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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가 우리를 옥죄어올 때는
일단 탈출하는 법을 알아내야 한다. 그런데 마치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나오는 길이 복잡하다면 일단 신중하게 하나하나 풀어내야 하는데
나에게는 책 <슬픈 호랑이>가 그런 ‘신중한 탈출’로 다가왔다.
저자 네주 시노는 7살의 어린 나이 때부터 오랫동안
의붓아버지의 성적 학대를 겪어야만 했다. 마치 갑자기 당한 교통사고처럼
그녀에게 발생한 성폭력. 취약하고 어디서도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어린 그녀는 그렇게 너무도 손쉽게 성 착취자의 피해자가 되고 만다.
보통 성폭력의 피해자가 내면의 상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책의 저자는 조금 다르게 접근한다. 끔찍한 과거의 기억에 대한
해체작업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오히려 더 꼼꼼하게 서사를 쌓아 올린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그렇게 과거를 재구성한다.
남자다운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포악하고 가스라이팅에 능했던
의붓아버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성인 남자가 어린 소녀에게
품는 변태 성욕 판타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문학책 ‘롤리타’로 이어진다.
이 책은 어린 그녀가 당시엔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건의 정황을 잘 설명해 줬다.
그녀는 강간 피해자였던 자신이 범죄에 그렇게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분석한다. 이 지점에서 솔직하게 화가 좀 많이 났다.
그녀 자신의 극단적 고독과 소외감이 한몫을 했지만 엄마와 친아버지 둘 다
그녀에게 충분한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정말 너무 힘들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녀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고통이 너무나 생생하고 분명하게 느껴졌다.
강간 피해자인 그녀의 시간은 멈춰버렸고 이제 그녀는 “그때 그 시간”이라는
덫에 갇힌 신세가 되어 버렸다.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일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 소녀는 나고, 그 일은 지금의 일이다” - 77쪽-
책을 읽는 동안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대목은, 어쩌면 나쁜 기억은 의식뿐만
아니라 몸에도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저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척추 측만증에 걸렸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자궁 관련 질환을 얻게 된다.
참으로 끈질기고 지독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예술과 문학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비천한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문학은 나를 구원해 주지 않았다. 나는 구원받지 못했다”
<슬픈 호랑이>는 가제본 도서라 읽으면서 문장에 밑줄도 긋고
인상적인 문장이나 공감가는 문장 옆에 낙서도 하면서 읽었다.
좀 더 감각적이고 입체적으로 읽다 보니 저자의 이야기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깊은 상처를 쉽게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불에 덴 자국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슬픈 호랑이>의 저자 네주 도시는 앞으로도 그렇게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영영 정답이 없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오늘보다 더 평안한 내일을 보내길 바라본다.
불편하고 아프고 힘든 책이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던 책 <슬픈 호랑이>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