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문학과지성 시인선 140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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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우파니샤드. 이국적인 이 단어에 이끌려서 나도 모르게 시집에 손이 갔다. 어딘지 모르게 마력이 깃든 언어 '우파니샤드'. 그것도 그럴 것이, 경전의 이름이란다. 인도에서 인간과 신과 우주의 이치에 대해서, 그리고 우주적 생명과 개인적 생명의 궁극적인 일치에 대한. 시인에게 경전은 '서울'인 모양이다. 그녀는 서울에서 이 모든 것의 합일점을 찾아내었다.

시인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그 기발한 상상력을 따라가는 일이 마냥 즐거웠다. 이런 의도로 썼을 거야 라고 골머리를 썩히며 읽는 것보다 그녀의 상상력을 있는 그대로 내 안에 수용했다. 이것이 내가 이 시집을 읽는 첫 번째 작업이었다. 그녀의 상상력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 안에 내가 녹아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서로 전혀 다른 성질의 사물을 연결시켜서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는 했다. 그런 이미지와 상상력에 거부감을 느끼기보다 함께 공감하고 그것에 동화되는 것 같았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판독하는 것은 그 상상력에 마음껏 휘둘리고 난 다음의 문제였다.

이 시집의 해설에서는 김혜순의 시를 그녀가 갖고 있는 에로스적 관점으로 해설하고 있다. 그만큼 시인은 완성되지 않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역동적인 성적 표현을 종종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몸 안에 혹은 마음 안에 커다란 방을 가지고 있다. 그 방에 '그' 혹은 '당신'을 가두기도 하고 스스로를 가두기도 한다. 그와 자신을 가둔 방에 숨기도 하고 그 방을 깨뜨려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인 자신의 내면화를 이루는가 하면 자신을 확대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의 경전인 서울은 '우파니샤드'가 갖고 있는 뜻과는 조금 다르다. 서울은 그녀에게 부정적인 공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월 초파일, 서울의 흥부, 서울의 방주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또, 서울 곳곳의 정경과 시간에 따른 서울의 모습을 그녀만의 독특한 묘사와 역설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서울의 모습뿐만 아니라, 서울과 함께 변하는 다른 도시 혹은 다른 고장의 모습도 부정적인 면을 그리고 있다.

서울의 정경묘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은 이미 서울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시인의 마음이 자라 서울특별시가 되었는가 하면 그 마음의 미로 안에는 골목마다 유리문이 있어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시인은 서울과 자신의 동일시를 통해서 합일점을 찾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인의 몸짓은 환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불의 긍정성, 불빛의 긍정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불은 열과 빛을 함께 발산하는 것이고 그 스스로 에너지를 갖고 있다. 「너와 함께 쓴 시」에서 종이꽃, 물꽃과 함께 불꽃 역시 유한성을 갖고 있는 것이지만 그 스스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것은 불꽃뿐이다. 또, 별 중에서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태양뿐이다. 그녀 안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그녀의 이상향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긍정적인 몸짓은 마치 현실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의 이상향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깨지기 쉬운 유리문을 지나 도달하는 곳은 '돈황'이나 '백제'와 같은 이미 역사적으로, 실존 적으로 사라져버린 곳이다. 이런 현실에는 없는 이상향은 환하다. 현실에 없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시인의 생각은 서울에서의 행동은 '꿈속에 있으면서 꿈속에 전령을 보내려고, 헛되이 허공중에 고운 얼굴을 새기고 있는(「서울」에서)' 몸짓일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분명한 서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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