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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시절
양솽쯔 지음, 문현선 옮김 / 마티스블루 / 2026년 5월
평점 :
전작 <1938 타이완 여행기>로 널리 알려진 양솽쯔 작가의 소설 <꽃 피는 시절>은 역사소설에 SF적 상상력인 타임슬립을 더해 아주 독특한 분위기의 서사를 빚어냈다. 과거 억압적인 분위기의 타이완 사회에서 소외되고 그늘졌던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현대의 대만에서 살아가던 여대생 양신이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10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의 타이중에서 세력가였던 양씨 가문의 막내딸인 양쉐니, 혹은 쉐쯔의 몸에서 눈을 뜨게 된 신이. 그녀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부잣집 막내딸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당시 대만은 전통과 관습의 힘이 매우 강했고 사람들은 체제와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던 시대였다. 감정이나 자유로운 선택보다는 집안의 질서와 체제 유지가 우선시되는 상황이었고, 특히 여성들은 가문을 유지하기 위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결혼 역시 사랑보다는 철저한 이해관계와 전략 속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사회적으로 더 약자의 위치에 놓인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이 노골적으로 그려진다. 입양된 딸인 아란 고모나 화류계 출신으로 작은아버지의 첩이 된 추솽관의 모습을 통해 쉐쯔는 점점 깨닫게 된다. 자신의 처지도 결국 그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10년 동안 권세를 휘두르다 보니,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첩실로 사는 추솽관이나 양녀로 사는 아란 고모 같은 사람들. 아니, 틀렸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 나도 또한 그 가운데 한 사람이야.”
그래서인지 이 작품 속 여성들의 연대와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로맨틱한 감정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시를 읊어주고 문학을 이야기하며 가까워지는 쉐쯔와 일본인 소녀 샤오짜오의 관계는 본토인과 내지인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무색하게 갈수록 깊어진다. 결국 이 둘의 특별한 감정을 모두를 책임져야하는 쉐쯔가 현실을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의지처가 된다.
미래에서 갑작스럽게 날아온 어리둥절한 소녀였던 쉐쯔는 현실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며 성장해 나간다. 이 부분은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물론 지역과 시대 등 배경은 아주 다르지만,불합리한 구조 속에서도 여성의 몸으로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모습이 닮아 있었다.
<1938 타이완 여행기>만큼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이 작품에서도 다양한 대만 전통 음식들이 등장한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과 상처를 위로하는 존재처럼 묘사된다. 여기에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대저택 ‘지여당’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더해지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100년 전 대만의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소설 <꽃 피는 시절>은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통해 매우 설득력 있고 현장감 있게 한 강인한 여성의 성장 그리고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시대적 억압 속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00년 전 대만의 고풍스러운 풍경 속에서, 한 소녀가 끝내 자신의 삶을 지켜내려 애쓰는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는 소설 <꽃 피는 시절>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