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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독립 빵집 이야기
닐 패커 지음, 홍한별 옮김 / 꽃피는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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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보다 오래된‘ 기억 안에 남을 만한 짧지만 깊이 있는 내용과 단순한 듯하지만 몹시도 강렬한 삽화가 어우러진 선물 같은 책. 독특한 판형과 심지어 야구공을 떠올리게 하는 제본, 바게트빵을 어루만지는 듯한 종이 질감은 선물에 너무도 걸맞은 선물상자와 리본. 좋은 책 만들어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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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여섯 시, 일기를 씁니다
박선희 지음 / 나무발전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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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써요. 그게 뭐든.

내가 답장해 줄게요.

 

수신인은 무엇으로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허공을 딛고 서 있는 것 같은 당신이다. 당신은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자주 그렇든 가끔 그렇든 저런 마음, 저런 느낌 앞에 서곤 하는)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은 보내 적 없는 메일에 답장으로 쓴 단체 메일처럼 읽힌다. 보낸 적 없는 메일에 답장으로 온 단체 메일을 읽는데, 읽을수록, 어찌 된 일인지 내가 먼저 메일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 깊어진다. 그러더니 이윽고는 수신인이, ‘당신이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인 듯 여겨진다. 느낌과 확신의 딱 중간 정도만큼. 책 속 글들은 그렇게 공감의 영역을 살짝 넘어선다.

 

보낸 적 없는 편지로 받은 답장엔 어떻게 답장해야 하나? 어떤 답장을 해야 하나? 예의와 고마움 사이서 고민하던 중, 애초 편질 보낸 적 없었으니 답장도 답장 아닌 답장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밑줄을 그어놓은 문장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난해함을 버리고도 깊디깊은 시인, 울먹이지만 울지는 않는, 눈부시나 눈을 감게 하지는 않는, 돌아보게 하면서도 재촉하지는 않는, 안고 보듬고는 있던 자리에 가만히 되돌려놓는, 딱 알맞게 뜨겁고 딱 적당하게 선선한 그런 문장들을.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게 불행이 아니면 뭘까,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 17

너의 괴로움이 너의 괴로움으로 그치지 않고 너의 괴로움을 상상하기만 해도 괴로워지는 것, 적어도 내 사랑의 기준은 그렇다. - 20

젊은 그들은 자체로 눈부신데 나이 든 그들의 아름다움에는 연마가 필요하다. - 23

 

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넓어질 희고 깨끗한 나이테를 상상하니 우주가 세 배쯤 아름다워진 것 같다. 우주가 아름답기가 참 쉽다. - 75

트리 옆에서 캐럴을 들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는 더없이 평화로운 이 장면 속에 불안이 작은 파도처럼 철썩이는 건 나밖에 모르는 일. 그러니 우리는 나는 너를 알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 77

멈춰서 물끄러미 공기 속으로 들어가면 십중팔구 좋은 답을 얻게 된다. 행복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 90

 

노래를 듣는데 노래 사이사이로 남편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이런 노래를 좋아했었지. 왜 담아두었는지 그 이유를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 174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작은 빗방울, 여름 저녁의 공기, 스무 걸음에 한 번씩 간간이 스치는 풀 냄새 같은 것. 잊지 말아야지. 이 순간 내 마음에 솟아난 용기, 오늘의 공기 같은 것. - 189

지난 금요일의 달은 무척 아름다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애가 탔다. 내가 애가 타거나 말거나 달은 홀로 계속 아름답다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사라지겠지. - 193

당신이 머리 쓰다듬어 주었던 거 이제야 떠올린 거 하나도 미안하지 않아. 새해 첫날이라고 응원처럼 꿈에 와 준 것도 고맙고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그냥 좋았어. 다시 만나서 그냥 좋았어. 나를 염려해 주고 있구나 느껴졌어. - 213

나는 마음의 끝을 알고도 그것을 넘어서서 걸어가는 게 진짜 인생인 것 같다고 전날 밤새 뒤척이며 내린 결심을 말해주었다.- 229

 

보낸 적 없는 편지로 받은 답장에 전하는 답장으로 옮긴 저 문장들은 책을 한 장씩 넘겨 찾은 게 아니라, 왼손으로 책 왼쪽 면을 잡고 오른손 엄지로 책 오른쪽 끝을 주르륵 흘리다 오른손 엄지에 힘을 줘 멈춘 곳에서 찾은 것들이다. 밑줄이 없을 때가 반 정도, 있을 때가 나머지 반 정도였는데, 모두 옮기기엔 너무 많아 오른손 엄지에 처음, 중간, 끝 정도에서!”라는 명령어를 입력하고 주르륵 흘리는 작업을 다시 해 얻은 것들이기도 하고(‘끝 정도가 좀 더 많은 건 그저 그러고 싶어서였다).

 

아무려나, 보낸 적 없는 편지로 받은 답장에 전하는 답장으로 옮긴 저 문장들이 답장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우기고 싶다. 답장 보냈노라고. 그러니 또, 답장해 달라고. 그 정도 염치없음은 독자의 권리니 꼭 또, 답장 전해 달라고. 그리 급한 건 아니니 천천히 보내도 되지만, 너무 오래는 싫다고.

이렇게 오랜만에 다음 책을 투정하는 독자가 되어본다. 고맙게도.

 

추신.

이 책이, 이 일기들이 박선희라는 사람의, 그리고 지호라는 아이의 슬픔을, 모두는 힘들겠지만, 많이, 아주 많이 거둬주었길 진심으로 바라고 믿어요.


걸어온 어느 곳엔가 후회를 놓아두었다. 같은 순간을 곱씹으며 그럴 걸, 이럴 걸 나늘 탓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한 번뿐이니까.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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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래컴, 동화를 그리다
제임스 해밀턴 지음, 아서 래컴 그림, 정은지 옮김 / 꽃피는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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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이 책이 그렇다. 아니, 이 책은 즐거움을 넘어 황홀함을 느끼게 한다. 

읽었던 혹은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보여주는 삽화들을 그저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책 표지의 주인공 앨리스처럼 이야기 속으로 통하는 구멍 안에 어느샌가 빠져든 나를, 말 그대로 문득 발견하게 된다. 황홀함과 함께!


사실 이런(?) 책을 그리 즐기지 않는데, 이유는 읽을 수 있는 것과 볼 수 있는 것의 균형이 대개는 맞지 않아서다. 볼 수 있는 게 많으면 읽을 수 있는 게 부족하고, 읽을 수 있는 게 많으면 볼 수 있는 게 부족한 것. 더구나 '책은 모름지기 읽는 것'이란 생각(편견)을 가진 나로서는 특히 읽을 수 있는 게 부족하면 영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래컴에 관한 딱딱하지 않은 전기이자 래컴 삽화에 대한 짧지만 친절한 해설서인 이 책은 볼거리만큼이나 충분한(넘치는) 읽을 거리를 담고 있다. 이는 래컴 전문가이자 수많은 삽화가의 작품을 큐레이팅한 저자의 성실성(이 책에 담긴 수많은 자료와 삽화는 성실성 없이는 찾을 수도 골라낼 수도 없는 것투성이다)과 안목 덕분일 것이다. 매우 사소한 일화부터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적절한 장면들은 보는 눈을 읽는 눈으로 바꾸기에 충분한데, 이를테면 이런 구절들이 그렇다.


"월터 스타키는 고모부가 '낡은 푸른 양복과 헝겊 슬리퍼 차림으로, 팔레트를 한 팔에 얹은 채 손에 쥔 붓을 휘두르며 작업실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것'을 봤을 때 고블린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이런 사적인 언급은 산비탈의 날벌레 사건과 <<걸리버 여행기>>의 말벌 삽화 사이의 확실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의 압권은 다른 것에 있는데, 바로 책의 '만듦새다. 이는 황홀함을 몇 배 강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출판 쪽 일에 약간의 경험이 있어 이 책 표지와 본문 용지가 가격 때문에 대개는 꺼리는 재료라는 걸 알고 있다. 본문과 삽화의 자연스러운 조화는 물론 자그마한 삽화 하나하나의 배치까지 섬세하게 신경 쓴 편집이 얼마나 공들인 작업의 결과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에 끌려 내친김에 원서까지 장만했는데, 편집은 물론 삽화의 질까지 오히려 원서보다 나아 보였을 정도니 그 정성이 그저 나의 느낌만은 아니라는 것을 감히 확신할 수 있다. 이 책을 만든 분 혹은 분들은 정말 이 책을 만들고 싶어 만든 분 혹은 분들이리라는 것까지.


오랜만에 느끼는 황홀함을 나누고 싶어 아끼는 이 몇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책 선물은 거의 안 하는 편인데도. 모두 좋아 하니, 모두 무척 좋다 하니 내가 괜히 뿌듯하다. 멋진 책 만나게 해준 '꽃피는책'에 고마움 전한다. 더 멋진 책 만들어주시길 기대하고 기다린다는 말도 함께. 

이 앨리스는... 존 테니얼 경의 상상력에서 나온 여주인공이 아니다. 그녀는 더 나이가 많고 세련됐다. 동시에 그녀의 눈에는 더 부드럽게 명멸하는 상상력의 빛이 존재한다. 이는 그녀늘 그저 예쁘장한 어린이의 영역에서 끌어올린다. ... 래컴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은 테니얼적 유형의 토대를 재작업하고 윤색함으로써, 이 이야기에 이상하고 꿈결 같은 신비로움을 정말 놀랄 만큼 풍부하게 더했다. ... [그리고] 놀랍게도 그림 속이 손으로 만져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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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래컴, 동화를 그리다
제임스 해밀턴 지음, 아서 래컴 그림, 정은지 옮김 / 꽃피는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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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본 펀딩인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네요! 아서 래컴의 그림은 물론 그의 생애까지 이렇게 자세하게 소개한 책은 이제 없을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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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에도 깔깔 - 모든 것이 눈부셨던 그때, 거기, 우리들의 이야기
김송은 지음 / 꽃피는책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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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그 기억력이. 보르헤스 소설의 주인공,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첫 에세이라는데, 애초 쓴 것이 아니라 흘러나온 것을 갈무리한 듯, 장면은 섬세하고, 인물은 싱싱하며, 사건은 생생하다. 소리면 소리, 냄새면 냄새, 감촉이면 감촉, 들리고, 나고, 쓸리는 듯하다. 그때 그 교실, 그 아이들, 그 사랑, 그 날뜀, 그 가난, 그 애틋함이 절로 되새겨진다. 에세이가 한 사람의 기억 말고는 다른 것이 아니기도 하니 이만큼 에세이에 어울리는 글도 없는 셈. 부럽다. 그 기억력이.

 

멋지다, 그 문장들이.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첫 에세이라는데, 문장은 이미 절대 고수다. 묘사면 묘사, 서사면 서사, 거침이 없다.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로 시작해 시로 끝맺기도 하고, 시로 시작해 소설로 끝맺기도 한다. 에세이가 곧 시적 산문이고, 에세이가 곧 플롯 없는 서사니 이만큼 에세이에 어울리는 글도 없는 셈. 부럽다. 그 문장이.

 

기쁘다, 오랜만에 가까이 두고 오래 읽을 책을 만나.

울적할 때 읽으면, 웃게 만들 것이다.

중구난방일 때 읽으면, 울게 할 것이다.

웃게 만들고 울게 하는, 친구 같은 책을 만나, 오랜만에 기쁘다.

"에에에에에이 뻥 치시네. 거짓말도 정도껏 하셔야죠. 자기가 더 예쁘면서." …… "아냐, 진짜야. 나중에 너희도 알게 될 거야. 지금 너네가 얼마나 예뻤는지. 아유, 요 모습 그대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고 싶다." 소녀 같았던 가정 선생님의 말투가 너무 폭신해서, 나는 하마터면 그녀의 말을 믿을 뻔했다. 헌데 지금이 가장 반짝인다는 그 말에 나는 왜 조금 슬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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