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이다 - 칼럼니스트 곽정은, 그녀가 만난 남자.여자 색깔 이야기, 개정판
곽정은 지음 / 달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10월에 읽은 이 책에서 뽑아낸 문장들을 정리해놓기만 하고 지금까지 미루고 미뤄왔던 서평을, 오늘은 꼭 적으려고 했는데 인기검색어에 '곽정은' 씨, '장영란' 씨가 오르더니 지금은 네티즌까지 가세해서 누가 잘못했네, 니가 그런말 할 입장이냐 등 말이 많아서 서평쓰기가 조심스럽다.


다른 책이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녀가 쓴 이 책은 그녀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내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된다. 


내 인간관계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예전엔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다 잘 지내야한다고 생각했고, 맞춰가는것보다 내가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에게 맞추는게 편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불과 2-3년 전,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참 애썼다, 힘겨웠다, 피곤했다 라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알았고 나 혼자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고, 가끔은 이기적이지만 나를 챙겨가며 사람을 만나야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나한테 정말 중요한 '내 사람'을 챙겨야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요즘은 공부하느라 많이 소홀해져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곽정은책 내사람이다.JPG


 

 







곽정은 씨는 프리랜서가 되기 전, 잡지사 코스모폴리탄 에서 일을 한 에디터였다. 직업의 특성상 수많은 인터뷰가 잡혀있었고 이 말인즉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녀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 일적으로 만나서 자기에게 작업을 거는 사람, 자기 이익만 따지는 사람, 겸손한 사람 등.


이 책에서는 그녀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 일, 인간관계, 일상의 관점으로 나누어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익명으로. 


그녀는 그녀가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가 이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때마다 어떤 점을 느끼고 깨달았는지 조곤조곤 이야기해주고 있는지라 어렵지않게 읽을 수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그녀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해 볼 용기가 없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곽정은 씨가 날 만났다면 나에 대해선 어떤 이야기를 써주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책을 통해 본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준을 떠올려본다면 내심 좋은 평가를 받을수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호호..)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게 점점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그럴때일수록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 해야하는데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수록 무례한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지만 정도는 있다는 거, 인간관계에 있어서 항상 정도를 지키는 사람이고싶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일 거다. 그저 눈앞의 현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린 영영 어색한 자리에서 자신을 해치는 감정노동의 세계에 붙들려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답지 않은 감정노동을 하면서 그 스트레스로 젊음을 보내기엔, 한 번뿐인 인생이 미치도록 아깝게 느껴진다. 회사 선배들은 늘 "맘에 없는 소리도 할 줄 알고, 맘에 없는 웃음도 지을 줄 알아야 그게 진정한 사회인이야"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해서 사회인이 되면 그 다음은? 어색한 미소 한 번, 마음에 없는 말 한 번이 쌓이고 쌓이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중량이 되어 내 코앞에 쿵 하고 내려앉는 법인데.


일 자체는 흥미진진하지만,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을 천연덕스럽게 해내면서 난 이 업계에서 결국 이렇게 살아남았다.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는 '난 지금 내가 아니야'라고 생각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지금 나는 200%의 나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토록 비현실적인 주문을 외우면서 버틸 만큼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거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수시로 각인시켜주었죠." 

-p, 90~91



누군가를 향한 미움을 내려놓는 일이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완벽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어떤 존재를 싫어하는 데에는 확실히 어떤 에너지라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매일같이 어떤 존재를 싫어하는 데에 내 에너지를 쏟는다면 언젠가는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는 확실해지겠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 사람인지 헷갈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 98



겉으로는 언제나 명쾌하고 소위 '쏘쿨'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게 별반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지만, 사실 마음속은 어디 그런가.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작든 크든 특정한 기대를 갖고 만난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거야, 내 슬픔을 이해해줄 거야, 이 사람이라면 나에게 안식을 줄 수 있을 거야, 그런 기대와 희망들 말이다. 다행스럽게 두 사람의 기대와 보상치가 잘 맞아떨어질 때는 두 사람의 관계도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것 같이 보인다. 연애든 우정이든 결국은 내가 주는 것과 그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 적절히 등가교환이 되어야 탈이 안난다는 거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관계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균열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다. 등가교환인 듯했지만 결국 어느 한켠에서 먼저든 양쪽에서 동시이든 불만이 슬슬 자리잡게 되고, 그래서 둘 사이의 균열을 맞이하게 되는 거다.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 연인도, 조금만 더 배려했다면 더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었을 친구도 순식간에 소원해지는 것은 대부분 그런 이유에서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서운함, 균열, 그리고 불만의 폭발들. 영원해 보이던 관계도 늘상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처음엔 좋은 것만 보여주고 상대에게서 좋은 것만 보려던 사람도, 좋지 않은 모습도 보이게 되고 상대의 좋지 않은 면을 발견하자마자 공격하게 되는 슬픈 패턴이라니.


결국 그 슬픈 패턴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건 '손해볼 수 없다'는 생각일 거다. '나는 이만큼 해주었는데 너는 어째서?'라는 의문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란 결코 수월하지 않지만 계산을 멈추지 않으면 슬픈 패턴도 멈추지 않는 법이다. 언제부터인가 꽤나 트렌디한 단어로 여겨지는 '썸'이라는 애매모호한 감정의 단계라는 것도, 사실은 많은 경우 그저 '손해보고 싶지 않으므로 이 정도만 표현하겠다'라는 두 사람의 계산이 맞아떨어져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난 모든 것이 다 맞는 관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게 모든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 상대방이 내게 완벽히 맞는 사람이기를 바란다는 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어쩌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가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완벽한 리액션을 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상대방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관계는 삐거덕거린다. 그야 상대방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난 아끼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 오히려 좋더라. 기대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의지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을 강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그 사람이 인생 전반을 대하는 태도와도 참 닮아 있어서, 이렇게 누군가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는 일은 생에 대한 고된 집착을 조금 놓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 무조건 잘 지내야 해', '이 사람은 나와 정말 오랫동안 잘 지낼 수밖에 없을 거야'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한편으로 인생 그 자체에 대해서도 조금 담담하게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백 년 사는 일조차 쉽지 않으면서 천 년을 살 것처럼 구는 일과, 어차피 모두와 잘 지낼 수 없으면서 상대에게 완벽한 어떤 관계를 기대하는 일은 참 비슷하지 않은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래 이미 우리는 다른 것을 어쩌겠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더 빨리 맞이하는 일은 낙담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자유와 가능성의 발견일지 모른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을 만나는 일을 무엇에 비유하면 좋을까?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어지간히 잘 자라는 고목나무를 키우는 심정 같은 것? 관계에 대한 조바심은 조금 버리고(어차피 고목나무는 잘 자라게 되어 있으니까 하고 믿는 것처럼), 과하지 않은 관심과 이해는 지속적으로 챙기며(정해진 기간마다 물을 주는 정도의 정성만 잊지 않는 것처럼), 애정 어린 눈길로 상대방을 두고 바라보는 태도(나무는 원래 그러라고 있는 존재인 것처럼) 정도면 어떨까. 자꾸만 쥐고 흔들려고 하고, 무언가 내놓으라고 하고, 왜 이걸 내게 해주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사람보다 이제는 나를 고목나무처럼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이 끌린다. 

-p, 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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