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이다 - 칼럼니스트 곽정은, 그녀가 만난 남자.여자 색깔 이야기, 개정판
곽정은 지음 / 달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10월에 읽은 이 책에서 뽑아낸 문장들을 정리해놓기만 하고 지금까지 미루고 미뤄왔던 서평을, 오늘은 꼭 적으려고 했는데 인기검색어에 '곽정은' 씨, '장영란' 씨가 오르더니 지금은 네티즌까지 가세해서 누가 잘못했네, 니가 그런말 할 입장이냐 등 말이 많아서 서평쓰기가 조심스럽다.


다른 책이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녀가 쓴 이 책은 그녀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내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된다. 


내 인간관계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예전엔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다 잘 지내야한다고 생각했고, 맞춰가는것보다 내가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에게 맞추는게 편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불과 2-3년 전,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참 애썼다, 힘겨웠다, 피곤했다 라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알았고 나 혼자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고, 가끔은 이기적이지만 나를 챙겨가며 사람을 만나야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나한테 정말 중요한 '내 사람'을 챙겨야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요즘은 공부하느라 많이 소홀해져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곽정은책 내사람이다.JPG


 

 







곽정은 씨는 프리랜서가 되기 전, 잡지사 코스모폴리탄 에서 일을 한 에디터였다. 직업의 특성상 수많은 인터뷰가 잡혀있었고 이 말인즉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녀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 일적으로 만나서 자기에게 작업을 거는 사람, 자기 이익만 따지는 사람, 겸손한 사람 등.


이 책에서는 그녀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 일, 인간관계, 일상의 관점으로 나누어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익명으로. 


그녀는 그녀가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가 이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때마다 어떤 점을 느끼고 깨달았는지 조곤조곤 이야기해주고 있는지라 어렵지않게 읽을 수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그녀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해 볼 용기가 없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곽정은 씨가 날 만났다면 나에 대해선 어떤 이야기를 써주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책을 통해 본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준을 떠올려본다면 내심 좋은 평가를 받을수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호호..)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게 점점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그럴때일수록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 해야하는데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수록 무례한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지만 정도는 있다는 거, 인간관계에 있어서 항상 정도를 지키는 사람이고싶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일 거다. 그저 눈앞의 현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린 영영 어색한 자리에서 자신을 해치는 감정노동의 세계에 붙들려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답지 않은 감정노동을 하면서 그 스트레스로 젊음을 보내기엔, 한 번뿐인 인생이 미치도록 아깝게 느껴진다. 회사 선배들은 늘 "맘에 없는 소리도 할 줄 알고, 맘에 없는 웃음도 지을 줄 알아야 그게 진정한 사회인이야"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해서 사회인이 되면 그 다음은? 어색한 미소 한 번, 마음에 없는 말 한 번이 쌓이고 쌓이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중량이 되어 내 코앞에 쿵 하고 내려앉는 법인데.


일 자체는 흥미진진하지만,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을 천연덕스럽게 해내면서 난 이 업계에서 결국 이렇게 살아남았다.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는 '난 지금 내가 아니야'라고 생각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지금 나는 200%의 나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토록 비현실적인 주문을 외우면서 버틸 만큼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거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수시로 각인시켜주었죠." 

-p, 90~91



누군가를 향한 미움을 내려놓는 일이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완벽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어떤 존재를 싫어하는 데에는 확실히 어떤 에너지라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매일같이 어떤 존재를 싫어하는 데에 내 에너지를 쏟는다면 언젠가는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는 확실해지겠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 사람인지 헷갈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 98



겉으로는 언제나 명쾌하고 소위 '쏘쿨'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게 별반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지만, 사실 마음속은 어디 그런가.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작든 크든 특정한 기대를 갖고 만난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거야, 내 슬픔을 이해해줄 거야, 이 사람이라면 나에게 안식을 줄 수 있을 거야, 그런 기대와 희망들 말이다. 다행스럽게 두 사람의 기대와 보상치가 잘 맞아떨어질 때는 두 사람의 관계도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것 같이 보인다. 연애든 우정이든 결국은 내가 주는 것과 그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 적절히 등가교환이 되어야 탈이 안난다는 거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관계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균열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다. 등가교환인 듯했지만 결국 어느 한켠에서 먼저든 양쪽에서 동시이든 불만이 슬슬 자리잡게 되고, 그래서 둘 사이의 균열을 맞이하게 되는 거다.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 연인도, 조금만 더 배려했다면 더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었을 친구도 순식간에 소원해지는 것은 대부분 그런 이유에서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서운함, 균열, 그리고 불만의 폭발들. 영원해 보이던 관계도 늘상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처음엔 좋은 것만 보여주고 상대에게서 좋은 것만 보려던 사람도, 좋지 않은 모습도 보이게 되고 상대의 좋지 않은 면을 발견하자마자 공격하게 되는 슬픈 패턴이라니.


결국 그 슬픈 패턴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건 '손해볼 수 없다'는 생각일 거다. '나는 이만큼 해주었는데 너는 어째서?'라는 의문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란 결코 수월하지 않지만 계산을 멈추지 않으면 슬픈 패턴도 멈추지 않는 법이다. 언제부터인가 꽤나 트렌디한 단어로 여겨지는 '썸'이라는 애매모호한 감정의 단계라는 것도, 사실은 많은 경우 그저 '손해보고 싶지 않으므로 이 정도만 표현하겠다'라는 두 사람의 계산이 맞아떨어져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난 모든 것이 다 맞는 관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게 모든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 상대방이 내게 완벽히 맞는 사람이기를 바란다는 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어쩌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가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완벽한 리액션을 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상대방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관계는 삐거덕거린다. 그야 상대방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난 아끼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 오히려 좋더라. 기대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의지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을 강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그 사람이 인생 전반을 대하는 태도와도 참 닮아 있어서, 이렇게 누군가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는 일은 생에 대한 고된 집착을 조금 놓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 무조건 잘 지내야 해', '이 사람은 나와 정말 오랫동안 잘 지낼 수밖에 없을 거야'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한편으로 인생 그 자체에 대해서도 조금 담담하게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백 년 사는 일조차 쉽지 않으면서 천 년을 살 것처럼 구는 일과, 어차피 모두와 잘 지낼 수 없으면서 상대에게 완벽한 어떤 관계를 기대하는 일은 참 비슷하지 않은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래 이미 우리는 다른 것을 어쩌겠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더 빨리 맞이하는 일은 낙담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자유와 가능성의 발견일지 모른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을 만나는 일을 무엇에 비유하면 좋을까?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어지간히 잘 자라는 고목나무를 키우는 심정 같은 것? 관계에 대한 조바심은 조금 버리고(어차피 고목나무는 잘 자라게 되어 있으니까 하고 믿는 것처럼), 과하지 않은 관심과 이해는 지속적으로 챙기며(정해진 기간마다 물을 주는 정도의 정성만 잊지 않는 것처럼), 애정 어린 눈길로 상대방을 두고 바라보는 태도(나무는 원래 그러라고 있는 존재인 것처럼) 정도면 어떨까. 자꾸만 쥐고 흔들려고 하고, 무언가 내놓으라고 하고, 왜 이걸 내게 해주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사람보다 이제는 나를 고목나무처럼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이 끌린다. 

-p, 200~2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학 습관 - 나만의 업業을 만들어가는 인문학 트레이닝북
윤소정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취업을 앞둔 시점에 한 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연히 마주한 이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학교까지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 제대로 모른다니,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죠. 그리고 이 질문 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취직전선에 뛰어들면 평생 남이 좋아하는 일만 해주다 끝난다."

돌아보면 정말 그렇습니다.아빠도, 삼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혹은 어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말이죠.

그날 저는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결판을 내야 할 것 같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졸업을 한다는 게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그다음 날, 엄마에게 목욕탕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실오라기 한 장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엄마 있잖아… 내가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건 아는데… 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있었더라고. 나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고 싶은데 솔직히 정말 겁이 나. 어떡하지?"

정말 용기를 내서 꺼낸 이야기였는데요. 집안 형편도 모르고 다 큰 애가 사춘기 소녀처럼 방황한다고 나무랄 것 같던 엄마는 예상 외의 반응을 보냈습니다.

"소정아, 너 살면서 통째로 온전히 기억나는 1년이 있니?"

"통째로?"

"응. 엄마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지금은 20대의 1년이 엄청 귀하고 소중한 것처럼 느껴지지? 이때 꼭 무언가 해야 할 것 같고 말야. 그러나 나이 들고 나면 기억조차 남지 않는 1년이더라. 엄마가 반평생 살아보니까, 인생이 너무 지루하다 못해 지켜울 정도로 길어. 1년만 눈 딱 감고 네가 살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살아봐. 좋아하는 일만 찾아보는 한 해를 겪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정말, 나 그렇게 살아도 돼?"

"야, 니 인생인데 왜 나한테 허락을 받냐?"

그러더니 엄마는 열탕을 나가버렸습니다. 엄마의 출렁이는 뱃살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해 보이는 순간이었죠. 저는 그때 마치 엄마의 뱃속에서 다시 태어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전 바로 학교로 뛰어가 휴학계를 냈습니다(그때 휴학을 한 이후로 결국 학교로 돌아가진 못했습니다. 자퇴를 하고 저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을 택했으니까요). 그리고 진짜 '인생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 홀로 방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거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내 가슴에 생긴 이 질문을 풀기 위해 그때부터 세상을 도구 삼아 나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진정한 인문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속도에 의해 내 삶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며 '나는 누구인지'를 연구하게 된 첫날, 저는 그날의 설렘을 잊을 수 없습니다.

-p, 98~100


 














내가 고등학생 땐 네이버 블로그보다 싸이월드가 더 유명했었다. 집에 오면 컴퓨터를 키고 싸이월드에 접속해서 내 미니홈피에 감성가득한 글을 적어 올리기도 하고, 친구들의 글을 구경하는게 일상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중 싸이월드 블로그의 메인에 올라온 소정쌤 글을 만나게 되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그 글이 어떤 글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글에 매료되어 소정쌤의 블로그에 있던 글을 밤이 하얗게 새는줄도 모르고 읽었던 건 확실하다. 그 이후로 항상 그녀의 글을 빠짐없이 읽고 자극을 받는 학생이었다 난. 

그 블로그엔 소정쌤이 하루하루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들이 쓰여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라 '대학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해서 '휴학'이라는게 어떤걸 의미하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꿈을 찾기위해 다니던 대학을 잠시, 휴학을 했다는 글을 봤을 땐 '엄청 어려운 선택에 용기를 내신거구나' 하며 조용히 응원을 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뽐내기 위한 글만 가득했던 다른 블로그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있어서 좋았고,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엔 조용히 소정쌤이 자리잡아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겐 '꿈★선생' 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윤소정 인문학습관.JPG




윤소정 인문학습관 2.JPG



 






등학생이었던 내가 어느새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소정쌤은 내가 고등학생때부터 보았던 싸이월드 블로그에서 그녀가 될 것이라 말한 그 모습이 되어있었다. 판에 박힌 이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 살아있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 꿈을 잃고 방황하는 학생들을 위해 꿈을 찾도록 도와주고, 배워서 써먹을 수 있는 교육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으로.


이젠 이렇게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행했던 많은 교육철학을 담은 《인문학 습관》이라는 책이 나왔다. 언제나 마음 속으로 내 멘토라고 여겨왔던 분의 책이었기에 꼭 읽어보고싶었는데 역시나, 기대보다 더 좋은 책이라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싶었다. 


책을 읽고 내 상황과 닮은 문장을 찾아내고, 생각을 블로그에 적어나가는 내 모습을 돌아보니 고등학생때부터 지켜봐왔던 소정쌤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를 통해서만 조용히 지켜봐왔던 학생이기에 이 포스팅에 '선생님'이라고, '소정쌤'이라고 부르는게 어색하지만 그녀는 항상 나에겐 선생님이었기에 이렇게 적는다.) 


고전을 읽고 누구나 똑같은 교훈을 얻어갈 수는 없다. 모두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그 환경에 따라 가지게 된 생각들이 다르기 때문에. 하지만 창의적인 생각을 요구하는 사회에 살아가면서도, 남들과 다르면 질타받을까 두려워 겁이 많아진 우리는 틀에 박힌 인문학을 하고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책에도 쓰여있지만 가장 안타까운 모습은 취업을 하는데 인문학 지식이 중요하다는 소문에 '반짝' 인문학 스터디를 만들어 달달달 외우는 인문학을 하는 경우이다.


이 책엔 정말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란 어떤것인지 담겨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진정한 인문학 공부가 어떤건지 알았으면 좋겠다. 또한 소정쌤의 블로그에서 내가 보아왔던, 소정쌤의 성장기록(?)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포스팅을 하기 전에 고등학생 때 내가 어떤 글을 보며 자극을 받았던걸까 다시 살펴보러 소정쌤의 싸이월드 블로그를 찾아갔는데 이런, 싸이월드가 업그레이드 되면서 보기 어렵게 변해있었다. 그때 그 느낌을 그대로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어렵게 바뀐 싸이월드 블로그를 더듬거려가며 읽어보니 소정쌤의 노력이 보여 마음이 찡- 울린다. 


몇년 후, 나도 지금보다 더 성장해있을 때! 그때 내 성장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블로그를 돌아보며 뿌듯해 할 그날을 위해 오늘도 빠샤!!





              




'세상 그 어디에도 잘한 선택은 없다. 오직 잘해가는 선택만 있을 뿐.'


선택 앞에서 '이걸 해야 할까, 저걸 해야 할까?' 고민이 되는 날이면 전 또 이 지혜를 꺼내봅니다. 선택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랐던 때를 돌이켜보면, A나 B,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내 삶이 엄청나게 변화할 것 같다는 착각을 하기 때문이더군요.

'이걸 택해서 내 인생이 망하면 어떡하지?'

'이걸 해서 꼭 성공해야 할 텐데…….'

한마디로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다는 압박이 고통을 안겨주더라고요. 그러나 '최고의 선택은 없다'는 전제를 깔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거나 선택해도 결국엔 그 선택을 내가 최고로 만들어내면 그만이니, 오히려 용기가 솟아나지 않을까요?

-p, 113~114



기억하세요. 나는 내가 상상하는 만큼 살아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p, 166



어렸을 때부터 제가 힘들어하면 엄마는 저를 데리고 바다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늘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정아, 바다가 왜 바다인 줄 알아? 세상 모든 물을 다 '받아'줬기 때문이야. 모든 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온단다. 똥물도 강물도 모두 바다는 받아주지. 엄마는 우리 소정이가 늘 바다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힘든 일도, 괴로운 일도 모두 받아낼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야. 그런데 말야.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바다의 가르침은 파도에 있단다. 파도가 크게 이는 날 바다는 확 뒤집어지잖니. 우리가 보기엔 위태위태하지만 그 과정에서 바다는 스스로를 정화시킨단다. 그러니 시련이 널 바닥으로 이끈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야 하는 것들은 떨어지고, 새겨야 할 것들은 새기며 사는 게 인생길 아닐까?"

그래서일까요? 힘든 날이면 전 책이나 강연 등을 쫓아가려 하기보다 홀로 바다를 찾곤 합니다. 그리고 거센 파장을 일으키며 파도를 만들어내는 바다를 보며 이렇게 질문합니다.

'바다야, 지금 이 순간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바다는 온몸으로 파도치며 알려주더군요. 바닷물이 고이면 썩은 물이 되고, 심장이 멈추면 죽음이 오는 것처럼 네 인생도 그렇게 큰 요동 속에서 흘러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p, 174~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라는 여자 - 소녀가 어른이 되기까지 새로운 개인의 탄생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들리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은 불안에 떨거나 불확실성에 몸서리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제대로 깊이 충족해주는지를 차근차근 알아가려는 필요한 과정이었다. 예측 가능하게 안정된 상황에 처하는 것, 그것은 비현실적이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아?'라고 자꾸 스스로를 들볶을 것만 같았다. 그 흔들림이 싫어서 손쉬운 행복을 택했다 해도, 그런 쉬운 행복은 어느덧 싱거워졌다.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 기쁨과 한계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 좋았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당연하다는 듯이 편안하게 다루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행복이라는 개념에 편안할 수가 있지? 애초에 나는 너무 삐딱하고 비관적인지도 모르겠다. 전형적인 행복감 혹은 성취감을 느낄 때면 그것을 오래오래 느긋이 즐기기보다도, 성질이 급해서인지 이 느낌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가장 먼저 의식했고, 지금 얻은 이 행복이 이내 시시해지리라는 것을 미리 시무룩하게 받아들이며 스스로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또 반대로 남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전형적인 불행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내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희망의 불씨를 발견했다. 더불어 내게 여전히 욕망이 있음을 확인할 때 느끼는 그 격정적이고 예민한 감각은 '불행'이 아니라 '결핍'에 가까웠고, 그 결핍을 채우려고 속에서 울컥하는 본능이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갈 때 진정한 천국의 맛을 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삶의 모든 측면에 회색주의적인 부분이 있었다. 항상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며 중간 어디에선가 흔들리는 태도. 어떤 식으로든 고착되는 것에 굉장히 숨막혀했던 것 같다. 유동적이고 흔들리는 가운데 가지게 되는 안정감이 좋았다. 온몸의 세포를 예민하게 곤두세우며 스스로의 상황을 조금씩 움직여가고 있다는 확실한 감촉이 들 때, 가장 충만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p, 206~208 















늦게 잠들게 될거라는 걸 알지만 모두 잠든 이 시간에 글을 적는게 좋다. 조용하고 날이 밝기 전까진 당장 끝내야 할 일이 없으니 마음이 여유롭고,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고맙게도 정신없던 오후보단 시간이 느리게 느리게 가주는 것만 같다. (비록 줄어든 수면시간으로 내일 하루 정신이 몽롱할지언정)

항상 새로운 글을 적기 전엔 항상 이전에 썼던 글들을 살펴본다. 아니 구경한다는 말이 맞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다시 보면 낯 간지러워지는 글들이 많아서 오랜 시간 두고 볼 순 없고, 돈이 없을 때 옷가게 밖에서, 화장품가게 밖에서 아이쇼핑하듯 힐끗 힐끗 그저 구경하는 것이다.

예전에 적었던 글을 쭉 보다보면 드는 한 가지 생각은 '너무 어두운 이야기, 내 상처였던 이야기들을 적은걸까..' 인데 그럴때마다 심하다 싶은 글들은 비공개로 돌려두어야 하나 여러번 생각하다가도, 이내 '이런 모습도 나야' 라며 내버려두길 반복한다.

임경선 작가님의 《나라는 여자》를 읽고 이제 그런 고민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렇게 힘들다, 지친다, 이 길이 맞는걸까 적어놓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녀의 말에 의하면 '흔들리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은 불안에 떨거나 불확실성에 몸서리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제대로 깊이 충족해주는지를 차근차근 알아가려는 필요한 과정'(p, 206) 인 것이니까.

  







임경선 나라는여자.JPG








어린 시절,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던 그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있는 그녀이다. (트위터에 오늘의 작업공간이라며 올라오는 예쁜 카페, 예쁜 공간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곳에 머물러 지겨울만큼 지겨워진 나와는 상반된 모습에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24년을 살아도 전주의 구석구석을 알지 못하는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떠돌며 마음 둘 곳 없었던 그녀의 삶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도 머물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그녀이지만 살펴보면 갑상선암 때문에 긴 투병생활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 후에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런 상처들을 꽁꽁 숨기지 않고 이 책에 담아냈다. 책을 보면 그녀는 이렇게 상처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떠돌며 마음 둘 곳 없었던 상처로 인해 빠른 눈치와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해내는 여자가 되었고, 갑상선암이라는 상처 때문에 지금 그녀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여자가 되었으니 그 상처들이 그녀가 멋진 '어른 여자'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상처들도 분명 내 안에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채, 내 상처들을 숨기지 않고 계속해서 이 공간에 기록해나가려 한다. 언젠가 내가 정말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자가 되었을 때 내 상처를 함께 보고 위로해준 많은 분들께  '잘했다!' 는 칭찬과 축하의 말을 들을 생각을 하니 설레는 새벽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그냥 '묵혀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살기 위해 죽은 듯이 살아내야 하는 시간. 
-p, 56


딸에게 있어 아빠가 인생의 첫 남자라면, 딸은 그런 아빠와 언제쯤 한번은 춤을 춰볼 수 있을까? 외국 영화의 결혼식 피로연 장면에서 새 신부와 그녀의 아버지가 댄스 플로어에서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첫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정작 먼 훗날, 나의 결혼식에서 현실의 아빠는 갓 결혼한 딸과의 춤이나 포옹은커녕, 하객들의 눈을 피해 피로연장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 혼자 눈시울을 적셨다고 친구들이 일러주던데…. 그럴 줄 알았다면 그날 밤 브라질리안 댄스파티에서 나는 그의 손을 잡아 댄스 플로어로 초대했어야 했다.
-p, 74~75


굳이 순순히 죄를 인정한다면 내가 상대를 처음부터, 혹은 도중부터라도 '더' 사랑했다는 점이다. 적당히 나 좋다는 괜찮은 남자와 '사귀어주는' 것보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겨 온몸과 온 정신의 예민함을 끌어 모아 최선을 다해 그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더 깊은 충만감을 주었다. 물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애태우고 마음 닳고 차일 가능성은 높지만 어쩔 수 없이 항복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것,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지는 것마저도 행복했다.
어차피 상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 어떤 연애라도 백 퍼센트 상처 받게 되어 있다. 사실, 연애를 '잘'하는 여자들은 그만큼 자주 차일 각오를 한 여자들이었다. 남자에게 늘 먼저 이별을 고하는 대단한 여자들이야말로 자기 좋다는 남자와 '사귀어주기만 한' 불쌍한 여자들일 것이다.
-p, 92


연애가 정말 그렇게 좋은 것일까라는 의심도 함께 들었다. 사실 연애는 위태위태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연애를 안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연애 못한다며 불안해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가 더 자유롭고 평화롭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통감하고 있다. 연애하는 여자들은 어쩌면 이리도 적응과 변화에 더딜까? 좀 '드라이'하게 살아볼까 다짐해봐도, 다시 말하지만 원래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이것은 놓인 정황에 따라 때로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다. 저주임을 알면서도 또 한 번 강을 건너고 만다.
그 모든 환희와 파멸의 과정을 강 건너에서 '드라이'하게 지켜보는, 연애 안 하는 여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럼 왜 또 연애해?"
혹자는 운명론을 논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연애하는 여자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믿을 만큼 또 순진하지는 않다. 그 대신 그녀들이 직접 목격하고 만지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운명적인 사랑의 '순간들'이었다. 그 찰나의 황홀경을 느끼게 해준 몇 번의 운명적인 순간들이 그 다음 사랑을 낙관적으로 꿈꾸게 할 만큼 깊고 강렬했던 것이다.
사랑이 어떤 형태로든 가시적인 결실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그녀들은 어느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운명을 느끼게 하는 그 충만한 순간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만들어놓고 갔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라는 자연스러운 체념이 슬픔을 대신했다.
-p, 94~95


사람을 좋아하는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나의 대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Fuzzy : 애매모호한, 불분명한, 흐릿한
나에게 연애 감정이란 명료함 속에서 생기지 않고 애매함과 몽롱한 분위기, 즉 짙은 안개와도 같은 공기감 속에서 생겨났다.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의 공기 농도가 짙어지면 아뿔싸 그것이 시작됐음을 알았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흔들려'보인다. 눈빛은 언제라도 와락 울음을 터뜨릴 것 같고, 심장은 오랜 시간 달달 끓인 양 부들부들 언제라도 상대의 말 한마디에 홈이 파일 지경이다. 이렇게 시야가 흔들리고 흐려지는데 감각만이 한층 더 예민해지는 느낌은 오로지 두 경우, 사랑에 빠졌을 때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행복감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이라 어딘가 호흡이 뭉개지고 흐트러지는 것이리라.
사랑에 빠지면 감정의 결이 보송보송한 털처럼 하나하나 살아나 금방 흥분하고 아리고 울기도 참 잘 운다. 기쁨만큼 슬픔도 자주 찾아와 그 절망적인 공기감은 심장을 돌로 누르는 것만 같다. 평소보다 호흡도 잘 안 되고 소화도 안 된다. 연애의 즐거움은 보이지 않는 상대 마음을 상상하며 느끼는 스릴에 있는데, 상대의 언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서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말풍선이 생기는 것이나 많은 감정을 담은 침묵 어린 눈동자의 응시도 fuzzy한 감정에 한몫한다.
Fuzzy한 기운이 극대화되면 '쟤랑은 언젠가 자겠구나……'라는 막연한 직감이 스멀스멀 부끄럽게 올라오기도 했다. 신은 가만히 엿듣고 있다가 절묘한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윽고 그 영롱하고 따뜻한 느낌이 가시고 시야가 선명해지기 시작하면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할 때임을 알았다.
사랑이 식은 후 그 사람의 표정이, 몸짓이, 말투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느냐고 나는 통탄했다. 그러나 사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었다. 사람의 정신과 감각을 뒤흔드는 바이러스가 어느 날 저절로 빠져나가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 것뿐이었다. 잠시 우리는 감염되었고 사랑이 그 사람에게 그림자처럼 아우라를 드리웠다. 아름답고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내 앞에 가져다준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죄가 없고 차라리 사랑에 감사하기로 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랑은 얼마나 자의적인가. 사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 겪어가는 감정에 불과한 것 아니던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각자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사랑이란 혼자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랑으로 서로를 바꿀 수 있다는 데에 애초에 비관적인 것일까. 그 사람이 그랬던 건 많은 경우 내 탓이 아니었다.
가령, 우리를 가장 괴롭게 하는 온도의 차이, 열정의 차이.
'그래, 난 그 사람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렇게 흔들리는거야.'
'그는 나를 나만큼 좋아하지 않아.'
서로에 대한 감정의 깊이가 다른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점점 이것은 상대적인 문제가 아닌 절대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와 나는 열정의 포용 범위가 애초에 다른 것이다. 기질적으로 열정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사람이 있고, 머리로는 열정을 원하지만 막상 다가오면 그 소용돌이에 말려드는 것에 겁먹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감정의 한계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그 지점을 알려줄 수 없다. 사람들은 종종 '내가 상대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라며 이게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무언가 상황이 바뀌면 또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쪽의 기초체온이 낮은 것을 두고 상대방을 탓할 수는 없다. 
열정적인 연애를 하던 사람은 늘 열정적이었고, 담백한 상대를 골라놓고도 그를 상대로 열정적이었다. 담백한 사람들은 열정적인 상대를 앞에 두고도 늘 담백함 이상의 것을 주지 못했다. 늘 나만, 나 혼자만 그 당연한 사실을 못 보고 있었다.
-p, 118~121


학교에서 주로 도망 다닌 곳은 도서관이었다. 책은 지식을 넓히고 생각주머니를 키우거나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책은 외로움을 달래고 현실의 고통을 삭히거나 잠시나마 잊게 하는 친구 역할을 해주었다.
서가의 비좁은 책장 사이에 몸을 깊숙이 숨길 때 마음이 가장 편안했다. 미국 종이책 특유의 오래된 나무 냄새가 배어나왔다. 알파벳 순서로 정리된 작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집어넣어가며 인사를 나눴다. 영어를 썩 잘하진 못했지만, 표지 그림이나 제목이 마음에 드는 것부터 차근차근 조심스럽게 책장을 열었다. 그렇게 한 친구 한 친구 도서관에서 빌려 가 자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교제를 시작했다. 그것은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하는 고역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주었다. 때로는 딱 한 권만 꽂혀 있는 작가의 책이 어쩐지 더 친근감이 들어서 집에 품고 오기도 했다.
나는 나에게 맞는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데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의 추천보다는 나에게 와닿는, 나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책들을 어느덧 첫 느낌만으로 잘 찾아내게 되었다. 읽다가 재미없다 싶으면 가차 없이 새 책을 집어들어도 되었다. 의리니 뭐니 불평하는 일이 없으니 사람보다 얼마나 공정하고 정직한가. 완독을 해야 인내심 있는 인간이 되는 양, 억지로 쓴 약 먹듯 읽을 필요가 없었다. 책은 내게 무리하도록 요구하질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애초에 그들이 책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짧든 길든 심리적으로 외톨이였던 시절이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외롭지 않을 수 있도록 책의 힘을 빌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월급날이 되면 그간 사려고 별렀던 책들을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아가는 사람들이 참 사랑스럽다.
내가 지금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어렸을 때 책이 나에게 베풀어준 관대함에 내가 할 수 있는 미미한 보담에 다름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불현듯 내가 쓴 책들이 서가에서 서성이는 외톨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모습이 떠올라 조금 더 힘을 내게 된다.
-p, 145~1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있어야 마땅한 것, 없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공기 같은 존재가 가족이다. 

"가족에 대해서 아느냐?" 하는 나의 질문에 많은 사람은 '왜 그런 것을 묻느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거듭 가족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면, 이내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가족이며, 가정은 무엇이든 허용되는 공간이니,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것조차 가족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가족이란 논리를 초월하는 곳에 존재한다고 믿어 마지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행복한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행의 씨앗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p, 160~161
















학교에 가는 날마다 2시간의 점심시간이 생긴다. 집에 있을땐 끼니를 제때 챙겨먹기보다 군것질만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아 일주일에 두 번 갖게되는 이 규칙적인 시간이 싫지않다. 오히려 매번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 소문이 날까 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는 이 시간이 소소한 행복감을 준다. 오늘은 밥보단 대화가 고팠던 날이었을까, 친구와 카페로 갔다. 커피 두 잔과 베이글. (처음엔 크림치즈 프레즐이었으나 직원분의 '여기 프레즐은 사실 맛이 없어요. 베이글 드세요. 비밀이구요!' 하는 당황스런 조언(?)에 따라 베이글로 메뉴를 바꾸었다) 


친구는 앉자마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푹 꺼지고싶어. 가족이 힘이 되긴 하는데 가끔은 가족의 시선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라며 취업준비생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래도 내가 합격하거나 떨어졌을 때 가족이 없으면 같이 기뻐해주거나 슬퍼해 줄 사람들이 없다는거니까 역시나 가족이 있다는게 더 좋으려나~" 하는 말까지 덧붙이며.


친구가 뱉은 '가족의 시선'이라는 말에 타인이었다면 아무 상관도 없었을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묶여있기에 상관이 있게 되는, 이런 복잡하다면 복잡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니 딸 취업했다며? 넌 이제 걱정없겠네!" 하며 친구와 통화하는 엄마를 보며 언제 난 우리 엄마가 저런 말을 듣게 해줄 수 있을까 맘 졸이며 스스로를 혹사시켰더랬다. 결국 나를 위해 해내야하는 일들이 어느샌가 우리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하는 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시기적절하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책이 찾아와주는 마법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고맙게도 이번 역시 이런 내 상황에 딱 맞는 책이 찾아와주었다. 시모주 아키코의 《가족이라는 병》을 읽은 이후로 가족과 나 사이에 살랑살랑 미풍이 불도록 어느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즉 나의 가족이라는 병은 치유되고 있는 중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기대감을 줄여야 한다는 것도, 가족을 위해 절대적인 희생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그녀는 알려주었다.









+

5년 전 나의 수능날은 추웠던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싸준 점심시간에 먹을 도시락과(위에 부담이 가지 않게 심사숙고해서 고른 메뉴들로 만들어진) 늦지 않게 시험장에 도착하도록 같이 부지런떨며 태워다준 아빠와 응원해주겠다며 그 차 안에 타고있었던 엄마와 동생까지. 고마움과 동시에 그만큼 부담감을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끌어안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었다. 


언어와 수리를 끝내고 찾아온 점심시간. 도시락을 열었을 때 어느때보다 정성이 가득 담긴듯 보였던 반찬들에 목이 콱 메었다. 가족의 기대에 못미치는 점수를 받을 것 같아 무서웠고 눈물이 핑 도는걸 참으며 조금씩 넘겼던 기억. (도저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음에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시락을 쌌을 엄마를 생각하며 꾸역꾸역 먹었다) 


시험이 다 끝나고 허탈감과 함께 시험장에서 나와 가족들한테 투덜대고 눈물을 왈칵 쏟았던, 후련하기보다는 이렇게까지 날 신경써준 가족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 같아 답답하고 울컥울컥, 안에서부터 무언가 토해지듯 감정이 터져버린 날이었다.



오늘. 집에 들어와 씻으려고 준비하던 중에 뉴스에서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습니다. 학생들은 실수와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 와 같은 멘트와 함께 두 손을 꼭 마주한채 기도를 하고 있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가족의 기대'..


물론 나도 수능이 끝난 후, 그동안 맘고생하고 수고했던 스스로에 대한 위로보다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제일 먼저 앞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참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수능이 끝난 아이들에게,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잠시 접고 그동안 수고했던 스스로에 대해 격렬한 칭찬과 토닥임을 해주라고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후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가족의 기대 미치지 못했다 라기보단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 할 수 있기를.


수고했어요 다들.     

   




  





 

가족이라는병.jpg


 


     











자신이 아닌 남에게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낙담과 불평을 불러오는 최대의 요인이다.

기대는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얼마든지 기대를 해도 좋다. 이런 경우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자기 탓이요, 그 책임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니 다음에는 다른 방법으로 도전할 수도 있다. 좌절도 낙담도 다음 단계를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테니스 선수 니시코리 게이나 피겨 스케이트 선수 하뉴 유즈루는 실수를 저지르면 스스로 분해한다. 그러고는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노력으로 실현해낸다. 그렇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분함이야말로 내일로 향하는 에너지다. 그리고 실패나 실수는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에게는 마음껏 기대하자고, 말은 안 하지만 그렇게 늘 다짐하며 살아가고 있다.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불만도 모두 기대에서 시작된다.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것이 원인이다.

과거에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 역할 분담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스스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남편이든 아내든 상대에게 기대하지 말고 자신에게 하면 될 일이다.

결혼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생일인데 선물을 주지 않는다, 하는 것은 세상 풍조에 맞춰 생각하기 때문에 품게 되는 불만이다.

나는 언제 결혼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결혼한지 몇 년이나 됐는지도 꼽아본 적이 없다. 생일 역시, 내가 까맣게 잊곤 한다. 뭘 좀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기 때문에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괜히 더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기대를 안 했는데 선물을 받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기쁨이 더하다.

기대했는데 그에 답해주지 않는 것만큼 화가 나는 일도 없다.

"기대하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이런 말은 더없이 무례하다. 기다린다는 행위는 즉 기대감의 표현인데, 기대하지 말라고 하면 기다릴 필요도 없지 않은가. 

-p, 48~50



가족은 생활을 함께하는 타인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홀가분하다. 

-p, 62



가족 사이에는 산들산들 미풍이 불게 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밀착하거나 사이가 너무 벌어져 소원해지면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가족을 이해할 수 없다.

혼자임을 즐길 수 없으면 가족이 있어도 고독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p, 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1.jpg


 








 

10월 초 쯤, 출판사 라이팅하우스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책 한 권을 드리고싶은데 아무 조건은 없이, 그저 이 책을 읽고 느낀 감동을 주위에 나누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출판사로부터 책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은 자주 받지만 그때마다 책을 받은 대가로 서평을 써야하니 부담스러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 메일엔 기분좋게 답장을 보냈다. '그럼 감사히 읽겠습니다!' 라고. 

신기하게도, 오카노 유이치의 이 만화에 대한 내용을 SBS 스페셜이었나.. TV 프로그램에서 잠깐 다루었던걸 보고 읽어보고싶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선물을 받게되니 어찌나 반가웠던지. 블로그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던 날이었다.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2.jpg

 

 







 

'페코로스'는 일본어로 '작은 양파'라는 말이라고 한다. 작가인 오카노 유이치의 별명이라고 하니 이 만화는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걸 알 수 있다. 60대인 아들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보며 그린 이야기. 항상 나에게 가르침을 주던 부모님이 어느순간 나보다 어린아이가 되어 내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알려줘야 한다는게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가까이에서, 엄마와 외할머니를 보며 알게 되었다.  

오카노 유이치는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그만의 방식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상황으로 표현해낸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옆에 있는것처럼 말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가 치매이기 때문에 그리운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다는거라면 치매가 그리 나쁜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 잊어도 좋으니 곁에서 오래오래 살아계셔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3.jpg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4.jpg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5.jpg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6.jpg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7.jpg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8.jpg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9.jpg



비밀독서단 유카노유이치 페코로스어머니만나러갑니다 10.jpg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요즘 정말 애정하고 있는 TV 프로그램인 <비밀 독서단> 에서도 이 책을 소개한 바 있다. 패널들이 어찌나 책 소개를 감질나게 해주시는지 그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책은 꼭 읽고싶어지는데, 지금 포스팅을 읽고계시는 분들이라면 <비밀 독서단>에서 이 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영상도 찾아보셨으면 좋겠다. 말주변이 없는 나보다 더! 더! 멋지게 이 책을 소개해주고 있으니.  


부모님 이라는 존재는 태어날때부터 내 곁에서 항상 나를 지켜봐주셨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 행동이나 말투에 조심스러움을 잊은적이 많다. 이 만화를 읽고 엄마, 아빠에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고백을 했다. 정말 언젠가는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싶어도 그 말을 전하지 못할 때가 올테니.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말해도 들리지 않는 '부모님께 효도해야해!'라는 말. 이 잔잔한 만화는 책장을 넘기는 순간 순간마다 당장에 부모님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표현하고, 당장에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