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호
성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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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내디딜 때마다 조금씩 갈라지는 강 위의 얼음

삶이라는 것은 원래 이렇게 불안하다.

성혜령의 소설집 <대부호>를 읽다 보니 떠오른 이미지이다.


우리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죽음과 질병 그리고 파산 등이 삶의 기반을 무너뜨릴지라도.

이 책의 인물들은 불행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고통이

다른 누구의 고통보다 더 크고 절박하다 느끼며 살아간다.


여덟 편의 단편은 익숙한 풍경에서 시작된다.

나만의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임장 모임에 나가고

오래 알고 지낸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감정 쓰레기통이 된 기분을 느낀다. 생계를 위해

입주 간병 일을 시작하는, 우리가 흔히 보는 일상이다.


그러나 평범하게 이어지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뜻밖의 진실을 드러내며 독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마치 높은 곳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불안하다.

익숙한 관계에서 숨겨진 악의가 표출되고

깊은 단절의 틈에서 드러나는 외로움이 서늘하다.


<임장> 부동산 모임의 리더인 민연 언니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직접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전혀 예상 못한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악> 가족이라는 허울좋은 껍데기 아래 놓인

피로와 갈등이 느껴졌던 단편. 가족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책임은 때로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나방파리> 오래된 친분 속 숨겨져있던 어두운 악의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상대를 이해할 마음의 여유는 없다.


<독재자의 오른발> 생계를 위해 입주 간병인으로

일하는 주인공. 새로 맡은 환자는 비교적 수월해 보였다.

그러나 환자가 저지른 악행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펼쳐진다.


이외에도 <원경>에서는 주인공 신오의 끔찍한 외로움이

지면을 뚫고 나에게 느껴졌고 <운석>에서는 죽기 전에 이미

돌에 갇혀버린 듯한 한 남자의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표제작 <대부호>에서는 가족의 죽음이 남긴 끔찍한 상처..

내 눈에는 모두들 그 상처가 남긴 고통이라는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팔을 휘젓는 것으로 보였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내 고통에 몰두하느라 다른 이를

돌아볼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단편 <베인>에서 아연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눈앞에서 누가 총을 맞고 쓰러져도, 종이에 베인

내 손가락 상처가 더 아픈 게 인간이야. 언니는 다를 거라고

착각하지 마.”


소설집 <대부호>의 인물들은 불행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미칠듯한 속도로 도망치거나 회피한다. 그러나 회피하는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 와중에 결국 스스로에게 남는 것도 끔찍한 외로움과

고립감이다.


달콤하게 위로하는 말 하나 없이 아주 서늘한 목소리로

이것이 인간의 본모습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단편소설집 <대부호>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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