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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였던 날들
AJ 덩고 지음, 임슬애 옮김 / 미메시스 / 2026년 9월
평점 :
연인과 바다를 누볐던 기억과 서핑의 역사를 함께 담아낸
그래픽 노블 <파도였던 날들> 작가 A.J. 덩고는 이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 크리스틴과의 추억 사이사이에 서핑의
역사를 끼워 넣었다.
책의 한 줄기에는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파도를 즐기던 날들이,
다른 줄기에는 서핑에 삶을 바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둘 다 바다에서 위안을 얻고
파도와 함께 숨을 쉬었던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그림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선은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긴 움직임은 역시 상당히 역동적이다.
크리스틴과의 추억을 담아내는 청록빛 그림에서 매 순간 포말이 일고
크고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듯했다.
그림 속에서 파도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한편 1900년대 초 서핑에 인생을 바친 듀크와 톰의 이야기는 모래 빛에
가까운 색으로 묘사된다. 청록빛 그림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어서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와 크리스틴의 이야기가 사랑과 상실을 다룬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서핑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가 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틴의 이야기에 흠뻑 젖어간다 싶으면 또다시 서핑의
역사로 넘어가서 흐름이 끊기는 느낌도 있었다. 역사 부분도
흥미롭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에
좀 더 지면을 할애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골육종으로 시작해 온몸에 암이 퍼져나가는 바람에 일찍
세상을 등져야 했던 연인 크리스틴. 책은 함께 파도를 타고 사랑을
나누며 즐거웠던 순간뿐 아니라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순간까지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인간의 기억이란 마치 파도 같아서 밀려왔다가도 쉽게 사라지곤
하지만, 이제 이 책 속에서 크리스틴은 영원히 살아 숨 쉰다.
“내가 죽으면, 네 그림을 통해 계속 살고 싶어.”
어쩌면 작가는 마음을 바쳐 사랑했던 연인 크리스틴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서핑에 삶을 바쳤던 두 사람,
지금까지도 전 세계 서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듀크와
속이 빈 서핑 보드를 발명했던 그의 친구 톰도 이 책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파도’의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이 단시간에 정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괜찮은 듯하다가도 문득 밀려오고, 또 잠잠해졌다가도 다시
마음을 뒤흔들지도 모를 일이다.
서핑을 사랑하는 작가에게 바다는 위안을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크리스틴의 빈자리를 느끼게 만드는 곳일지도 모른다.
<파도였던 날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야기인 동시에
함께 살아간 시간을 추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슬픔과
위안이 동시에 느껴지는 책, <파도였던 날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