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책 문학과지성 시인선 244
남진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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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 내게 동기녀석 하나가 '너랑 비슷한 이미지니까 쉽겠네'라고 했다. 그만큼 이 책 한 권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여느 다른 시인들이 다룬 '죽음'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가볍다. 시인에게 절실하지가 않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읽힌다. 작년 과제로 읽었던 최승자의 시집 두 권은 읽는 내내 숨이 막혀 꽤나 고생을 했었다. 하지만 이 '타오르는 책'에서의 죽음은 내 숨을 조르지 않았다.

남진우가 다룬 죽음의 가장 큰 이미지는 '허무'와 '붉음'이다. '피'를 꽤나 좋아하는 시인이구나 싶을 정도로 시집 도처에 붉은 이미지를 깔아 두었다. '모래'와 '밤'으로 대변되는 허무는 죽음의 이미지를 관념적이고 허무하게 몰아갔다. '죽음'의 이미지만으로 이 시집을 다룬다는 것은 3장에 국한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앞부분에서는 주로 '책'과 '중세시대'의 이미지로 시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굳이 이 3장을 택한 것은 시인이 앞장에서도 이 죽음을 간과하고 지나가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잠'은 죽음에 가장 근접해 있는 행위이다. 그러나 시인은 모래사나이가 서벅거리며 다가오는 밤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인다. 모래는 집을 지을 수 없는 쓸모 없는 도구이다. 그런 모래는 끈임 없이 시인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시인은 꿈속에서도 사막을 헤맨다. 그런 모래 대신 잠 못 이루는 밤 내 몸 안의 핏방울이 모래시계로 옮겨가는 현상이 일어난다. 정오에서 죽음은 역동적이고 선명하다. 피는 뜨거워져서 새를 사납게 하고 환한 죽음의 꽃을 피운다. 하지만 자정에서 죽음은 몸 속에서 석탄이 새어나오듯 조금씩 흘러 밤을 만든다. 그리고 두개골에 음울하게 와 부딪는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시인에게 죽음은 절실하지 않다. 그만큼 허무할지언정 우울하지는 않다. 죽어서 매달린 고깃덩이에서 흐르는 피는 단순히 내 머릿속을 채워서 죽은 혀가 지껄이는 말이 아닌 피로 물든 아름다운 말을 내뱉는다. 이는 시인 자신이 죽음이 멀리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멀리서 밤을 이끌고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시체조차도 신기루로 떠오르는 장작더미 위에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시인은 죽음을 끊임없이 노래하지만 시인에게 죽음은 두개골을 부딪는 몸이 아닌 머리로 느끼는 관념의 상관물일 뿐이다.

죽음은 항상 무겁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몸으로 마음으로 절실하게 느끼면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인은 죽음을 단순히 관념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항상 곁에 있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시인은 자신에게서만큼은 멀리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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