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빌라 - La Villa de Paris
윤진서 지음 / 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바랄 뿐이다. 부디 나의 삶에 사랑이 넘치기를. -p, 193

 






 








《파리 빌라》는 배우 윤진서가 쓴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관심을 갖게 되는 책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편견을 가진 채 보게되는 것도 사실인지라 몇몇 서평만 보더라도 소설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배우 윤진서에 대한 평가글이 쓰여있어 안타까웠다. (어쩌면 나도 그런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친구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음에 이별을 겪으면 마냥 힘들어하는 것 대신 훌쩍 여행을 가버릴거야. 그땐 내 정신이 온전치 못할테니까 이왕이면 평소에 쉽게 결정하지 못할 해외여행으로.' 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도 이별 후 여행을 한다는 점이 내 생각과 닮아 괜히 반가웠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혼자 청승도 떨어보고 뭐가 잘못이었을까 방해 받지 않고 떠올려보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슬픔을 잊어보는 것도 내가 생각했던 '이별 후 여행'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내 또래 친구들은 이미 여러번의 이별을 경험한 경우가 많은데, 새로운 사람을 만났어도 그 이전의 연애에서 자꾸만 영향을 받는 모습을 많이 본다. 일단 나부터도 이전의 연애에서 경험했던 안좋은 일들을 다시 경험하면 덜컥 무서워지기도 하고, 문득 이전의 연애보다 좋지 않아도 무섭고, 좋아도 언젠가 이 좋음이 끝나진 않을까 무섭고. 이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파리 빌라》의 주인공처럼 사랑을 할 땐 그 사람과 나밖에 보이지 않는, 영원할 것 같은 세상에서 살다가, 우리에겐 심각하지만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문제로 이별을 하고나면 더이상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거부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하지만 그녀는 긴 여행 끝에 그런 자신의 모습마저 같이 감내해줄 사람을 만나서 맞서나갈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결국 언젠가는 사랑 앞에서 도망가지 않게 될 것이었다.


요즘 내 연애관은, 친구들끼리 종종 하는 말인데 '연애는 해도 지랄 안해도 지랄이니 이왕이면 하면서 지랄인게 낫다고.' 그러니 이전의 연애가 생각나 힘들어하고, 이 연애도 언젠가 끝날까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이왕 하는거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지지고 볶고 그 순간에 충실하자는 것.


아래에 따로 정리를 해두겠지만, 이별 후 사랑 앞에서 도망치고만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좋을 구절들이 참 많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배우 윤진서의 독특한 분위기가 녹아있는 소설이어서인지 문득문득 이 소설의 주인공의 모습으로 윤진서를 떠올리며 읽고 있다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배우 윤진서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그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소설 또한 좋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잠시 혹은 영원 사이의 시간동안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불안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느끼기 위하여 여러 상태로 자신을 몰아간다. 어쩌면 그 속에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기도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사랑이라는 확신이 더 강렬하게 들어서일 것이며 어쩌면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p, 28



다음번 그의 집에 갔을 때 나는 와인을 한 잔만 마시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잔을 비울 때마다 다시 잔을 채우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물었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물었으며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들에 대해 다시 물었고 결국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더이상 우리의 식탁에는 인생의 부정적인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들은 미화되어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기 위해 지나왔던 과거가 되었으며 그렇게 그와 나는 서로를 위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그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p, 36~37



"있잖아, 만약에 네가 누군가에게 실연을 주었다면 아마도 그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을 거야. 네가 당했던 실연만이 진짜 사랑이었을 거야. 이유를 불문하고 끝까지 곁을 지키지 못한 쪽은 사랑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거야." -p, 55



"사랑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어. 그 하나의 끈을 계속해서 엮어나가는 거야. 한 번 끊어질 때마다 사랑이 없어졌다고 믿어버리면 사랑에 도달할 수 없어. 결국 네가 하는 사랑은 어떤 색도 아닌 너의 색을 띠게 되지. 원래부터 끈은 스스로 만들고 엮게 되어 있는 거야. 사랑을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긴 끈을 갖게 되는 거야." -p, 105



그가 떠나고 나서부터는 달라졌다. 나의 슬픔이 떠나가고 그를 잠식했던 슬픔의 이유를 짐작하기 시작했다. 곧 두 사람분의 슬픔이 밀려왔다. 이전까지의 나는 사랑이란 상대방의 슬픔까지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몰랐었다. 상대방의 슬픔까지도 곱씹고 나야 무엇이 잘못된 건지 내가 아는 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또 무엇이엇는지 제대로 짐작할 수 있었다. 만났던 기간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아파했고 영화를 볼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마음껏 술에 취할 수도 없었다. 그의 슬픔을 곱씹는 순간 속에는 마치 그가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들어 있었다. 마치 그를 실제로 보는 듯해서 가끔은 그가 떠났다는 것마저도 잊어버리는 순간이었다. -p, 117~118



원래부터 나란 인간은 척을 잘한다. 초연한 척, 관심 없는 척, 괜찮은 척. 사실 그렇게 척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그렇게 믿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겐 눈물이 날 일이라곤 별로 없었다. 특히나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이라고는 인생에서 꼽을 만했다. 그렇지만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이 자주 눈물을 흘린다. 새벽녘 와인을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그랬고 아비뇽에서 끊어진 다리를 보고 나서도 그랬고 조금 전 잠에서 깨어나서도 그랬다. 이러다가는 밥을 먹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배낭을 메다가도 눈물을 흘릴지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척을 잘하는 여자는 사라지고 최소한의 슬픔도 숨길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p, 133



"뭐야 대체? 그렇게까지 잊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니야. 문득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고나 할까?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이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었어."

"다른 인생을 살려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어디선가 그런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 배우가 한 영화를 마치고 다른 영화로 넘어갈 때 다른 인생으로 넘어가는 기분이라는.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라 생각했어."

내 말을 효정이 받았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배우들은 한 영화를 마쳤다고 해서 그 세상을 부정하고 떠날 수 없을 거야. 우린 그 영화 속 배우를 영원히 기대할 테니까. 영화에서 한번 만들어진 세상은 영원히 그 자리에 존재한단 말이지. 네가 이전의 자신을 부정한다 해도 그 시간의 네 인생은 사라질 수 없을 거야. 지금의 네가 존재하는 한, 아니 지금의 네가 사라진다 해도." -p, 159~160



"그 사람도 참. 울부짖으며 거리에서 고래고래 화를 내고 당장 그 여자에게 전화를 하라고 소리친 여자한테 어째서 청혼했을까? 나라면 그 길로 도망갔을 거야."

"나도 똑같은 질문을 그에게 했지.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하길, 지금까지 만난 프랑스 여자들은 그런 적이 없었대. 그렇게 지독하게 자신만을 사랑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대. 절대로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는 거지. 재미났던 건, 미친 사람처럼 따지며 울부짖는 나를 보는데 기묘하게 기분이 좋았다는 거야. 본능적으로 거부할 수 없겠더래. 그러고는 이토록 충분히 사랑받고 있으니 이 여자라면 만족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더래. 그러니 어쩌면 너도 언젠가 너의 사랑 앞에서 도망가지 않게 될지도 몰라. 이런 종류의 사랑이 요즈음 시대에 흔하지 않아서 내가 바보 같은 여자로 느껴지겠지만, 너 역시 자신이 완전히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할 때 오히려 완벽히 마음을 내주게 될지도." 

완벽한 사랑을 받는다는 말 앞에서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말에서 바람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데스밸리 공원과 요세미티 공원을 유랑하듯 떠돌며 몇 개월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 숨이 멎을 만큼 뜨거운데다 흙과 태양,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있다보니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되더라고. 삶과 죽음의 중간 지점에 딱 들어와 있구나. 숨이 턱턱 막히며 몇 개월 지낸 끝에 느낀 거라고는 고작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어. 높이가 엄청난 큰 바위로 둘러싸인 곳을 지나기도 했어. 처음에 난 그 굉장한 광경을 보면서 무섭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거든. 하지만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무력하다고 느껴지면서 정말이지 두려움이 뭔지 알게 되었던 것 같아. 금방이라도 내게로 쏟아져내릴 것 같은 거대한 돌덩이 앞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무기력함이었지. 대자연 앞에 선 나의 육체의 무게가 너무도 가벼워 오히려 그쪽으로 소유되는 기분. 그리고 사랑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 놓여 있는 인간에 대해 생각했어.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사랑이 내게로 온다면 결국 어떻게 될까 하고. 내가 자연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기력하게 휩쓸리고, 서로의 육체에 빨려들어가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겠지.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할 거야. 그렇지만 어떤 면으로는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을 거야. 네가 보여준 사랑의 표현들이 인간적이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에 그 역시 너의 사랑 방식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본능적이었을 거야. 넌 마치 엄마를 찾는 아이 같았잖아." -p, 163~165



굉장히 소중한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슬픈 느낌이 든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그 대상과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동시에 그것의 의미를 읽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소중하다고 느낀 시간은 아주 작은 시간임에도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 힘을 위해 그만큼 아파온 것일 테니까. 지금 내가 굳이 역사라는 단어를 부여한 것은 모든 것에 종말의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슬픔을 느끼면서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고 그와 함께 용감히 종말을 부정할 수 있는 세상 속으로 기꺼이 걸어들어갈 때 마침내 사랑의 힘이 발휘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알아본 대가로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듯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사랑의 대가라고.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가끔 길을 잃고 방황하며 상대방에게 이곳이 어디냐 묻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의 의미가 변해버린 세상에 이전의 의미로 현재를 해석하려 하는 어리석은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랑, 그것만이 신이 인간에게 준 천국이란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사랑할 때, 이전의 경험들을 지우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자세로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소중한 것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슬픔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슬픔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그 슬픔의 에너지로 인해 심장을 다시 뜨겁게 가열시킬 것이며 가열된 심장은 더욱 붉어져 당신의 눈을 멀게 할 것이고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비교와 가치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눈과 귀를 가지고 자신만의 가치와 의미로 세상을 해석하게 될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사랑에 동반된 슬픔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일정 부분을 버려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안녕일지도. -p, 166~168



"사랑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대가가 아닐까?"

"하지만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 흔적들을 지우는 과정과 시간 때문에 지치는 것 같아요.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것 같고요. 그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다기보다 더 힘든 것은 그 시간을 진짜로 송두리째 지워야 한다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이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허무함과 함께 싸우면 좋을 사람을 만나면 좋겠구만. 사라져버리는 사람 따위 말고."

"그런 걸 함께해줄 사람이 있을까요?"

"결국 세상은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지 않나? 함께해줄 사람이라고 믿으면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도 있을거야. 안 그러나 친구?"

노신사는 효정을 향해 물었다.

"그러길 바랐는데 이제는 믿지도 않는 걸 찾아서 보여줘야겠더라고요."

"그 싸움이야말로 정말 힘들겠는데? 믿지도 않는 걸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하다니. 친구. 자네 이름이 뭔가?"

"폴린입니다."

"폴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 보여주는 게 뭔가?"

"그것이야말로 사랑 아니겠습니까?"

"자네가 나보다 낫구만. 나는 이제서야 사랑이 무엇인 줄 알았는데.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증명시키고 설득해야 사랑이 된다네. 그 이전 단계까지의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사랑이 아니거든.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에게라도 그것을 증명시키고 간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작가가 아니겠나." -p, 183~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p, 57

 







 







까칠한 남자의 매력은 도통 못느끼던 나였는데 이 책을 읽고나선 까칠한 남자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제목에서부터 '이 소설은 오베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야' 라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데, 읽는 내내 연예인 박명수 생각이 났다. 그만큼 '오베'는 박명수처럼 까칠까칠한 남자였고, 박명수처럼 어마어마한 사랑꾼이었다.


그의 첫인상은, 만약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면 마주치기 싫어서 피해다녔을 수도 있겠다 싶을만큼 까칠까칠. 원리원칙을 중요시해 그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복수(?)를 하며,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가 침범하는 것을 매우 불쾌해하는 그러한 모습이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어갈수록 보여지는 따뜻한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투덜거리면서도' 이웃이 아프면 병원에 데려다주고, '투덜거리면서도' 이웃집에 수리할 게 있으면 가서 수리해주고, '투덜거리면서도' 추운 겨울에 갈 곳 없는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는 이러한 따뜻한 모습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매력은 <오베였던 남자와 기차에 탄 여자> 라는 챕터에서 드러나는데, 그가 (미래의 아내가 되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보고있자면, 그의 아내가 한없이 부러워질 뿐이었다. 세상 모든 여자가 바라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남자였달까. 떠벌떠벌 말로만 표현하는 사랑이 아닌 묵묵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이었기에 (또한 여자가 충분히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행동이었기에). 


이 소설은 까칠한 남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책이기도 했지만, 여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기도 했다. 연애애 서툰 남자들이 한번쯤 읽어보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오베처럼만' 한다면 그는 그녀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p, 57



근 40년 동안 살면서, 소냐는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수백 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들에게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혔다. 

같은 기간 동안 그녀는 오베가 셰익스피어 희곡을 한 편이라도 읽도록 하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택 단지로 이사하자마자 그는 몇 주 동안 내내 저녁마다 헛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그가 작업을 마쳤을 때, 그녀가 본 것 중 아름다운 책장들이 거실에 놓였다. 

"책들을 어디에 보관은 해야 하잖아."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드라이버 끝으로 엄지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들을 콕콕 찔렀다. 그녀는 그의 품에 파고들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p, 208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p, 280~281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p, 410~4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ust Me - 완벽한 여자는 멍청하다!
안 소피 지라르.마리 알딘 지라르 지음, 이주영 옮김 / 시공사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제로 우리는 지금까지 잡지, TV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며 또 모든 것을 가져 주눅 들게 하는 여자들을 일상에서 마주치며 완벽한 여자들을 닮기 위해 애썼다. 


그동안 우리는 노력할 만큼 했다! 더 나은 여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 그런데 우리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완벽한 여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 이거 하나만 바로 알자! 완벽한 여자는 멍청하다!


이 책이 여러분을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여러분이 가진 단점을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키워드를 가르칠 것이다. 


- 프롤로그 中

 












 

지라르 자매의 《Just ME : 완벽한 여자는 멍청하다!》라는 이 책은 다른 사람과 비교만 하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여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만 봐도 예쁜 여자, 옷 잘 입는 여자, 감성적인 사진을 잘 찍는 여자, 몸매가 좋은 여자, 멋진 글을 쓰는 여자, 청순한 매력을 가진 여자, 섹시한 매력을 가진 여자, 화려한 삶을 사는 여자, 명품을 잔뜩 가지고 있는 여자 등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나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릴만한 여자들이 수없이 널리고 널려있다.

이런 여자들을 닮기 위해, 아니 따라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봐도 달라지는 건 점점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일 밖에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완벽한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한 규칙'들을 알려준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완벽해지기도 모자란 와중에 완벽해지지 않기 위한 규칙이라니. 기가 찰 수도 있겠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래,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라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완벽한 여자 = 세상을 너무 빡빡하게 사는 멍청한 여자' 라는 공식이 그려진다면, 축하한다! 이제 완벽하지 않은 여자로 세상을 재미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왕에 망한 거' 수칙을 배웠으니 그동안 자잘한 실수에도 나 자신을 못살게 굴었던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저녁 6시 이후론 금식해야지!' 하는 지키지 못할 다짐 따위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라면 봉지를 뜯고 물을 끓이는 것으로 '이왕에 망한 거 계란이랑 김치도 넣어먹을까?' 하며 행복을 느끼고 (살도 얻게 되었다).




  


 







 

배운건 썩혀두지말고 맘껏 응용해보고, 





 







 

그럼에도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면 초콜릿 과자 남은 것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즉시 쓰레기통을 비우라는 중요한 팁도 알려주고 있다. 초콜릿 과자 위에 표백제를 부어버리던가 하는 무시무시하지만 무시할 수 없이 끝내주는 팁까지.




 

 








살찌지 않는 여자는 먹지 않는 여자다. 

살찌지 않는 여자는 먹지 않는 여자다.

·

·

·

이 부분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정답! 




이 책을 남자들이 본다면 여자에 대한 환상이 깨질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완벽한 '척'하는 여자는 많아도 정말 완벽한 여자는 판타지에나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남동생들이 누나의 집과 밖의 180도 다른 모습을 보고 치를 떤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의미에서 내 남동생이 가끔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날 보면서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갑자기 떠올랐다.)


책의 제목이 《Just ME : 완벽한 여자는 멍청하다!》이다보니 여자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지만 남자든 여자든 가장 좋은 비교는 자기 자신과의 비교가 아닐까 싶다. 타인과의 비교보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하는 비교는 얼마든지 추천하고 싶다. 다만,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고 '완벽한 나' 보다는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바랄 것.










▲ 


언젠가 힘들고 우울하다고 했더니 힘내라며 이렇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캔커피를 기프티콘으로 보내준 언니, 

이 책을 읽고 마침 생각이 나서 집에 오는 길에 바꿔왔다.


완벽하지 않은 나라도 이렇게 날 위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 황경신의 한뼘노트
황경신 글, 이인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듣는다는 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듣는다는 건 앞당겨 듣거나 미룰 수 없고 그 즉시 하고있던 모든 일을 멈추고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친 채 때로는 조언을,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공감을 표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멀티가 안되면서 문득문득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사람은 듣는다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진다. 그래도 친구들은 내가 잘 들어준다며 좋아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있다고 느껴지는 사람과는 다시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가 않았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대화 나누고 싶은 사람'으로 여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종종 건성으로 듣게 되는 못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난 이 사람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이런 기준을 세워놓았다.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샜을 때 혹은 어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 그래서 아까 하던 이야기!! 어떻게 됐다구?" 라고 물어봐주는 것, 만약 내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이야기가 끊기고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왔는데, 내 이야기를 다시 물어봐주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 뿐만 아니라 '아, 이 사람은 내 이야기를 아예 듣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실망감이 커져버린다. 




그래서인지 모른다. 

내가 책 읽는 행위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의 말을 듣는 행위라 말할 수 있겠다. 다만 내가 듣고 싶을 때 듣고 싶은 만큼 들으면 되고, 내가 그의 말을 듣다 다른 생각에 빠져도 날 나무라지 않으니 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대화인가. 


이번에 난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를 통해 황경신 작가님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녀의 말을 들었다. 물론 내가 귀 기울이고 싶을 때 귀를 기울였고, 한번 더 듣고 싶은 말은 다시 한번 돌아가서 귀를 기울일 수 있었으며, 그녀의 말을 듣다 다른 생각에 빠져도 그녀는 날 나무라지 않았다. 막 내뱉는 말이 아니라 오랜 생각 끝에 정제되어 아름다운 언어로 내뱉어진 이 말을 내가 감히, 이렇게 내멋대로 귀를 기울여도 되는걸까 싶어  한 글자 한 글자 더 귀를 기울이며 들었다. 



마치 그녀가 감추고 있는 것들이 출렁이다 문득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찰나를 낚아채기 위해, 마치 캄캄한 밤의 끝에서 동그란 해가 솟아올라 모든 세계를 환하고 투명하게 밝히듯이. (p, 44)        







무언가를 조율한다는 것은, 의견이나 삶을 조율한다는 것은, 다른 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고유한 음을 찾아주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므로. 피아노의 팽팽한 현을 잡아당겨, 도로 태어난 건반이 도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처럼. 그러므로 도인 당신과 미인 내가 한 음 높아지고 한 음 낮아져 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의 소리로 빛나고 나는 나의 소리로 당신의 세계를 밝혀, 멜로디는 화음이 되고 화음은 노래가 되고 노래는 시가 되어주기를, 이렇게 우리 하나의 세계에 담겨, 어깨를 나란히 하고. -p, 15~16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떨림의 순간에서 떨어져 나와, 어리둥절한 채, 점점 큰 원을 그리며 번져가는 물결에 밀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중심을 그리워한다. 내가 이만큼 이쪽으로 밀려오는 동안, 당신은 저만큼 저쪽으로 밀려가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돌멩이는, 최초의 돌멩이는 이미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마치 처음부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리고 마침내 물결도 가라앉는다. 어른어른, 물 위에 부질없이 새겨놓은 마음이나 혹은 마음 비슷한 것, 맹세까지는 아니라도, 그런 것을 남기고.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의 생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떨림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들과 그들이 주고 간 여운, 혹은 망각. 삶은 계속되고, 살아가는 동안 아무것도 되풀이되지 않는다. -p, 19



그러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게 되면 뭔가가 과해지고 뭔가가 모자란다. 말을 아껴야 할 때 너무 많은 말들을 해버린다거나, 손을 거두어야 할 때 옷깃을 붙잡는다거나. 그런 식으로 한 번 템포가 뒤틀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저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결국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당신이 감추고 있는 것들이 출렁이다 문득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찰나를 낚아채기 위해. 마치 캄캄한 밤의 끝에서 동그란 해가 솟아올라 모든 세계를 환하고 투명하게 밝히듯이. -p, 44



나를 읽으려 했던 당신과, 당신을 쓰려 했던 나는, 어쩌면 서로의 덧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마디쯤 덧붙여도 괜찮겠지. 더 이상 덧댈 것도 덧날 것도 없는 덧없음, 어느덧 지나간 그 짧은 순간에 대해. -p, 50



수석 면접관은 인터뷰를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자신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오로지 메모에만 열중하고 있는 기자를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까닭은, 들려주고 보여주기만 하는 이유는, 그게 바로 인생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친절하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에 귀를 기울이는 인생을 본 적 있습니까?"

기자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귀를 기울이는 인생은 없다'고 갈겨쓴다.

"당신은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할 겁니다. 듣지 않고, 보지 않고, 모든 기회를 놓쳐버린 그 사람들처럼."

수석 면접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휘적휘적 걸어 나간다. 펜의 끝을 입에 물고, 기자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p, 124



사소한 무심함으로 울다가 사소한 다정함으로 웃는다. 사소하게 기대하다가 사소하게 실망하고 사소하게 위로를 구한다. 사소하게 숨기거나 사소하게 드러내거나 사소하게 자랑하다가 사소하게 후회한다. 사소한 인연이 사소한 기억으로 가까워졌다가 사소한 망각으로 멀어진다. 나의 삶이 온통 사소함으로 채워져 있으나 사소한 행복은 가볍지 않고 사소한 견딤이 쉽지는 않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절망이 사소하지가 않다. -p, 151



당신이 언제까지나 나에게 낯설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서투름은 나의 진심을 증명하는 것임을 믿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모든 익숙함에 대해 경계하는 것이 나의 삶임을, 무엇인가에 익숙해지는 순간, 꽃처럼 시들어버릴지도 모를 것이 또한 진실임을, 한없이 차오르는 것과 한없이 비어가는 것의 동일한 무게를, 희미하고도 선명한 시간의 직선과 곡선들을,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은 모순투성이의, 그 친밀하고도 낯선 엉망진창의 뒤엉킴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좋겠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좋겠다고. -p, 157



놀라운 일은, 가장 환한 빛이 가장 캄캄한 어둠을 품고 있으며 끝은 시작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흡사하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함께 걸었던 길이 끝날 때, 누군가 떠나야 하고 누군가 남아야 하는 일이 그토록 당연하다는 것이다. 마땅히 그러하여 그리 되었던 일들이 밝았다 어두워지는 동안, 혹은 빛으로 떠난 사람과 어둠으로 남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안, 빛과 어둠을 한 몸에 품고 있는 얼룩들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나를 닮은 누군가가 어느 허공에 새겨지지만, 나는 그 얼굴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한다. -p, 178



한때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진다. 나란하던 삶의 어깨가 조금씩 떨어지더니 어느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특별한 일이 생겨서라기보다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맞았다가 안 맞게 되었다기보다, 조금씩 안 맞는 마음을 맞춰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쪽이 싫기 때문이 아니라 저쪽이 편안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때 가까웠으므로 그런 사실을 털어놓기가 미안하고 쑥스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다 만나면 서로 속내를 펼쳐 보이는 대신 겉돌고 맴도는 이야기만 하다 헤어진다. 삶이 멀어졌으므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지 못한 채 멀어진다. 실망과 죄책감이 찾아오지만 대단한 잘못을 한 건 아니므로 쉽게 잊는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어느 날 무심하고 냉정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새삼스럽게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와버렸다.


삶이란 둘 중의 하나,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런 것들이 쌓여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p, 187~189



내가 네가 어떤 여자였는지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그해 여름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더웠고 습했다. 너는 오래도록 갈증에 시달린 사람처럼 성급했고 네가 가져온 시간의 뭉치들은 각이 졌거나 갈라져 있었다. 나는 겁이 났지만 뻔한 여자처럼 굴고 싶진 않았다. 뻔한 여자. 말하자면 진심을 보여주지 않는 여자. 그러면서 진심을 말해달라고 조르는 여자. 모든 것을 물어보는 여자. 당신은 누구냐고, 당신에게 나는 무엇이냐고,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거냐고,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갈 거냐고.


내가 단서를 찾지 못하는 사이, 너의 눈빛은 차가워졌다. 너무 가까웠던 것들, 너무 빨랐던 것들, 너무 이질적이었던 것들에 묻혀 머뭇거리는 사이, 너는 멀어졌다. 옷에 묻은 흙을 털듯, 대단치 않은 기억들을 털어냈다. 마른 땅을 헤치고 동물의 주검을 묻듯, 토막 난 기억을 묻어버리라고 내게 명령했다. 그래도 나는 묻지 않았다. 왜, 라는 부사를 쓰지 않았다. 다만 소파에 몸을 묻고 그 위태로운 상승을 수용했다. 어떤 사실은 진실이 될 수 없고 어떤 진실은 사실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해, 그 처연한 하강을 간직했다. 일곱 개의 계단을 사 초 만에 뛰어오를 수 있도록. 그 계단 어디쯤에 있을 너에게 두 번 다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도록. -p, 209~2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샘터 2015.5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4월은 정말 정신없이 바쁜 한달이었어요.

무슨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진득하게 글을 읽을 수도 없었어요.

5월엔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롭고 날씨처럼 따뜻한 날들만 있기를 바라며

샘터 5월호에 소개되었던 글들을 같이 살펴볼게요.

 ​

 








샘터의 문을 여는, 샘터 에세이의 5월호 글은 영화 <위플래쉬>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 뭔 줄 알아? 바로 Good job 이야!'" 라는 대사로 유명했던 영화죠.


 








최고가 되고싶은 학생과 그런 학생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는 스승.

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 쉽게쉽게 살아가려했던 건 아닌지 반성하면서 영화관을 나왔던 기억이 나요.

그동안 잊고있었는데 이렇게 글로 다시 보니 좋더라구요.


 








다음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코너(?) '정리의 달인'

제가 엄마도 포기한 정리 안하기의 달인인지라, 이 코너를 볼때마다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면서

엄마한테 알려주고싶다는..

​요즘은 실체가 있는 물건들보다 디지털화 된 정보들을 정리하는 게 더 일이죠.

저도 뒤죽박죽 섞인 메일, 파일, 사진 등 그냥 정리 안하고 쌓아두는 편이라 이번 글은 더 유익했어요.

특히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이것저것 사진을 많이 찍고있는데

조만간 날잡고 이 방법대로 사진들 좀 다 정리해야겠어요 :)


 









저 요즘 실팔찌 만드는거 아시죠?

저 집에서 쪼그려서 실팔찌만드는거 보면 엄마는 '진짜 정성이다' 하면서 비웃......음을..

엄마가 봤을때 쓸데없어 보이는 일일지는 몰라도, 전 이렇게 킬링타임을 할 수 있는 일들이 좋더라구요.

요리 빼고 손으로 꼼지락거리는건 다 좋아해서

이 부분을 읽으면선 공감을 엄청 했더랬지요.

프랑스 자수도 여유가 생기면 도전해볼까해요!


 








이 부분은 법륜 스님이 상담을 해주는 코너인데요.

대학생이 되고나서 자느라 학교를 밥먹듯이 빠지는 동생한테 추천해주고 싶은 방법이었어요.


이 고민에 대한 법륜스님의 답은

"이런 병을 고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막노동을 한 1년 하면서 '아, 진짜 이것보다는 공부가 쉽구나, 공부하는 게 나에게 행복이구나'

이렇게 깨달으면 공부를 하고, 일을 해봤더니 일하는 게 더 재밌으면 공부 그만두고 직장을 다니면 됩니다."

라고 하시네요.






오랜만에 글을 읽으니까 짧은 글들이었지만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모두 따뜻한 5월 되시길 바랄게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