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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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대한 감정을 한껏 고양시키는 아주 먼 곳의 이야기

사라진 것들을 불러들이는 작가 배리 로페즈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역작

"누군가 달아나려 한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일까?"

뉴욕 타임스, NPR, 가디언 선정 올해 최고의 책인 [호라이즌]을 만나게 되었다. 베리 로페즈라는 작가에 대해서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은 실로 경이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주로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책을 써왔다는 저자는 1986년 [북극을 꿈꾸다]로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책 [호라이즌]은 생전에 마지막으로 집필한 논픽션으로써, 태평양, 갈라파고스, 아프리카, 호주, 남극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지구라는 장소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묘사하면서 그 속에서 살았던 옛 인간들의 삶을 반추하기도 하고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는 문명에 대한 비판도 가한다.

여러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쓴 글이라 언뜻 보면 그냥 여행기 같기도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자연, 역사, 예술, 철학, 음악 등등 실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저자가 매우 박식한데, 그냥 그때그때 저자가 떠올리는 주제로 의식이 흘러간다는 느낌도 있다. 자연을 망쳐놓은 인간의 욕심과 자본주의의 타락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특정 장소의 역사와 관계있는 과거 인물들의 삶을 떠올리기도 한다. 저자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해설이 따라붙는 느낌이라 책을 읽는 내내 자연사 박물관 혹은 전시회에서 작품들을 감상하는 느낌도 있다.

책 [호라이즌]에는 여러 다양한 여행지가 등장한다. 우선 저자 베리 로페즈는 자신의 집 근처인 파울웨더곶이라는 곳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이곳은 태평양으로 약 3킬로미터 정도 뻗어나간 해안 능선이다. 여기서 저자는 18세기 위대한 해양 지도 제작자이자 탐험가인 제임스 쿡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지구의 대양과 해안을 알고자 했던 그의 간절한 열망에 대한 이야기에서 또 자연스럽게 바다의 여러 생물들에 대한 관찰로 넘어가는 저자. 저자는 수천 마리의 바다오리, 쇠가마우지, 아메리카 바다쇠오리 등등이 한가롭게 물속으로 다이빙하고 먹이를 낚아채는 장면을 묘사하다가도 현대의 삶에 도사리고 있는 윤리적 부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자연을 감상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추하는 철학자라고 해야 할까? 의식의 흐름...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다.

파울웨더곶에서 시작된 여행은 이제 북극점에서 660해리 떨어진 스크랠링이라고 불리는 섬으로 이어진다. 한 무리의 고고학자들과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된 저자는 이곳에 살았던 과거 개척자들의 유적지를 탐구한다. 고대 툴레 사람들은 알래스카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개척자들이었고 극단적 환경에 맞서서 싸운 투사와 같았다고 한다. 이후 생물종의 다양성으로 알려진 갈라파고스 제도로 이동하게 되는 저자는 푸에르토아요라라는 지역에서 어안이 벙벙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린다. 389쪽 "1986년 처음 갈라파고스에 왔을 때 나는 새들과 동물들의 다양함과 광범위함에, (...) 기적 같은 그 모든 생명에 너무나 놀라 어리벙벙해진 나머지, 처음에는 이곳에 삶과 죽음이 얼마나 철두철미 긴밀하게 뒤섞여 있는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감탄하는 저자의 모습도 있으나 인간에 의해서 황폐해진 갈라파고스의 이곳저곳이 보이기도 한다.

저자 베리 로페즈는 마치 음유시인이 된 것처럼 노래하듯이 글을 쓴다. 비교적 외딴곳으로 다니면서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역사적, 인류학적인 함의를 매우 의미 있게 담아낸다. 아주 조용하지만 예리한 눈길로 자연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만끽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망쳐놓은 부분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장대하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지구와 자연"이라는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순례하는 한 성인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는 세상을 여행하는 자신의 눈으로 독자들을 직접 초대하여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도와준다. 역사 속 인물들의 업적과 정신을 알려주고 현재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반성하자고 설득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여러 다양한 문화까지 포함하는 장대하면서도 치밀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동물들에 대한 영감과 통찰력으로 가득한 여행기 혹은 철학서를 읽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 [호라이즌]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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