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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나무
윤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평점 :
질주하는 세상에서 기어이 역주행을 하는 한 여자
표정 없는 세계에서 끝내 얼굴로 남은 한 남자
<테니스 나무>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달콤한 사랑 이야기인가 했다.
폴립으로 다시 회춘하는 홍해파리, 90년대 문화에 대한 동경 그리고 꿈으로
진입하기 위해 앱으로 부르는 택시의 이미지는 두 사람의 마음이 공명하며
만들어내는 어떤 핑크빛 초현실적 세상으로 다가왔다.
주인공 임미아와 태오 사이에는 그렇게 꿈꾸는 눈빛과 몽환적인 틈이 있었다.
현실을 훌쩍 건너뛰어 자신들만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순간들. 테니스 공이
나무에서 떨어진 라임 빛 열매가 되는 세계에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변하는 날씨를 막을 수 없듯. 두 사람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닥친다.
임미아가 다니는 회사에서 만든 생존 배낭을 멘 한 노숙인이 역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그의 죽음은 어느덧 책임 공방으로 번진다.
회사와 철도 기관이 입을 다물고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에 언론과 대중의 비난의 화살은
몇몇 역무원에게 쏟아진다. 그리고 태오도 그들 중 하나다. 햇빛을 즐기며 평화로운
연애 감정에 젖어있던 두 사람에게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나는 이쯤 되니까 임미아가 다니는 회사가 왜 하필 생존 배낭을 만드는 곳인지 알 것 같았다.
우리 삶이 그렇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보내다가도 내일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생존을 돕기 위해 만든 배낭이 눈앞에 있었음에도 그 누군가는 죽고 말았다.
책을 읽는 동안 어떤 실체 없이 떠돌아다니는 악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익명의 존재들이
비난할 상대를 찾아서 두 눈에 불을 켜고 몰려다닌다. 조직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침묵하고 책임을 이리저리 떠넘기는 사이 그것을 떠맡은 사람들의 삶은 무너지고 있었다.
기술이 인간을 좀먹는 듯한 장면도 나오는데 여기서 짜증이 좀 많이 났다. 임미아,
즉 임 과장이 인공지능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장면에서는 열불도 났다. 숙고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정신없이 선택을 밀어붙이는 기계 직원들. 속으로 '도대체 기계가 뭘 알아?'
라는 말이 솟구쳐 올랐다.
그렇다고 애들처럼 인공지능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얘들아, 사람에게는 여지가 필요하단다. 우리는 두 가지 선택 앞에서 망설일 수도 있
고 당장 선택하기 어려우면 한 템포 쉬어갈 수도 있어. 서로의 사정을 헤아려도 주는 게
인간이거든."
효율을 추구하는 인공지능들 사이에서 빠르게 처리되는 업무들 보니 그 틈바구니에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오히려 늘어나는 것 같았다. 망설이거나 쉬어갈 틈마저
사라지는 삶이라니, 기술이 발달할수록 어쩌면 우리의 삶은 더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불편한 마음은 있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돌아보니 <테니스 나무>는 약간
비극으로 끝난 어른들의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꿈속을 여행하는 듯했던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순간들 때문이었던가? 라임 빛 열매처럼 흩어져 있던테니스 공들...
임미아와 태오, 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빠져들었던 그 마법 같은 순간들..
두 사람이 그런 시간을 조금 더 누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엉뚱한 상상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시간들 말이다. 질주하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에겐
늘 그런 틈이 남아 있기를 바라본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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