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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헤매다가
정미진 지음, 김승아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25년 10월
평점 :
지금, 그녀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갑니다
한참을 헤매다가... 마침내 너를 만났어.
의식과 무의식, 비밀과 진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느
SF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 <한참을 헤매다가>
우리의 의식이 닿지 않는 깊은 우물, 무의식
우주와 더불어 인류가 아직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영역인 만큼,
무의식은 늘 신비롭고 두려운 세계로 남아 있다.
이 소설은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첫사랑 은수의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
그녀를 현실로 되돌리려는 재욱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동시에 자살로 보였던 재욱 어머니의 죽음 뒤에 숨겨진
미스터리한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쳐 들어간다.
재욱은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을 겪었다.
자살로 처리된 사건은 10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삶 깊숙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다행히 병원 원장에게 입양되어 안정된 삶을 살지만
마음 속 공백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재욱의 학교에 은수가 전학을 온다,
여행 작가인 엄마를 따라 세계 곳곳을 누볐던 은수는
자유롭고 씩씩하며 남학생들보다 무술에 능하다.
서로에게 조금씩 특벽한 감정을 품게 된 두 사람은
여름 방학 때 기차 여행을 약속한다.
하지만 여행 당일, 반려견 호수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재욱이 허둥대던 사이, 은수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낸 것으로
보이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다.
이후 재욱과 은수의 시간은 멈취지게 되는데....
소설의 서사는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우선 식물인간이 된 은수를 되살리려는 재욱의 고군분투.
성인이 된 재욱은 뇌공학자가 되어 환자의 무의식에 침투해
자아를 현실로 되돌리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치매, 조현병, 알코올 중독 등으로
무의식에 갇힌 사람들의 세계가 펼쳐지고
이중에서도 영화 배우를 꿈꾸던 은수의 무의식은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 장면들은 인간의 의식이 얼마나 정교한 시스템인지
깨닫게 한다.
다른 갈래는, 재욱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은수의 무의식에 접근하게 되면서 재욱 스스로
억압해왔던 기억의 문이 열리면서 과거 사건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독자를 놀라게 할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떠올랐다.
고통스러운 사랑의 기억을 지우려 하지만
무의식은 끝끝내 그 시도를 거부하는 이야기...
그러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말랑한 로맨스에 초점을 뒀다면
소설 <한참을 헤매다가>는 무의식 탐험이라는 SF적 주제 위에
로맨스의 따뜻함과 미스터리의 긴장을 동시에 얹은 소설이라는 점!
사랑의 기억, 트라우마, 인간의 무의식
그리고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색....
여러 장르의 매력을 유기적으로 잘 엮어내어
훨씬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소설 <한참을 헤매다가>
를 모두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