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드롭

여행 드롭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월

그렇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긴장감이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첫발을 뗀 유럽 여행부터 시작해

여행지에서의 기억, 생각, 감정이 일상에도 스며들다.

여행을 떠날 때면 늘 꼬맹이로 돌아간다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소한 이야기.

내가 지금보다 좀 젊었던 시절, 나름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로

자부하며 살았다. 당시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내 나름의 이유로 그녀의 작품을

사랑했었던 것 같다. 현실이 좀 버겁다 싶을 때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위로를 받았다. 정확히 어떻게 위로받는지도 모른 채.

이제 감수성이 무딜 때도 무뎌진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여행 에세이인 이 책 [여행 드롭]도 마찬가지이다. 겉보기에는

차가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매우 따뜻하고 다정한 한 여인의

낯선 세상과의 조우를 담고 있다. 단순하게 느껴지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그녀의 필력도 돋보인다.

돈을 벌고 한 3~4년쯤 바짝 여행을 다녔다. 만약에

운이 좋아서 결혼이란 걸 하게 된다면 내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결혼은 함)

그때 잠시 느꼈던 여행에 대한 느낌과 많이 닮아있는

구절들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

" 그때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게 뭔지 아니? 가는 비행기에서

본 후지산이었어." (중략) 어머니도 돌아가신 지금, 나와

동생에게 그 여행에서 가장 좋은 추억은, 그 여행에서

가장 좋은 추억은 후지산이라고 했던 어머니이다.

-58쪽

"휭휭 불어대는 바람에 나무들이 휘청휘청 흔들리고

때로 번개가 쳤다. 하지만 우리는 안전!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갈 필요가 없다. 나는 온천을 드나들면서 그 폭우를

즐겼다,"

-78쪽

"2시간이 지날 무렵에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만큼 길치인 자신을 원망했던 적이

없다.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나는 울다시피

택시를 잡아타고 짐을 가지러 호텔로 돌아갔다."

-116쪽

이외에도 여행지에서 충동구매를 잘 하게 된다는

사연을 담은 글 (30분짜리 여행)이나 경유는 여행

이상으로 여행스럽다는 명언을 남긴 글 (경유 또는

프랑크푸르트의 추억)도 재미있었다. 유명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에서 느낀 감상을 이렇게 솔직 담백하게

담아낼 수 있다니, 만약 사석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아주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읽으면서 엄청나게

공감을 했던 여행 에세이 [여행 드롭] 누군가에게는

젊은 시절 얼렁뚱땅 여행에 대한 추억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금 당장 낯선 곳으로 여행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진짜 여행이든, 심리적 여행이든, 여행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유령과의 입맞춤

유령과의 입맞춤
남한 지음 / 솔출판사 / 2024년 1월

“ 예전의 나는 매순간 기억에 얽힌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어마어마한 감정의 폭포수를 맞으며 살았다고나 할까.

지금은 그때와 달리 조용하고 차분하다. 어느때가 정상이고

어느 때가 비정상인가?”

평생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5살 때 세상을 떠난 아들

이호를 내내 그리워하던 지적이고도 섬세한 남자 승우는

뇌종양 수술을 받고 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마치 회로에 이상이 생긴 기계처럼, 인지기능과 감정처리에

손상이 생겨버린 주인공 승우.

일상 생활을 유지하게 해 준 정체성이 송두리째 사라지면서

그는 수십 년간 애정을 유지해온 아내와 정치적 이념을

공유하며 함께 싸워온 동지들과도 급속하게 멀어지게 된다.

머리 속이 뒤죽박죽 되면서 일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구분할 수 없게된 그는 급기야 회사에서도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길거리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승우..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유령과의 입맞춤]은 같은 제목을 가진 단편소설을 포함하여

총 5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처음에는 평범한

SF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장르 소설이라고 구분하기에

좀 애매한, 독특한 소설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지적인 실험 소설 " 이라면 될런가?

각 5편의 단편들은 매우 날카롭게 인간성이라는 것을 파고든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아주 깊이 있고 밀도가 높다.

어떻게 보면 " 인간이란 무엇인가? " 라는 주제를 두고 펼쳐지는

매우 철학적인 담론같다는 느낌도 든다.

앞서서 이야기했던 단편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 은 뇌 수술로 인해

정체성을 상실해버린 남자 이야기이다. 평생을 바쳤던 노동 운동에 대한

애정과 의미를 상실함과 동시에, 세상을 보다 넓은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승우.

선과 악,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둠 등등 일반인들이 세상을 나누는

기준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게 되는데...

[유령과의 입맞춤]에 실린 5편의 단편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펼치는 학자들의 철학적 토론, 담론? 같다는 느낌이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굉장히 깊이 있고 밀도가 높다. 그래서인지

자꾸 곱씹게 된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걸어온 길, 그들의 선택,

그리고 그들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 등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어쩌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이렇게 어리석기도 하고 지혜롭기도 하며, 가끔은

자비롭지만 한없이 잔인해질 수도 있다.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러왔지만 또한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도 인간이다.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작가가 하는 듯.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치열한 고민 없이는 이런 소설을 쓰지 못하겠다

싶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바닥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공허감도 자리 잡고 있는

소설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독자들을 보다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로

이끄는 소설집 [유령과의 입맞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
이사구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2월

지금까지, 이런 직장 고민은 없었다.

무당 조수로 변신한 디자이너의 유쾌하고

눈물 나는 수난 시대

이 소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지루하고 평범하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일상, 그 일상을

어지럽히는 무시무시한 악귀들과의 한 판 승부!!

장난기 가득한 어린 강아지 마냥 똥꼬발랄하고

두통에 잘 듣는 감기약처럼 유쾌, 상쾌, 통쾌한 이야기?!

혹은 엉망진창 그야말로 난장판인 퇴마 이야기인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를 소개한다.

주인공인 UX/UI 디자이너 김하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만에 가득 찬 채 구시렁대면서도 평범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벽간 소음을 일으키던 옆집 남자가 악귀에게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직장 상사가 악귀에게 빙의가 되었다는 다소 엉뚱한 의심을 품게 되면서

무당 언니라는 닉네임을 가진 유튜버와 인연을 맺게 되는 김하용은

우여곡절 끝에 무당 언니의 직원으로 채용이 되게 되는데....

과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무당 언니와 허당 디자이너 김하용과의

이 만남의 결과는?

소설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는 무당 언니와 함께 퇴마를 하게 된

김하용이 겪게 되는 여러 좌충우돌이 이어지는 일종의 연작 소설이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마치 내 이야기인 듯 친밀하면서도 웃프게 다가온다.

악귀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라 다소 무서울 줄 알았는데

웬걸, 빙의된 회사원 한 명을 잡겠다고 타코야끼 트럭을 빌리는

무당 언니나 마치 프로 직업인 처럼 수없이 많은 타코야끼

주문을 받아내는 주인공 김하용이나... 이런 식으로

배꼽 잡는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다.

세상은 넓고 내 몸을 노리는 악귀들은 한가득이니....

회사, 학교, 그리고 연극 무대와 같은 다양한 장소에서

멀쩡한 사람들을 노리는 악귀들. 비록 처음에는 퇴마 후 사람들이

뱉어내는 값비싼 구슬 때문에 퇴마를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몸을 사리지 않고 사람들을 악귀로부터 구해내는

멋쟁이 무당 언니와 다소 허당끼가 있지만

직접 만든 부적이 효과를 내는 등, 신끼도 많은

디자이너 김하용의 조합은 그야말로 빅재미!!

로봇팔이 커피를 만들고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내달리는

이 최첨단 시대에 웬 빙의 타령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주위를 한번 둘러보길... 갑자기 친절해진 직장 상사가

악귀에 빙의가 되었을 수도?!?!

평화로운 일상을 깨어버린 악귀들의 대소동과

그에 맞서는 무당 언니와 디자이너 김하용의 좌충우돌 빅 대결!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를 추천합니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100자평] 풀

풀 - 기억해야 할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
김금숙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망설임 없이 펀딩했어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가슴아픈 역사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수상한 한의원

수상한 한의원
배명은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1월

" 제 한을 풀어주세요. 그럼 나아요."

책에 완전 푹 빠졌다가 나왔더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수상한 한의원] 소개 문구에서 보긴 했지만 진짜 읽으면서 여러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했다. 웃다가 울다가 분노했다가 감동했다가.... 이 소설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한식으로 거나하게 차려낸 진수성찬 느낌이다. 줄거리도 매우 탄탄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활약 덕분에 이야기가 끝나는 게 너무 아쉬운 소설이라고 할까? 특히 승범이 겪는 상황들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고 등장 인물들 하나하나 인간미 넘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지역 " 우화 "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은 느낌이 든달까? 매우 까칠하고 돈만 밝혔던 한 젊은 한의사가 사람을 우선순위에 두는 진정한 의사로 거듭하는 여정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눈물 쏙 빼는 감동으로 그린 [수상한 한의원]으로 들어가 본다.

서울에서 환자 잘 치료하기로는 1등인 제일 한방 병원. 그곳에는 환자에겐 다소 무례하지만 실력만은 인정받은 한의사 승범이 있다. 원장에게 뇌물을 바치면서까지 부원장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그는 다른 유력한 후보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좌절하고 분노한 승범은 당장 병원을 그만두고 전라남도 우화시라는 지방의 소도시로 이사 와서 한의원을 차린다. 이사 온 첫날, 한의원 맞은편에 있는 한약방 주인인 수정은 걸레 빤 물을 승범에게 실수로 뿌리게 되고, 이 때문에 둘은 언쟁을 벌이게 된다. 나이가 지긋한 수정에게 함부로 대하는 승범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지면서 승범 한의원은 손님은커녕, 온종일 파리만 날리게 된다.

버젓이 한의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수정 한약방으로만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그러던 어느 날 승범은 이대로 가다가는 망하겠다는 생각에 손님이 바글바글한 한약방을 염탐하게 된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한약방에 주인인 수정도 매우 무뚝뚝한데 어떻게 손님들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수상쩍기 그지없는 한약방을 드나들던 승범은 수정의 곁에서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고 있는 아줌마 공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자신이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승범. 공실의 말에 따르면 수정이 운영하는 한약방은 낮에는 사람 손님을 받지만 밤에는 다른 존재들을 치료한다나 뭐라나..... 도대체 이 수상한 한약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치료하는 능력은 뛰어나나 돈을 무지하게 밝히고 싹수가 없어도 너무 없는 한의사 승범. 자고로 의사는 병을 치료하면서 환자의 마음도 함께 돌봐야 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승범은 한의사로서 빵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츤데레인 승범. 어릴 적 너무나 가난했고 엄마까지 집을 나가버린 상황에서 커야 했던 승범은 돈이 성공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돈을 많이 밝히긴 하나 아프고 고통받는 환자들을 어떻게든 치료해야 한다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다. 겉으로 보면 속물이고 까칠하기 그지없지만 그의 마음속엔 착하고 여린 감성이 숨어 있었던 것. 소설의 다른 캐릭터들도 매력이 있긴 하나 나는 승범을 보면서 진짜 웃고 울었다. 매력 만점!

[수상한 한의원]에는 전라남도 우화시로 이사 온 한의사 승범이 겪게 되는 어리둥절, 요절복통, 우당탕당의 에피소드들이 소개된다. 한약방 주인 수정 그리고 귀신 공실과의 인연으로 다른 존재들 (?) 을 치료하게 되는 승범. 귀신이 되어버린 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소개되고 그들을 치료하다가 승범은 점점 한의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진행되는 과정이 진짜 너무 재미있다. 탄탄한 내공을 가진 작가가 100%의 필력을 이 소설에서 발휘한 느낌? 나만 알고 싶은 소설, 아껴보고 다시 보고 싶은 소설 [수상한 한의원] 작가님에게 물어보고 싶다. 혹시 속편 계획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