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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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마땅한 것, 없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공기 같은 존재가 가족이다. 

"가족에 대해서 아느냐?" 하는 나의 질문에 많은 사람은 '왜 그런 것을 묻느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거듭 가족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면, 이내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가족이며, 가정은 무엇이든 허용되는 공간이니,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것조차 가족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가족이란 논리를 초월하는 곳에 존재한다고 믿어 마지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행복한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행의 씨앗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p, 160~161
















학교에 가는 날마다 2시간의 점심시간이 생긴다. 집에 있을땐 끼니를 제때 챙겨먹기보다 군것질만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아 일주일에 두 번 갖게되는 이 규칙적인 시간이 싫지않다. 오히려 매번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 소문이 날까 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는 이 시간이 소소한 행복감을 준다. 오늘은 밥보단 대화가 고팠던 날이었을까, 친구와 카페로 갔다. 커피 두 잔과 베이글. (처음엔 크림치즈 프레즐이었으나 직원분의 '여기 프레즐은 사실 맛이 없어요. 베이글 드세요. 비밀이구요!' 하는 당황스런 조언(?)에 따라 베이글로 메뉴를 바꾸었다) 


친구는 앉자마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푹 꺼지고싶어. 가족이 힘이 되긴 하는데 가끔은 가족의 시선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라며 취업준비생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래도 내가 합격하거나 떨어졌을 때 가족이 없으면 같이 기뻐해주거나 슬퍼해 줄 사람들이 없다는거니까 역시나 가족이 있다는게 더 좋으려나~" 하는 말까지 덧붙이며.


친구가 뱉은 '가족의 시선'이라는 말에 타인이었다면 아무 상관도 없었을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묶여있기에 상관이 있게 되는, 이런 복잡하다면 복잡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니 딸 취업했다며? 넌 이제 걱정없겠네!" 하며 친구와 통화하는 엄마를 보며 언제 난 우리 엄마가 저런 말을 듣게 해줄 수 있을까 맘 졸이며 스스로를 혹사시켰더랬다. 결국 나를 위해 해내야하는 일들이 어느샌가 우리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하는 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시기적절하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책이 찾아와주는 마법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고맙게도 이번 역시 이런 내 상황에 딱 맞는 책이 찾아와주었다. 시모주 아키코의 《가족이라는 병》을 읽은 이후로 가족과 나 사이에 살랑살랑 미풍이 불도록 어느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즉 나의 가족이라는 병은 치유되고 있는 중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기대감을 줄여야 한다는 것도, 가족을 위해 절대적인 희생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그녀는 알려주었다.









+

5년 전 나의 수능날은 추웠던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싸준 점심시간에 먹을 도시락과(위에 부담이 가지 않게 심사숙고해서 고른 메뉴들로 만들어진) 늦지 않게 시험장에 도착하도록 같이 부지런떨며 태워다준 아빠와 응원해주겠다며 그 차 안에 타고있었던 엄마와 동생까지. 고마움과 동시에 그만큼 부담감을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끌어안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었다. 


언어와 수리를 끝내고 찾아온 점심시간. 도시락을 열었을 때 어느때보다 정성이 가득 담긴듯 보였던 반찬들에 목이 콱 메었다. 가족의 기대에 못미치는 점수를 받을 것 같아 무서웠고 눈물이 핑 도는걸 참으며 조금씩 넘겼던 기억. (도저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음에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시락을 쌌을 엄마를 생각하며 꾸역꾸역 먹었다) 


시험이 다 끝나고 허탈감과 함께 시험장에서 나와 가족들한테 투덜대고 눈물을 왈칵 쏟았던, 후련하기보다는 이렇게까지 날 신경써준 가족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 같아 답답하고 울컥울컥, 안에서부터 무언가 토해지듯 감정이 터져버린 날이었다.



오늘. 집에 들어와 씻으려고 준비하던 중에 뉴스에서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습니다. 학생들은 실수와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 와 같은 멘트와 함께 두 손을 꼭 마주한채 기도를 하고 있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가족의 기대'..


물론 나도 수능이 끝난 후, 그동안 맘고생하고 수고했던 스스로에 대한 위로보다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제일 먼저 앞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참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수능이 끝난 아이들에게,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잠시 접고 그동안 수고했던 스스로에 대해 격렬한 칭찬과 토닥임을 해주라고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후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가족의 기대 미치지 못했다 라기보단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 할 수 있기를.


수고했어요 다들.     

   




  





 

가족이라는병.jpg


 


     











자신이 아닌 남에게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낙담과 불평을 불러오는 최대의 요인이다.

기대는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얼마든지 기대를 해도 좋다. 이런 경우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자기 탓이요, 그 책임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니 다음에는 다른 방법으로 도전할 수도 있다. 좌절도 낙담도 다음 단계를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테니스 선수 니시코리 게이나 피겨 스케이트 선수 하뉴 유즈루는 실수를 저지르면 스스로 분해한다. 그러고는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노력으로 실현해낸다. 그렇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분함이야말로 내일로 향하는 에너지다. 그리고 실패나 실수는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에게는 마음껏 기대하자고, 말은 안 하지만 그렇게 늘 다짐하며 살아가고 있다.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불만도 모두 기대에서 시작된다.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것이 원인이다.

과거에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 역할 분담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스스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남편이든 아내든 상대에게 기대하지 말고 자신에게 하면 될 일이다.

결혼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생일인데 선물을 주지 않는다, 하는 것은 세상 풍조에 맞춰 생각하기 때문에 품게 되는 불만이다.

나는 언제 결혼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결혼한지 몇 년이나 됐는지도 꼽아본 적이 없다. 생일 역시, 내가 까맣게 잊곤 한다. 뭘 좀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기 때문에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괜히 더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기대를 안 했는데 선물을 받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기쁨이 더하다.

기대했는데 그에 답해주지 않는 것만큼 화가 나는 일도 없다.

"기대하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이런 말은 더없이 무례하다. 기다린다는 행위는 즉 기대감의 표현인데, 기대하지 말라고 하면 기다릴 필요도 없지 않은가. 

-p, 48~50



가족은 생활을 함께하는 타인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홀가분하다. 

-p, 62



가족 사이에는 산들산들 미풍이 불게 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밀착하거나 사이가 너무 벌어져 소원해지면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가족을 이해할 수 없다.

혼자임을 즐길 수 없으면 가족이 있어도 고독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p,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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