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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 이경규 에세이
이경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3월
평점 :
"가끔, 사는 것이 농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농담."
아는 연예인은 별로 없지만 나는 개그맨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항상 남들을 웃기려고 노력하기에 가볍게 취급받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남을 웃길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다. 번뜩이는 재치와 창의성이 있어야 하고 내 상황이 어떻든 간에 밝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아무나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욱더 그들을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나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보다는 그 사람이 평소 하는 말이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아주 까칠해 보이지만 실속 있는 뼈그맨 ( 뼛속까지 개그맨 ) 인 이경규 씨를 아주 좋아한다.
이번에 그가 낸 책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은 "이경규"라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잘 보여줬다. 우선 이 분은 "소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영화 제작자로 훌륭하게 변신한다. 107쪽 "소년과 운명의 극장 삼거리"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영화를 보다 잠든 소년 이경규를 찾으러 극장에 오는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124쪽 "복수는 누구의 것인가?"에서는 그가 최초로 만든 무술영화 "복수혈전"과 관계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본인은 아주 진지한 마음으로 만들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가볍지 그지없다. 하지만 이후로도 "복면달호"나 "전국노래자랑"같은 영화를 계속 만들면서 제작자로의 꿈을 지켜간다. 순수한 마음으로 품은 꿈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추구하는 면이 아주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매우 책임감 있고 성실한 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44쪽 "대기실의 침묵"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방송국 대기실에서 너무 조용히 있는 이경규 씨가 냉정하다거나 차갑다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사실 본인은 좀 더 완성도 있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자신의 에너지를 오롯이 방송에 쓰려는 자세가 느껴졌다. 62쪽 " 일본 유학 1년을 빼고는 40여 년간 단 한 주도 녹화를 쉰 적이 없다. 아파도 주사를 맞고 촬영에 들어갔고, 다치면 방송에 지장이 있으니까 위험한 운동도 피했다 " 일을 위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거나 수술도 녹화가 끝나고 나서 했다는 것을 보면 직업윤리가 대단히 높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한 분야의 리더가 아무나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번뜩이는 창의성이나 다가올 미래를 읽는 혜안,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소탈했던 점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TV 프로가 주요 방송국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넷플릭스와 같은 OTT나 유튜브 쪽으로 플랫폼이 옮겨간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젊은이들처럼 재빠르게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면이 이 분을 오랫동안 현업에 종사하게 해 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몰래카메라"나 "양심냉장고"같은 당시 큰 히트를 친 작품들도 이 분이 시작한 것이고 그런 포맷을 가진 프로그램들이 이후에 많이 만들어진다. 정말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많이 하시는데,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참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이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그맨들은 슬프거나 화가 나도 일단 웃음을 만들어내고 보는데, 이경규 씨도 그런 것 같다. 이 책 속에 오래된 친구와 삼겹살을 구워 먹다가 친구가 뇌출혈을 일으켜서 병원으로 달려간 일화가 나오는데, 급박했던 순간을 다룬 이 에피소드에서도 웃음을 뽑아내는 경규 옹. " 참고로 재권이는 내 앞니 두 개를 해주었다. 안동의 어느 치과에 가면 입구에 내 수술 전후 사진이 붙어 있다. 생명의 은인을 홍보에 이용해먹다니. 역시 배신자들은 가까이에 살고 있다." 롱런하는 개그맨, 히트작 제조기, 영화 제작자, 그리고 개버지 ( 강아지 아버지 ) 내가 이경규 씨에게 붙이고 싶은 수식어는 정말 많다. 이 모두가 그의 재능에서 비롯되었기도 했지만 그의 인간성과 성실성도 한몫을 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스태프들이 같이 일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어떤 수식어보다 "진솔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누군가의 이야기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