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몇 페이지를 보고 덮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완전 흥미 제로였다. 이상함을 넘어선 황당한 이야기들의 연속. 기승전결이 뒤죽박죽인 듯한 이야기 전개.아니 서양 동화인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이야기들은 기승전결이 너무 뚜렷한데 루이스 캐럴이라는 작자는 왜 이야기를 이 따위로 지었을까. 사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내가 소장하고 있는(아내는 앨리스 이야기를 좋아한다)앤서니 브라운 그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뒤적거린 적이 있는데화려한 칼라 그림까지 있었지만 이야기는 역시 요령부득이었다.그때 든 생각은 이 책을 쓴 작가의 정신세계가분명히 정상은 아니겠다는 것이었다.얼마 전 아내가 텀블벅으로 구입한 이 책을 보고,(아니 집에 앨리스 책이 있는데 도대체 왜? 확실히 이 분의 정신세계도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정확히는 그 비싼 가격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뒤적거려 봤는데이 요상한 이야기의 시초가 작가 루이스 캐럴이 앨리스 리들이라는 소녀와 산책을 하다 즉흥적으로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뭐??? 10살 짜리 소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지어줬다고???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소녀가 재미있다며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졸랐단다.앨리스 너도 좀 이상한 정신세계를 가졌구나.아니면, 사내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소녀들만의 재미 포인트가 있는걸까?책은 책값을 하느라 그런지 무지무지 두껍고 종이도 고급 질감이다. 왜 이렇게 두꺼운가 봤더니 분량의 절반이 이야기와 그림이라면 , 나머지는 주석이었다!아니 애들 이야기 책에 뭔 주석?주석이라는 건 논문 같은 데나 필요한 거 아닌가?아… 어쩌면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책인지도 몰라.그러면서 읽기 시작했다.(비싼 책이니까 한글자라도 더 보자는 간절한 생각으로)와우…책을 펼치고 그 자리에서 단번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3분의 1을 읽었다!책장을 넘기면서도 신기했다.아니 내가?이야기는 여전히 요령부득인데… 이상하게 재미있다!(드디어 나의 정신세계도…!)주석의 힘인가?솔직히 주석이라는 게 우리가 아는 그런 주석이 아니다. 그러니까 논문에 첨가되는 류의 엄밀하고 딱딱한 주석이 아니라 그냥또 하나의 이야기거리 같다. 변사가 주절대듯 관련된 이야기를 이리저리 넘나들며 끼어든다.읽다보면 주석이 이 책의 또다른 주연급 배우라는 걸 알 수 있다.게다가 이 책은 두 번에 걸쳐 나온 주석 달린 앨리스의 최종판이라고 한다.1960년에 나온 <주석 달린 앨리스>에 이어 30년 후인 1990년에그동안 수많은 독자들과 전문가들이 새롭게 밝혀낸 내용들과 사실들을따로 추가하여 전편과 다른 속편으로 만든 <더 많은 주석 달린 앨리스>…그리고 두 편을 따로 따로 봐야하는 불편을 없애기위해 두 개의 주석서를하나의 최종판으로 합본한 것이 1999년에 출간된 바로 이 책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하나의 책을 둘러싸고 작가와 삽화가, 그리고 주석을 단 마틴 가드너 외에도 수많은 독자들이 합심하여 만든150년에 걸쳐 쓰여진 책이며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빠방~ 가슴이 다 웅장해지는군.주석들을 하나하나 읽느라면 마치 낡고 흐릿한 보물지도에 대해 쓴 요령부득의 해설서 같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 독자의 이름도 언급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다 끄집어 낸다. 거기다 이 책의 한국어판 옮긴이인 승영조 번역자의 주석도 만만치 않다.번역상의 문제를 포함하여 한국 독자에게 필요한 주석을 군데군데 달았다. 이 주석들의 향연을 보다보면 주석들의 끊임없는 수다를 통해 마치 수많은 독자들이 나와 함께 읽는 듯한착각에 빠진다.. 앨리스 이야기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이 책이 나의 정신세계에 모종의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의심이 되지만뭐 중년에 새로운 정신세계를 열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감사히 받아들여야지. ㅋ어여 또 읽으러 가세. 책값 해야지~ 첨언 :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삽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나라 삽화가도 한 명쯤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신세계가 좀 남다른… 굳이 집어 말하자면 ...침투부 이말년 정도?음, 혁명적인 주석서가 될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