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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조각들
연여름 지음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평점 :
“그 풍경을 꼼짝없이 오래 응시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또 나를 하필 지금 이곳에 있게 한 모든 확률을.”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 과거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과거의 상처를 비로소 극복하고 평안을 찾는 주인공 뤽셀레와 스스로를 가두었던 세계를 박차고 나와 자유를 얻는 주인공 소카의 아름다운 여정을 그리는 소설 <빛의 조각들>
뤽셀레는 4층까지 있는 대저택의 청소부로 고용된다. 한때는 행성과 행성을 다니는 여객기의 파일럿으로 일했으나 불운한 사고가 겹치면서 흑백증을 얻어 색채를 잃고 아내까지 잃은 후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이제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인공강화 수술을 받아서 인핸서가 되는 것.
저택의 중심에는 호흡기 문제와 폐 질환을 가진 천재 화가 소카가 있고, 저택의 모든 요소는 그에게 맞춰 돌아간다. 단 하나의 오염물질도 소카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에 청소부인 뤽 셀레의 책임은 막중하다. 그렇다면, 소카는 왜 인공 강화 수술을 받지 않았나? 그 이유는 인핸서가 되는 순간, 그에게 주어진 예술가의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
몸의 컨디션이 나빠서인지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고 예민한 소카... 채용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뤽 셀레가 보기에 자신이 언제 해고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저택 분위기는 마치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한데....
SF 소설이지만 소설 <빛의 조각들>은 상당히 풍부한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고 인물 사이의 갈등, 오해 그리고 용서 등을 그려내는 휴먼 드라마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SF를 읽다 보면 느끼는 차가운 금속성의 느낌보다는 고전 문학을 읽을 때 받는 깊이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폭발적인 색감으로 표현되는 그림을 그려내지만 저택 안에 갇혀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소카와 회색빛 절망으로 과거를 곱씹는 뤽은 어쩐지 다른 듯 닮아있는 모습... 하지만 어느 새벽, 물 빠진 수영장에 소카가 놓아둔 선베드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 순간, 뤽 셀레는 앞으로의 그의 시간은 지나온 시간과 같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하게 되는데...
“나는 손바닥으로 두 귀를 덮고, 본래의 색채와 나의 시야 간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그 풍경을 꼼짝없이 오래 응시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또 나를 하필 이곳에 있게 한 모든 확률을.”
사람 백 명이 있다면, 아마도 백 개의 절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 개의 희망도 있다는 점!! <빛의 조각들>이 빚어내는 휴먼 드라마는 상처와 좌절 속에서도 우리가 얼마든지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소중하게 간직한 것, 예를 들자면, 예술을 향한 사랑과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 등등이 오히려 우리가 미래를 나아감에 있어서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뤽 셀레와 소카는 후회와 좌절보다는 미래와 가능성을 택하게 되고 독자들은 그 지점에서 커다란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 쇠사슬을 끊어낸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새장의 문을 연 새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날아가게 된 두 주인공들의 이야기 <빛의 조각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