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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손에 닿았을 뿐
은탄 지음 / 델피노 / 2025년 2월
평점 :
초능력이 있다는 남자, 그런 남자를 믿는 여자
그 믿음은 기적일까, 아니면 위험한 착각일까
나는 원래 TV를 잘 안 보고, 보더라도 뉴스나 다큐멘터리 위주로 본다. 드라마는 거의 안 보는 편인데, 특히 연애가 주제인 드라마는 질색이다. 워낙 추리나 스릴러 등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소설도 연애소설은 절대로 읽지 않는다. 손가락 오글거리게 만드는 것들은 모두 거절이다.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드라마도 "뭔 재미로 보나?" 싶은 것들도 많았다. 그런데 별 기대 없이 읽은 이 소설 <너의 손에 닿았을 뿐>은 정말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결혼 이후에 말라비틀어져있던 내 심장이 그야말로 사랑의 기운으로 촉촉해진 느낌이랄까? 주인공들의 밀당에 과몰입한 내가 보인다.
주인공 서지영은 시골에 있는 제과 공장에서 과자 포장지를 검수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녀의 일을 상징하는 소리가 바로 '위잉 위잉 착착 쿵쿵'이다. 그녀는 반복 노동에 시달리는 자신을 찰리 채플린이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모던 타임스>의 주인공에 비유한다. ( 여기서 주인공의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 ) 자신이 없으면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치매 걸린 할아버지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시골에 남아있긴 하지만 지영은 아직도 서울에 가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시골쥐와 서울쥐 이야기 ( 시골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최고다 주제 )를 가장 싫어하고 시골에서의 안분지족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순응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비유한다. ( 서지영의 비판의식과 똑똑함이 드러남 )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게 된다. 슬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눈물까지 말라버릴 정도로 너무도 급하게 돌아가신 할아버지. 그런데 장례식을 치르던 중 서울에서 어쩐지 낯익은 남자가 내려와서 할아버지의 조문을 한다. 그의 이름은 서은우. 알고 보니 어릴 적에 할아버지의 중재로 잠시 시골에서 살다간 꼬마 남자아이였다. 서은우는 지영에게 "사람 저널"이라는 명칭이 적힌 회사 명함을 내밀며 서울로 올라올 것을 권유한다.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신세를 졌던 것을 갚기 위해서 지영에게 취직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선뜻 제안을 하는 서은우... 과연 그의 손을 잡은 지영에게는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
소설 <너의 손에 닿았을 뿐>은 뭐랄까, 아주 재치 있고 과하지 않은 로맨스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주인공 서지영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우선 서지영은 다소 드라이한 감성을 가지고 있으나 매우 지적으로 날카롭다. 비록 공장에서 단순 반복 노동을 하고 있으나 책을 정말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는 캐릭터도 묘사된다. 신문사 대표인 서은우가 그래서 그녀를 단번에 스카우트한 게 아니겠는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끝까지 시골에 남아있던 의리도 그렇고 스스로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까지... 인간적으로 참 끌리는 여자가 아닌가... 싶었다. 보통 로맨스 소설은 남자 캐릭터에 아우라가 드리워지는 경우가 많고, 이 소설도 마찬가지이지만 여자 주인공이 매력이 넘치는 게 설득력이 있다. 남녀가 서로 끌리는 이유가 강력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러한 듯!
소설 속에서 "저는 마인드컨트롤 초능력자예요. 말을 하면, 말하는 대로 이뤄지거든요."라면서 너스레를 떠는 신문사 대표 서은우. 얼굴도 잘생겼지만 정말 초능력 덕분인가? 싶을 정도로 광고 영업 능력이라든가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분명 매우 잘난 인물이지만 겉으로 젠체하지 않고 속 깊은 인간성도 두드러진다. 분명히 내 주위에는 없는 남자이지만 ( 소설 캐릭터니까 당연한가? ) 여성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한 훈남인 것은 당연하다!! 서은우를 별로 마음에 두지 않던 지영은 이윤경이라는 은우의 과거 연인이 갑자기 등장하면서부터 조금씩 그에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뭔가 시트콤 같은 분위기에 ( 주위 인물들이라던가 회사 환경을 묘사하는 작가의 재치가 빛난다! ) 주인공 서은우가 약간 장난스럽게 묘사되긴 하지만 그래도,,, 완전 눈에서 꿀 떨어지는 사랑 이야기는 맞다!! 초능력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나와서 유치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재미있었던 연애 소설 <너의 손에 닿았을 뿐>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