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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위로 -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
곽미성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평점 :
낯선 외국어가 일상의 언어가 되기까지
혼란과 매혹 스무 해의 기록
다른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시지프스 신화 속의 시지프스가 하듯, 매번 굴러내려오는 돌덩이를 꼭대기로 다시 올려보내는 것과 같다. 어제 분명히 외운 단어가 오늘 생각이 안 나고 아무리 공부해도 내가 만들고 싶은 문장은 혀끝에서만 맴돈다. 수년을 공부해도 모르는 게 또 생기는 외국어 학습... 그러나 이런 힘들고 지난한 과정도 극복하게 만드는, 우리를 매혹시키는 외국어는 분명히 있다. 그렇기에 오늘도 어떤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외국어 학원으로 향하거나 온라인 강좌를 듣는 게 아니겠는가?
이 책 [언어의 위로]는 영화 공부를 하러 프랑스에 갔다가 현재 그곳에서 2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곽미성 저자의 에세이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성인이 된 후 시작하게 된 프랑스어 학습의 어려움, 한국와 프랑스의 문화 차이 그리고 프랑스 언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과 같은 주제들을 아주 섬세하고 관찰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프랑스라는 생소한 문화권에서,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어를 공부해가면서 저자가 겪게 되는 좌충우돌이나 실수담 등도 재미있었다. 언어를 습득해가는 와중에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던 저자가 프랑스인에서 더 나아가 세계인으로 확장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또한 재미있었다.
저자가 굉장히 분석적이고 섬세해서 그런지 이 책에는 특히 공감되는 에피소드나 발췌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던 것 같다. 31쪽 "모름을 인정할수록, 모른다고 이야기할수록 더 알게 된다. 의심과 모호함이 가득 찼던 머릿속은 선명해졌고 몰랐던 프랑스어 표현들, 단어들도 그 단계에서 많이 배웠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고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게 부끄러운 일. 진실을 털어놓는 순간 우리는 해방된다. 42쪽 "세상의 소리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자꾸만 물속으로 들어가던 그때의 마음을 기억한다." 낯설고 이질적인 언어와 24시간 함께한다는 게 어찌 보면 굉장한 고통이었을 것 같다. 저자의 심적 고통과 비로소 물속에서 느낀 평안함이 보이는 대목이었다.
이 책은 저자의 일상 경험을 다루기도 하지만, 번역과 통역 일을 하셔서 그런지 언어 그 자체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36쪽 [정확한 행복을 말하기까지]에는 프랑스어 발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우리말에 없는 발음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저자의 동그란 입술이 보이는 듯하고, 학교 복도에서 "바지"를 외치며 달려가는 대학생들의 뒷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숫자 78을 말할 때 60에 18을 더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셈법과 명사나 형용사에도 남성형, 여성형을 적용시키는 프랑스어에 피곤해하는 저자의 찡그린 얼굴도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맛깔스러운 반찬처럼 맛있게 다가온다.
삶을 사랑하고 프랑스어도 너무 사랑하는 저자 곽미성씨의 에세이 [언어의 위로]는 한마디로 언어가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언어에는 그걸 쓰는 사람들의 정신과 그 나라의 문화가 담겨 있다. 특정 언어를 쓰면서 우리는 틀을 만들어가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틀에 자주 갇히게 된다. 어느덧 20년째 프랑스어를 하면서 프랑스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자가 문득 스스로가 보통의 한국인과 얼마나 동떨어져있는지를 발견하는 대목에서 뭔가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어떤 언어보다도 어렵고 까다로운 프랑스어는 저자 곽미성씨를 힘들게도 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운데 그녀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인 해방감마저 느끼게 된다. 땅에 단단히 발을 딛고 홀로 서 있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달까? 책의 표지에 나온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라는 말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깊이 있는 에세이 [언어의 위로]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