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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우리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살고, 숨 쉬고, 대사 작용을 하는 유기체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장래가 촉망받는 젊은 의사... 그러나 한창 일할 시기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사람의 운명이 한순간에 어둡게 변한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웠던 기억. 그런데 어언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수준이 대단히 높고 필력이 뛰어난 에세이다..라는 느낌이다. 본격적으로 신경외과의 가 되기 전에 학부 과정에서는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했던 저자. 인간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고민을 일찌감치 한 분이었다.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일찍 세상을 떠나야 했던 젊은 의사의 회고록에 가까운 에세이다. 그의 삶 전반을 돌아보고 있는데, 유기체인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명상과 고찰 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너무 바빴던 탓에 자식들과의 시간을 만들지 못하였기에 어릴 적 폴은 의사라는 직업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4학년 때 신경과학 강의를 수강했던 폴은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시설에 들렀다가 "뇌"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는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기로 결심한다.
인간의 "뇌"가 가진 중요성에 주목했던 폴은 신경외과를 전공하게 된다. 이후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가 직면해야 했던 여러 어려움들이나 도덕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딜레마 등이 책에 등장하게 된다. 뇌 수술은 대단히 까다로운 과정일 수밖에 없고 작은 실수에도 환자의 삶 전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폴. 의사도 인간이기에 이런 부담을 내내 느끼며 살아가는 게 힘겨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문학과 철학을 좋아했던 감수성이 예민한 저자가 얼마나 힘겨웠을까? 싶었다. 실제로 의사라는 직업을 아예 그만두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던 것을 보면 죽음과 맞서 싸우는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 자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책의 후반부에는 주인공 폴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되면서 직면해야 했던 여러 어려움들이 등장한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그는 이제 자신의 죽음과 맞서게 된다. 힘든 과정이 끝나고 사랑하는 루시와 행복하게 살 날만을 그려왔는데, 너무 젊은 나이에 찾아온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회한이 많이 느껴진다. 처음엔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치료가 가능한 변이라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루시와 폴은 앞으로 아이를 가지기 위한 과정에도 돌입한다. 힘겨운 치료 과정을 견디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희망과 절망이라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 폴. 점점 평생 사색해왔던 죽음의 존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주인공.....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을 거요. 같은 날, 같은 순간에.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기를 낳고, 빛은 잠깐 반짝이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오지."
이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너무나 일찍 세상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해야 했던 한 의사의 삶을 다룬 에세이이다. 학부 시절에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던 분의 작품답게 굉장히 아름다운 언어로 적혀진 책이다. 환자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의사이지만 순간순간 환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대하면서 그가 느꼈던 예리한 감성이 빛나는 책이기도 하다. 평소에 죽음이 무엇인지 깊이 명상하고 죽음을 삶의 동반자로 여겨왔기에 아마도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저자 폴.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환자들을 위해 죽음에 맞서 싸웠으나 정작 자신의 죽음을 맞이한 아주 모순적인 상황을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보여준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를 많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