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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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나 글을 읽는 취향까지도 나도 모르는 사이 달라져 있었다. 미처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내 안에 존재하는 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형상이라 할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출간 당시 흥미를 끌었음에도 슬쩍 들춰 본 분위기나 이야기들이 당황스러워서 그대로 덮고 말았는데, 이제 그것을 읽고 소화할 만한 여유가 있는 걸 보고 내가 달라졌음을 알았다. 그런 책이 몇몇 있는데, 사고의 확장이라고 해야 하나, 경험이 주는 안정감이라고 해야 하나, 달라진 내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지니고 있어야 할 포용력, 상상력의 확장에 가까운 것이니, 가까이 두고 즐길 일만 남았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중 1부 ‘비밀노트’는 전쟁을 배경으로 깜찍발칙한 쌍둥이의 시각으로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러운 세계를 유쾌하면서도 우울한 정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세계 속에 감추어진 아이러니는 암울한 현실에 대해 쌍둥이만의 세상대처법으로 헤쳐나가지만 유쾌할 수만은 없게 만든다. 전쟁 통에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갖가지 행위들은 낯설고, 때로 건조하게 전개하고 있는 작가에 의해 감정이 끼어들 틈도 없이 자칫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에서 사건으로 넘나든다.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말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슬픔 속에 침몰하지는 않았다. 이 소설에는 그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우울과 분노와 고통을 동정도 눈물도 없이, 차라리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수식도 감정도 배제된 “소년의 나체와 같은” 간결한 문체로. 각기 사이를 두고 집필된 2부와 3부의 이야기는 한층 무겁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6년에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한 헝가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전시(제2차 세계대전)에 어린 시절을 보낸다. 삼남매(작가와 오빠와 남동생)는 자유분방하게 자라났으며, 오빠를 좋아한 그녀는 1부 ‘비밀노트’의 쌍둥이 형제의 모티브를 오빠에게서 찾는다. 18세에 자신의 역사 선생님과 결혼하고 1956년 소련의 탱크가 부다페스트로 밀고 들어오자 조국을 탈출, 스위스에 정착. 7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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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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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갑자기 무엇인가를 하던 채로 그대로 눈이 멀고, 그것은 전염이 된다. 수용소에 격리되고 도시의 기능은 마비되고 사람들은 원시의 위험에 노출된다. 눈이 멀어서 다르다는 점은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인다는 것. 그러나 그도 세상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 소설은 어둡고 칙칙하게 시작되어 작가가 그려내는 상황을 그대로 따라가기가 다소 거북하다. 어둡고 또 어둡지만 눈먼 자들이 어둠 속에서 차차 익숙해지듯 어느덧 소설 속으로 스며든다.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는 말 속에 우리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우리는 어느 틈엔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기를 갈망하면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볼 일이다. 소설 속 상황처럼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생각하게 되지만, 눈이 멀어서 볼 수 없는 것들 속에는 처음부터 보려고 하지 않아 볼 수 없었던 것들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 안과의사의 아내. 그녀는 눈먼 사람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것을 바라본다. 차라리 눈이 멀었다면 그 속에 휩쓸려 갈등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갈등하며 때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눈먼 사람들의 처지에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 눈먼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때로 관찰하고 때로 그 입장이 되어 행동해야 한다면 그녀를 선택한 작가의 안목은 적중했다. 반면에 안과의사가 눈먼 사람들을 어쩌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 한 국가, 전 세계의 모습은 무기력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단지 눈이 멀었을 뿐인데 세상은 뒤집어진다. 눈이 멀었기에 어떤 행동도 불사하는 사람들 내면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본성을 파헤친 장면은 섬뜩하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 생각해 보기로 하고, 그래도 보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라는 말과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모든 행동은 늘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 때로는 어렵게도 설명할 수가 없다.’ 작가가 설정한 ‘눈먼 자들의 도시’가 그렇다. 어쩌면 사마라구가 형상화한 소설 속 눈먼 자들의 이야기는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의 규칙 속에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느 순간 찾아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항변으로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무엇에든 익숙해지는 사람으로서는 그러한 항변의 기회마저도 쉽사리 잊고 일상사로 돌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저 잊은 듯이 생활하는 것이 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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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양장)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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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힌다.  

문체도 좋고, 과거의 일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놓은 것도 좋다. 

비화를 읽는 듯한 느낌은 이제까지 알고 있던  

측천무후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샨사의 '측천무후'는 여황의 내면을 중심에 놓고,  

그녀가 암투 속에서 어떻게 지혜를 발휘하였으며, 

황제의 자리에 앉은 최초의 여성이기 이전에 말 그대로 한 여성이었음을 

그녀의 뿌리 깊은 고독과 함께 그려내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상식으로 그녀를 재단하려 했다가는 이 소설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샨사는 가능한 범위에서 한 인간의 내면을 고스란히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로써  

측천무후를 바라보았고, 그러했기에 그녀의 불우한 일상, 많은 것을 가졌으나 끝내 

비문에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는 역설적인 삶을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 내면으로 파고들어 그 끝간데까지를 들여다보았을 때,  

인간적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샨사의 '측천무후'는 긍정도 부정도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향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나는 얼굴을 붉히는 저 모란, 흔들리는 저 나무, 속삭이는 저 바람이다.
나는 순례자들을 하늘의 문으로 인도하는 저 가파른 길이다.
나는 어휘 속에, 아우성 속에, 눈물 속에 있다.
나는 정화시키는 뜨거움이고, 조각하는 아픔이다.
나는 계절을 가로지른다, 나는 별처럼 빛난다.
나는 우수에 젖은 인간의 미소다.
나는 산의 너그러운 미소다.
나는 영원의 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다.   

대미를 장식하는 이 부분은 '측천무후'를 덮으면서, 

가장 겸허하게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이다. 

나는 내가 죽어도 세상의 무엇으로 남아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것이 나무든 풀이든 바위든 공기든, 

그 어떤 것이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 

그러한 나의 상상과 더불어 글과 작가와 하나가 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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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문학동네 시집 34
이산하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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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산하 - 1960년 경북 영일 출생. 82년 이륭이란 필명으로 ‘시운동’에 등단.
시집 ‘한라산’ 필화사건 이후 11년간 절필도.

☆ 제 무늬 고운 줄 모르고, 제 빛깔 고유한 줄 모르면
차라리 피지나 말지, 차라리 붉지나 말지

누구에게나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마음으로는 만리장성을 쌓으면서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 앞에서
우두망찰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볼 여유 또한 없이
다만 앞을 향해 흘러가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시간 있는 법이다.
문제는 그러한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은 달라진다.

이왕에 그리 된 것,
속속들이 아파해 보고 가슴 치며 느껴볼 일이다.
심연 속으로 풍덩,
나를 내어맡기는 수밖에 달리 도리는 없는 듯,
그게 전부인.
그러므로 그 속에서 새로 태어나는 언어 있으면 놓치지 말 것.
내 안에서 태어나는 움직임 하나 붙잡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는 원동력으로 만들 것.

푸른 상처, 먼지의 무늬
그것들을 꼭 바라볼 것.
근처에서 배회하다 그마저도 놓치지 말고
제 눈으로, 힘 닿는 데까지 꼭 바라볼 것.

어느 날엔가 문득
상처라든가 먼지 같은 하찮은 것들 속에서
내가 품는 이상의 언어 잉태되는 순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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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시인의 '열흘 붉은 꽃 없다'를 신문지 한 귀퉁이에서 만났더랬다.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위에 쓴 감상은 그때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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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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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나.

  그러나 아무 곳에도 밑줄을 그을 수 없었다. 

  모든 문장이 일시에 엄마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살아 있는 엄마 같아서, 

  엄마의 말은 더더구나 이미 엄마 그 자체였기에 

  밑줄을 그을 수 없었다.  

  엄마와 처음으로 둘이서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를 함께 보았다. 

  일요일이면 엄마와 함께 성당에 가려고 노력한다.  

  요즘에는 엄마와 '리틀 빅 플래닛'을 한다.

  때로는 엄마의 삶을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엄마는 사람들 속에서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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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2009년 봄호에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 신경숙, 신수정 대담 

  '엄마'라는 유령들 : 류보선 작품론 

  등이 실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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