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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 호러 × 제주 ㅣ 로컬은 재미있다
빗물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4년 11월
평점 :
이 도서는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제주도 깊은 곳,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섧고 서늘한 기척들
대학교 다닐 때 MT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제주도를 3번 다녀왔다. 그때마다 느낀 건,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게 놀랍고 다행이라는 점. 비슷한 느낌을 가진 일본의 오키나와 섬에도 여행을 가봤지만 제주도의 자연이 선사하는 풍요로움과 편안함은 느끼지 못했다. 단편집 [고딕 X 호러 X 제주]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주 4.3사건이나 이재수의 난뿐만 아니라 일본군의 제주도 점령이나 결 7호 작전과 같은 대중들에게는 다소 덜 알려진 사건들도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제주도라는 한정된 배경을 소재로 쓰인 이야기임에도 굉장히 풍부하고 다채롭게 느껴졌다.
이 단편집에는 총 7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호러, 오컬트, 무속신앙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야기라서,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읽는 내내 공포심도 느꼈지만 북받쳐 오르는 커다란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 4.3사건의 피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한 이야기 [말해줍서]와 일본군 점령 당시의 비극을 낱낱이 고발하는 듯한 이야기 [구름 위에서 내려온 것]에서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피비린내 나는 역사.. 두 번 다시 반복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겼다.
첫 번째 이야기 [말해줍서] 방송 촬영을 위해 스텝들과 함께 고향 제주도로 내려간 방송 작가 수연. 그러나 배에서 내린 후 수연이 한눈을 잠시 팔던 사이 스텝들이 모두 사라지고 웬 꼬마 여자아이가 곁에 있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그녀의 손짓에 가게 된 곳은 어두운 땅굴. 이어지는 사람들의 소곤거리는 목소리와 끔찍한 총소리... 과연 수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끊임없이 몰아치는 흰 손들의 이미지 때문에 소름 끼쳤던 에피소드. 우리는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세 번째 이야기 [청년 영매_모슬포의 적산 가옥] 귀신을 볼 수 있는 청년 인우에게 제주도 한 달 살이를 내려온 누나가 심상찮아 보인다. 누나와 인우가 함께 머물고 있는 오래된 적산가옥은 일본이 남기고 간 잔재이다. 부동산에 집에 대해 알아보려고 간 인우는 돌아오던 길에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듯한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는 애기업개에 관련된 전설 이야기를 들려주며 적산가옥에 붙어있는 부적을 떼라고 말한다. 그런 뒤 누나가 다케모토와 함께 2층에 있는 끝없는 시공간에 갇혀있다는 이상한 말을 전달하는데... ------- 빙의와 전생 그리고 민속 설화 등을 아주 절묘하게 잘 버무려놓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현생은 아주 오묘하게 전생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전하는 듯.
이외에도 [구름 위에서 내려온 것]은 일본군의 만행에 분노한 용왕님이 직접 제주도에 납신 것 같은 무시무시한 느낌을 전달해 주었고, [너희 서 있는 사람들]은 섬에만 내려온다는 인신공양과 같은 미신들의 실체를 보여주는 듯했다. [등대지기]는 내가 생각했던 추리가 들어맞아서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이 땅의 청년들이 겪는 불안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여 좀 씁쓸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 고딕 X 호러 X 제주는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땅이 품고 있는 우리 조상님들의 피와 눈물을 매우 개성 있는 이야기들로 보여주고 있다. 머리끝을 쭈뼛 서게 하는 공포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만이 알 수 있는 풍부한 정서를 전달해 준 덕분에 독서 내내 상당히 즐거웠다. 제주도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단편소설집 [고딕 X 호러 X 제주]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