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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으로 가는 길
정형남 지음 / 애플북스 / 2026년 9월
평점 :
“세상과 단절된 고독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온기로 다시
살아간다.”
<새벽으로 가는 길>을 읽으며 처음에는 우인이라는 젊은이의 사연이 궁금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는 무슨 이유로 자신에게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의 ‘우인’이라는 호를 붙이고 산 중턱의 암자까지 들어왔을까? 그런데 마치 산길을 오르다 길을 잃듯, 책을 읽다 보면 그 궁금증도 잠시 잊게 된다.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그것을 묘사하는 유려한 문장에 이끌려 자꾸만 눈길이 머물기 때문이다.
비교적 이른 대목에서 이 소설의 중심에 놓인 ‘소중한 인연’을 예고하는 듯한 사건이 벌어진다. 온 산을 뒤덮을 듯 세차게 내리는 눈을 뚫고 한 여인이 암자를 찾아온다. 신해라는 이름의 그녀는 산의 절경에 이끌려 무작정 산을 올랐다가 눈 때문에 내려가는 길을 잃은 것이다. 고립과 고독을 자청한 우인의 생활에 찾아든 뜻밖의 존재라고 할까. 여기에 스님과 과부의 옛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좀 더 특별한 의미를 품게 된다.
우인이 그곳에서 도옹, 유종과 맺는 관계도 주변 풍광만큼이나 아름답게 그려진다. 젊은 시절 법학을 공부했다는 고기 잡는 노인 도옹은 삶의 이치를 깨우친 도인처럼 느껴진다. 도시에서 살다가 부모의 흑염소 식당을 운영하며 염소를 방목하는 유종도 마치 그 풍경의 일부처럼 어우러진다. 욕심 없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담백하다. 그러나 오 형사가 등장하면서 이 조화로운 풍경에 어두운 그림자가 깃든다. 독재 정권 아래 동지들과 함께 저항하다 쫓기는 우인의 사정이 드러나고, 그가 깊은 산속까지 들어온 이유도 짐작하게 된다.
이 소설은 서사가 복잡한 편은 아니다. 내게는 사건을 따라가는 것만큼이나 문장을 읽는 일이 큰 즐거움이었다. 우인이 산과 바다를 바라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조금씩 자연의 빛깔로 물들어가는 듯하다. 고색창연한 문장 사이에 등장하는 낯선 어휘들도 예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순우리말인지 지역 방언인지 궁금해하며 뜻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암자에 머무는 동안에는 구도적인 분위기가 그를 따라다닌다. 우인은 어쩌면 외롭더라도 속세를 등지고 홀로 걷는 구도의 길을 선택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그의 삶에 운명처럼 신해가 들어오고 그 지역 사람들과의 정겨운 관계가 쌓이면서 삶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을 누리다가도 ‘인연’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책 표지에 적힌 “세상과 단절된 고독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온기로 다시 살아간다”라는 문장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눈 덮인 산속의 암자까지 찾아든 한 사람과, 자연의 일부처럼 곁에 머무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인연’의 따뜻함이 또 느껴진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읽기 시작했지만, 책을 덮고 나면 우인이 만난 사람들과 그 인연이 그의 삶에 남긴 변화를 생각하게 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