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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대개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어떤 근원적인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물론 그것은 내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글러먹었다. 왜 세상만사가 이렇게 돌아가야 하는지 잘 이해할 수도 없고
갈수록 모든 것들이 어리석어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나의 인식... '어리석어 보인다'든지 '잘못됐다'는 인식의 근원에는
'올바른 방향'이라든가 '선', '정의' 따위의 도덕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치들은 그야말로 모든 부분에서 나를 강제하고 유도하고 설득시키고 있다. 부모형제나 친구관계부터
이 사회의 모든 부조리에 대해 내가 행동해야 하는 역할, 노후에 대한 걱정, 지식을 쌓아야 하는 부담
등등 나는 점점 갈수록 이런 문제들에 휘둘리고 있는 내가 부담스럽고 탈출하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을 나는 선택했다.
인간이 동물과 하등 차이날 것이 없는 별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이 책의 주장은
나를 온갖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어쩌다 인간이 여기까지 왔지만, 알고보면 동물들이 추구하고 행동하는 것과 별다른 것 없는
것을 추구하다 죽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다. 날아갈 것 같다. 기분좋게 술 한잔 하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주위의 여건들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나는 여전히 관계 속에 시달려야 하고,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야 하고, 내 미래를 걱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무슨 큰 대의명분이 아닌, 동물 종족의 일원으로서 내가 그저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그러니까 아프리카 초원의 하이에나나 스프링 벅 같은 동물이 감내해야 하는 한 생명으로서의
부담이라고 생각을 하니 기쁘기 그지없고, 이렇게 살아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를 둘러보라. 우리 인간들의 삶은 정말 하찮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