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시대 중국인의 일상 - 라루스 일상사 시리즈
제롬 케를루에강 지음, 이상해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굳이 관음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다.

바로 이웃한 옆집은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여자 친구는 밤에 무얼하고 있는지, 좋아하는 연예인의 속옷은 무슨 색깔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는 이건희의 수백 억짜리 집이나 그 집 사람들이 매일 먹는 요리는 과연 무엇인지... 투명인간이 된다면 참 할게 많을 것 같은데... 

이러한 궁금증을 좀 더 확대하면 현시대만이 아닌 오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동류의 호기심을 갖게 된다. 도대체 드라마도, 개그콘서트도, 자동차도, 스타크래프트도, 핸드폰도, 컴퓨터도, 라면도 없는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일생을 무슨 낙으로 사는 것이냐. 사실은 시간을 50년만 뒤로 돌려도 위의 물건들 대부분은 우리에게도 없던 것들이다.

일상사에 관한 책들이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대략 90년대 중후반 무렵이지 싶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 류의 책들은 과거를 왕조나 사건 위주가 아닌 사람들이 먹고, 싸고, 놀고, 일하고, 싸우는 일상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지금보면 사실 그 당시에 일상사를 다뤘던 책들은 여전히 딱딱하고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갈수록 일상을 더욱 깊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이제는 당시의 노름판 풍경이나 오입 풍습, 술주정꾼의 모습 따위를 보여준다. 알고보면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얼마전 지인을 통해 [명나라시대 중국인의 일상]이라는 책을 접하고, 나는 너무나 놀랍고 기분이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이런 미시적인 책들이 나오는구나. 우리의 과거만이 아닌, 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특정한 과거가 아닌, 평범한 한 시대를 뚝 떼어내 조명하는 책이 나오는구나 싶어서 무척 감탄을 했다. 이 책과 더불어 서부개척 시대 미국인의 일상사를 다룬 책과 이집트 파라오 시대의 일상사를 다룬 책도 시리즈로 나왔다.  무척 고무할 만한 일이다.

사실 우리의 거대한 이웃인 중국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피상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였으며 미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중국의 과거를 아는 것은 바로 우리의 과거를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정도로 친연성이 깊다. 하지만 중국과 우리는 엄연히 다르다.

이 책은 명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매우 폭넓게, 쉬운 말로, 거기다 칼라 도판까지 곁들여서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프랑스의 중국 전문 학자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같은 동양인이 보는 중국이 아닌, 서양의 중국 전문가가 보는 동양의 중국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의 전통들도 저자는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설명을 해놓았는데 무척 새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익숙한 것 보다는 처음 보고, 처음 듣는 것들이 훨씬 많다.  

가령 <책 수집광>에 대한 설명을 보면, '책 수집병은... 문인들 사이에서 아주 흔한 병으로,... 희귀본을 높이 평가하고, 훼손된 저작을 복원하며, 출간 연대를 밝히기 위해 판본들을 비교하고, 빠진 구절을 끼워 넣거나 오류를 수정하는 등 책 자체에도 애정을 쏟았다.... 책 수집광은 장서에 편집병적인 정성을 쏟았다. 책을 만지기 전에 손을 씻었고, 서재에는 음식을 들여오지 못하게 했으며, 마치 보물 다루듯 애지중지했다.' 요즘도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궁금하다.

또한 <도박꾼의 지옥>이라는 항목에서는 '도박에 완전히 빠진 사람들은 여자를 걸기도 했다. 여기서 '속옷을 건다'는 것은 공연한 표현이 아니었다. 옷가지까지 모두 잃은 다음 완전히 벌거벗은 채 도박장에서 쫓겨나는 도박꾼들도 드물지 않았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동물>이라는 제목에서는 특이하게도 귀뚜라미 애호가들에 대해 나온다. '중국인들은 동물 싸움, 그 중에서도 귀뚜라미 싸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일반인들은 귀뚜라미를 등처럼 매다는 우리에 기른 반면, 궁궐 부인들은 상아로 만든 상자나 금실로 짠 우리에 넣어 길렀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은 거위, 물고기, 심지어 개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동물들이 구경거리가 될만한 격렬한 싸움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밖에도 밥 먹는 법(중국인들은 젓가락을 항시 가지고 다닌다), 당시의 성 입문서, 창녀들 이야기(노골적인 춘화도 곁들여서), 작명법, 용변을 해결하는 법, 노점과 가게의 풍경, 사적인 모임, 최하층 빈민과 하인, 노예의 삶,  등등 수많은 일상사들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앞으로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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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0-1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고 싶습니다. ㅜㅜ

라쇼몽 2005-10-1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 후후... 그렇죠? 세상에 갖고 싶은 책은 많고 많은데 비싸기는 왜 이리 비싼지... 물론 명나라의 책수집광들에게는 이런 변명이 통하지 않겠지만요^^

조고각하 2005-10-1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일상이라고는 하지만 새롭고 재밌는 사실들이 너무 많네요. 하루하루가 지루한 사람들에게는 낯설면서도 한편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세계가 주는 신선함이 충분한 자극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