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평점 :
영혼 없는 작가는 일본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살아온 이중 언어 작가인 다와다 요코의 작품이다. 여러 편의 단편 에세이가 실린 에세이집인데 추가로 9편이 더해진 개역 증보판이라고 한다. 그녀의 작품은 조금 낯설기도 하고 몽환적인 느낌이 있었다. 첫 번째로 읽은 “유럽이 시작하는 곳”은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는 도중에 적은 그녀의 여행기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기도 하고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하는데, 상당히 독특했다.
기차에서 겪은 에피소드들도 실려있는데, 예를 들어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형 이야기 “마트료시카” 이야기가 소개된다. 다른 독자들도 알겠지만 마트료시카는 인형 속에 인형이 계속 발견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다와다 요코 작가에 따르면 마트료시카가 사실은 19세기 말 일본의 옛 인형들을 본떠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코케시”라는 나무 인형과 사실 이 나무 인형은 예전 일본의 시골에서 가난 때문에 고통받던 일본 여인들이 아이들을 낳자마자 죽였던 전통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인형을 보면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을 듯.
이런 식으로 “유럽이 시작하는 곳”에서는 신화, 꿈, 전통 그리고 전래 동화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반복된다. 여행기라기보다는 그녀의 머릿속 세계를 유영한 느낌. “부적”이라는 큰 제목 안에서 마주친 여러 이야기들도 그녀의 개성을 드러낸다. “엄마말에서 말엄마로” 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물건에 남성, 여성을 구분하는 독일어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이 보인다. 특히 만년필을 보고 남성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장면과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를 뱀 머리로 인식하는 장면 등은 작가들이 가져야 하는 상상력의 극치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영혼 없는 작가”라는 글에는 독일어 단어 중 “방”에 대한 작가의 이미지 연상이 이어진다. 전화 방을 떠올리면서 이어지는 일본의 동화 <대나무 공주> 이야기, 그러고 나서 사제 방이나 교도소 방처럼 글을 쓰기 딱 좋은 구조를 가진 방에 대한 작가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방안에 틀어박혀서 글만 쓰는 사람도 몸에 있는 세포 방에서 들려오는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작가의 말. 이 글에서 “영혼은 비행기처럼 빨리 날 수 없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계속 마음에 남는 구절이다. 요즘처럼 비행기로 자주 여행하는 시대도 없는데... 너무 많은 영혼들을 흘리고 다니기에 요즘 사람들이 약간 미쳐있는 듯 하나? 싶기도 했다.
이 책은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다. 일상을 다루지만 신화, 꿈, 전통, 전래 동화 등등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가 계속 등장한다. 그리고 여러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저자는 각 언어가 가진 특징을 관찰하고 거기서 얻은 사유를 풀어낸다. 상당히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풍기는 글이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서 쓴 글이라고 배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어라는 게 그냥 소통을 위한 도구쯤으로 여기는 일반인에게 이 책은 “언어가 열어주는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고 그녀의 글 자체는 “세계를 다시 보는 눈”을 길러준다. 나의 삶과 언어가 낯선 손님으로 보이게 만드는 독특한 글 <영혼 없는 작가>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