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사과의 주름살 문학과지성 시인선 191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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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이 진 자리/그곳이 밤송이의 배꼽이다/그리고 그 배꼽이, 그 사거리가/밤톨에겐 문이다

「자서(自序)」로 써놓은 첫머리에서 시인은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밤송이의 배꼽이란 생식기를 의미하며 그 자리에서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는 행위가 동적으로 순환되는 것이다. 그 배꼽에서 밤색 털이 솟아 쥐밤나무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의 시는 그 문을 들락거리는 성기(性器)라고 이야기한다. 그 행위 끝에 '발기의 끝자리에 밤꽃 향기 무성하리라'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내 시는 쥐좆이지만 앞으로 밤꽃을 피우고 밤송이가 열리게 할 것이다 라고 시인은 당당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자두나무는 벌레 먹은 열매들을 버리지 않고 온몸으로 단물을 올려줌으로써 씨알을 여물게 해주는 죽은 생명까지도 살리려는 헌신적인 활동을 하며(<자두나무>) 쪼글쪼글해진 풋사과 안에 쟁여둔 단물과 빚어놓은 씨앗을 발견해 내며 노인의 주름살과 대비되어 그 주름살은 내부로 가는 길이며 내면을 버팅겨주는 힘줄이라고 이야기한다.(<풋사과의 주름살>) 이런 행위들을 보면 행위의 주체는 사람이 아닌데 한 식물이 갖는 생명의 세계가 인간과 똑같은 무게의 살아가는 힘을 지닌 듯이 묘사된다.

이런 역동적인 모습은 대나무에서 찾을 수 있는데 <대를 쪼개다>와 <마디>에서 잘 나타나 있다. 대나무를 쪼개는 행위는 대나무를 죽이는 행위임에도 이 시에서 대나무는 시퍼렇게 살아있다. 대나무는 단단하게 여문 텅 빔으로 온몸에 꽂은 시퍼런 칼잎으로 화음을 만들고 있다. <마디>에서 '마디'는 곧 생명이다. 마디를 모르는 것들, 즉 이파리들은 바닥을 덮고 썩어가고 있다. 그 이파리에게 마디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것은 하얀 대뿌리이다. 여기에서 마디가 생명의 징표임을 알 수 있다. 끊임없는 생명의 순환 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힘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시인은 정적인 행위 또한 동적으로 바꿔 놓는데 때깔이며 모냥이 같은 게 없는 씨앗이, 흠 없는 씨앗이 씨앗을 틔우고 한 가지 맘으로 골똘해지면 종묘사에서 일하는 여자의 자식들이 그러하듯 원하는 색깔로 남실거린다.(<씨앗 파는 여자>) 가슴 위에 돌을 안은 채, 숲이 된 석수조차도 겨드랑이에서 돌 쪼는 소리가 부서지고(<상석>) 참깨가 여물어 꽃망울들이 말라죽는 것을 괴로워하며 앙다물었던 입술이 터지며 바닥에 하얗게 사리가 쏟아진다.(<참깨>)

무엇보다 놀란 것은 죽음에 대한 시인의 관점이다. 자서에서 내 시는 쥐좆이라고 말한 시인은 뒤 표지에 이르러

죄다 썩어주마!/어린 참나무 밑동, 상수리 하나/땅바닥 가까이로 주둥이가 여려 있다.//상수리의 입이 썩으며/산 하나가 부풀어오른다.//네가 내 실마리다.

라고 말한다. 식물은 낙엽으로 떨어지고, 그 떨어진 낙엽이 썩어 비료가 되고, 그것이 다시 새 생명을 움트게 하는 순환 속에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새로운 잉태를 위해서 죄다 썩어주겠다고 이야기한다. 살구꽃은 노인의 손에서 개화가 되고('살구꽃') 이발소를 닫는 아버지가 입석을 긑내고 텅 빈 대합실로 다시 들어섬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시 나뭇결처럼 환해진다.('장평 이발소') 겨울이 되면 이파리들은 자기들을 파먹은 벌레들을 훗훗하게 덮어주고 나무의 씨앗은 그 이파리들 안에서 벌레들과 동침하고 있음을 나무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그 이파리들로 산자락을 덮고 있다.('손')

지금껏 나에 급급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시인은 보고 있었다. 나에서 멀어져서 좀 더 넓은 자연, 좀 더 큰 생명을 보고 있었다. 그가 그의 시를 통해 자연의 섭리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자연의 섭리에서 사람이 잊고 지내던 것을 생각해 내고 그 것을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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