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퀼라의 그림자 요다 픽션 Yoda Fiction 7
듀나 지음 / 요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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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블랙핑크나 아이브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면 이런 느낌일까? 거장의 주특기가 마치 성대한 축제처럼 피어나 있는 책이다"

팀을 이루어 악당들과 싸우는 정의의 용사들... 그런데 그 용사들이 마치 팬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아이돌 같다고 할까? 이 연작 소설집 <아퀼라의 그림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그러하다. 우선 이 책에는 각각 6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시간의 흐름이 약간 뒤틀리고 주인공과 화자가 바뀌는 식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아퀼라나 블루 스펙터스라는 이름의 팀을 이루는 이 아이들은 불을 일으키거나 염력을 쓰는 등의 능력이 있고 알파 히어로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아이돌과 비슷하다는 의미가 과연 뭘까?

연작 소설집 <아퀼라의 그림자>의 세계관을 이루는 배경은 대충 이러하다. 과거의 어느 날, 지하철 공사를 하던 대구의 어느 지하에서 프로스페로 생태계라는 것이 발견되면서 엄청나게 퍼져나간 적사병으로 인해 남한 인구 거의 3분의 1이 피를 토하면서 죽는다. 이로 인해서 남한은 전 세계로부터 격리가 되고 보균자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능력 ( 감응력, 염력, 발화력 등등)을 드러내며 알파가 된다. 이렇게 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 중에서 악당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폭주하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지만 ( 늙은이들만을 표적으로 삼는 경우도 있음 ) 그런 악당들의 대척점에서 그들을 막아내고 처단하는 알파 히어로들이 생기게 된다.

이미 남한은 무정부 상태로 보이고 ( 내 생각에는 ) 아마도 폐허가 되었을만한 남한을 이끌어가는 세력들은 알파 히어로들을 보유하고 훈련시키고 그들을 아이돌처럼 만들어서 방송 프로그램과 팬픽 소설까지 만들어내는 K-포스와 같은 회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책과 같은 제목이자 첫 번째 이야기인 <아퀼라의 그림자>를 비롯하여 나머지 5편의 단편들이 누군가가 쓴 팬픽이라고 가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단편들은 이 책 속에서도 캐릭터들이 읽는 팬픽으로 등장한다는 점. 소설 속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 설정이 재미있었다.

라스푸틴이 과연 누구이고 왜 이 일을 저질렀다는 말인가?를 추적하는 게 재미있었던 단편 <아퀼라의 그림자> 어쩌면 라스푸틴의 탄생? 혹은 기원이라고도 볼 수 있을 단편 <마지막 테스트> 대구의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견되었다던 그 프로스페로 생태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단편 <캘리번> 이 단편에서는 아마도 최초의 아이돌 알파 히어로라고 할 수 있을 블루 스펙터스 멤버들의 탄생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또한 적사병으로 죽은 시체들이 갈기갈기 찢겼다가 다시 붙으면서 아나콘다와 같은 괴물이 되는 기괴한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단편 <모두가 세니를 사랑했다>에서는 슈퍼히어로와 슈퍼 악당들의 끝없는 전투라는 틀 안에 갇혀버리게 되어버린 고립된 한국을 위해 희생하는 알파 히어로 세니의 모습이 집중 조명된다.

우리가 보통 "아이돌을 사랑하는 일" 즉 "덕질"에 푹 빠져버린 사람들을 광팬이라 부르지 않는가? 이 책 <아퀼라의 그림자>는 누군가의 광팬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읽는다면 참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계에서 온 알 수 없는 존재가 퍼트린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보균자가 되어 살아남은 능력자들은 "알파 히어로"라는 강력한 집단이 된다. 이들은 악당들을 깨부수지만 동시에 음악에 조예도 깊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도 보유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아이돌스타"라는 사실. 이들은 악당을 무찌르는 동시에 남한을 "고립"과 "격리"라는 지경으로 빠뜨린 프로스페로 생태계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과연 이들은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뭔가 기괴하고 독특하면서도 알록달록한 미래 세상을 보여주는 작가 듀나. 이 책을 읽다 보니 내란 종식을 위해서 컬러풀한 응원봉을 든 이 땅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혼란과 절망을 종식시키는 것은 누군가를 향한, 아니 온 존재를 향한 사랑이라는 사실. 그 사실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간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응원이 보이고 느껴지는 듯한 SF 소설 <아퀼라의 그림자>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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