미미한 분량이지만, 이 책들이야말로 일하는 데 쓸모가 있다. 문제는 책상 주변에 쌓아올린 책과 격납고라 할 만한 책장 사이에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앞에 닥친 일을 끝내고 필요 없어진 책을 원래 책장에 다시 꽂는다면 새로 필요해진 책을 내 주위로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책을 꽂아둘 책장은 이미 가득 차 있고, 책장 앞도 바닥부터 쌓아올린 책의 벽이 켜켜이 쌓여 있기에 일을 마치고도 책은 돌아갈 곳이 없다. 책장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며, 책상 주변에 뽑아둔 책 수백 권만이 진정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료다. 그렇다면 나의 다다미 스물한 장 규모의 지하실에 헌책방 한 채를 옮겨온 듯한 서고를 대체 뭐란 말인가. -p, 61

  

 






 








 

오늘도 어김없이 책이 든 택배를 잔뜩 받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렇게 책을 집안으로 들이는 나를 보면서 가족들은 '저걸 또 어디에 쌓아둘까' 염려하는 모습이다. 다른덴 크게 물욕이 없어 옷도, 악세사리도, 화장품도 많이 사들이지않는데 (아니 거의 없을 정도인데) 책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다. 지금도 더이상 책장엔 책을 꽂아둘 공간이 없어 책장 주위에 위태롭게 쌓아둔 책들과 잠들기 전, 눈 뜨고 일어나 잠깐씩 보는 책이 베개 위에 한 권, 그렇게 읽어낸 책들이 베개 옆에 쌓여있고, 컴퓨터 책상 위에도, 식탁 위에도, 방에 있는 책상 위에도 쌓여있다. 모른척 지냈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렇게 둘러보니 어우, 지저분하다.


이렇게 수많은 책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아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읽어본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


이 책을 읽으며 책을 좀 정리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되려 이 책에 등장한 엄청난 장서가들을 보고,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스케일에 '난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네? 더 사모아도 되겠는데?' 하고 생각해버렸다.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목조로 지어진 집이 많아 장서가들에겐 불리하다. 책이 쌓이면 책의 무게에 의해 집이 휘거나, 바닥이 뚫려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인데 책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임에도, 그래도 책에 깔려죽을 수 있어 좋다! 생각하며 웃어넘기는 그들을 보면서 황당해서 헛웃음이 자꾸만 나왔더랬다.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몰라 같은 책을 세네권씩 사들이는 그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엔 미련하고, 답답하고, 이해가 안되는 사람일지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책에 깔려 죽을 만큼은 아니지만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른 나도 요즘은, 다신 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려하고, 소설류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생길때마다 그 작가에 대한 책을 전부 다 소장해야 하는 버릇은 고치지 못하겠다. 도저히. 


그런 의미에서 절판된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황무지에서 사랑하다》를 소장하지 못해... 헛, 방금 검색해보니 중고로 판매하는 분을 찾아냈다. 


얼른 주문하러 가야지.

           








구사모리의 집에서 유일하게 책이 없는 공간은 욕조였다. 욕실 안 탈의실에도 책이 있었다. 어느 날, 목욕을 하려다가 욕실 문 앞에 쌓아둔 책더미가 무너지며 그대로 욕실에 갇힌 웃지 못할 이야기가 《책이 무너진다》에 담겨 있다. 이 책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장서가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침대에 누웠을 뿐인데 책이 안면을 치질 않나, 목욕을 하려 했을 뿐인데 욕실에 갇히질 않나(밀실 살인이 되었을지도). 3·11 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에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사모리'다. 설사 지진으로 책에 깔려 압사 당할지라도 오히려 평생의 숙원이라며 기뻐했을지 모른다. -p, 64



현재는 고향인 지방도시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은 요코하마 쓰루미대학을 다녔고 "학생 시절에 식비를 아껴 책을 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책 외의 취미는 없으나 후회는 전혀 없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여기도 있구나 싶어 빙긋이 웃음이 났다. 다만 그는 치과의사로 일하며 수집을 해왔고 많은 글을 읽고 쓰기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점이 나와 다르다. 책을 좋아하던 나가야마 소년은 중학 시절 여름방학 때, 삼일밤낮을 독서에 빠져 있다가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때는 '이대로 실명해 평생 책을 못 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질렸다. 다행히 얼마 후 눈이 떠져 별일 없이 지나갔다. 그때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몸을 아껴가며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진리를 터득했다. 흥미로운 일화다. -p, 172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1979년에 오자와쇼텐이 출간한 요시다 겐이치의 번역 시집 《포도주의 색》을 예로 들어보자. 대리석 무늬의 마블지로 만든 책갑에서 꺼낸 책은 기름종이에 싸인 새하얀 프랑스장정이다. 손에 들고 팔랑팔랑 넘기면 세이코샤의 옛날 한자와 옛날 가나 활자가 날아든다. 책갑에서 책을 꺼내, 읽기 전에 만지고, 책장을 펼치는 동작에 '독서'의 자세가 있다. 그에 수반하는 소유의 고통이 싫지 않기에 '장서의 괴로움'은 '장서의 즐거움'이다. 제 생각이 고리타분한가요? 정말 그런가요? 전 이것이 결정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데. -p,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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