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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조각
이다 투르페이넨 지음, 정보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0월
평점 :
<숨의 조각>은 아주 경이롭고도 안타까운 소설이다. 지금은 멸종한 스텔러바다소를 비추며 생명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박물학자 스텔러가 바다소를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훗날 사람들이 그 뼈를 찾아내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명의 숨결을 다시 불어넣는 듯한 작업을 하는 부분까지, 너무 아름답게 다가와서 황홀했던 책, <숨의 조각>속으로 들어가 본다.
1742년, 박물학자 스켈러는 베링 선장의 탐험에 동행한다. 그들은 캄차카반도를 향해 항해하지만 찾는 장소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고 선원들과 사람들은 병으로 쓰러진 후 일어나지 못한다. 이후 남은 사람들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스텔러는 꾸준히 새로운 생물을 관찰하고 그들의 표본을 수집하며 기록한다. 그러던 와중에 캄차카반도로 착각한 섬에 도착한 스텔러와 선원들은 거대한 바다소를 만나게 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개와 달리 바다소의 고기와 지방이 놀랍도록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처음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찾아내어 흥미롭고 아름답게 빚어낸 이야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잔혹한 방식을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나 기록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차분하고 담담한 문장과는 별개로, 스텔러바다소나 해달에게 인간이 저지른 짓은 참혹했다. 오히려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그 참혹함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총 3부로 나뉘는 이 소설에서 가장 몰입해서 읽은 부분은 역시 1부에 등장하는 박물학자 스텔러의 탐험 이야기였다. 자비를 모르는 거친 바다와 혹독한 추위, 배고픔…. 살아남기 위해 애쓰지만 끝내 죽어 가는 사람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박물학자 스텔러의 열정적인 탐구 정신은 빛을 발한다. 그리고 2부와 3부에서는 약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의 모습이 나타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은 이미 멸종해 버린 아름다운 동물의 모습을 복원하는 일에 나선다. 바다소의 뼈를 찾고, 그림으로 남기고, 복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동물로 시작한 이야기였건만, 어느새 이야기는 생전의 모습을 단지 추측하게 만드는 남겨진 뼈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살아 있을 적에는 배고픔을 달래는 수단으로 전락했던 동물이 사라진 후에야 귀한 연구 대상이 된다는 점이 너무도 씁쓸했다. 어디선가 들었던 ‘버터는 다시 우유가 될 수 없다’는 문장이 떠오르는 지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으로 느꼈던 부분이 몇 가지가 있었다. 우선 자연에 대한 탐구심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박물학자 스텔러는 표본 수집에는 열을 올렸으나, 바다소를 보호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의 열정이 생명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서 조금 더 나아가, 살아 있는 그대로 지키는 데에도 향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이후 알래스카에 총독으로 부임한 함푸스가 바다소의 멸종에 대해 듣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읽으며 당시 인간은 자신이 다른 종에게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갔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동시에 지금의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묻게 되었다.
마치 멸종한 바다소를 주제로 한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책, <숨의 조각>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싶다. 저자는 감정적 판단을 유보한 채, 한 아름다운 동물이 인간에게 발견되고 사냥당하고 끝내 멸종에 이르러 결국 뼈로만 남아 복원되는 과정을 아주 담담하게 보여 준다. 이 과정은 감정을 배제하고 기록 영화처럼 책에서 펼쳐지지만 그 과정을 읽어 나가는 일이 너무 슬펐다.
지금 우리는 종의 보존에 대해 고민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앞서 떠올렸던 ‘버터는 다시 우유가 될 수 없다’는 말처럼, 한 번 사라진 생명은 돌이킬 수 없다. 뼈나 그림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짐작해야 하는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가. 한때 살아 숨 쉬었던 자연의 경이로움을 이제는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인간은 똑똑하다고 자부해왔지만 지혜로움은 부족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진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살아 있는 생명들이 사라진 뒤에 아쉬워하지 않도록.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