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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
김진성 지음 / 델피노 / 2024년 9월
평점 :
"이 제품은요. 몸속에 있는 알코올을 완전히 분해해 줍니다.
그것도 10분 만에."
표지에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한 남자가 있지만 그의 존재감은 강렬하다. 온통 어두컴컴한 표지처럼 이 소설 [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는 시종일관 다소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음주 운전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생기긴 했으나 우리는 여전히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사건에 비해,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이 소설은 비극적 사건 이후 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음주 운전을 가볍게 생각하는 무리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말을 하지 못하기에 수어를 써야 하는 주인공 정인. 그러나 그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알모사 10이라는, 다소 정체가 의심스러운 제품을 팔기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영업을 뛴다. 강신 기업교육센터에 소속된 주인공 유정인은 산업 안전 보건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별 필요도 없는 강의를 하러 다닌다. 그리고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5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하기에 회사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인의 강의를 듣고 그가 홍보하는 제품의 소개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2세트에 100만 원이나 하는 제품을 사려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정인은 한 달 내내 영업 꼴찌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인은 고심 끝에 정면 돌파를 하기로 결심하고, 정 나노테크놀이라는 회사가 회식을 하는 자리로 강의를 하러 간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이 회사에서도 사람들은 대충 강의만 듣고 제품 구매는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회사 사장인 정인환은 대놓고 정인에게 모욕을 주지만,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알모사10의 샘플을 두고 오는 정인. 한 달 후, 여전히 정인은 실적을 올리지 못한 상태였으나 갑작스럽게 누군가의 전화를 받게 된다. 통화의 주인공은 바로 정 나노테크놀의 사장인 정인환이었고, 얼마 전 알모사10 샘플 덕분에 음주단속에 걸릴 위험을 피하게 된 그는 정인을 통해 많은 양의 알모사10을 주문하게 되는데.....
소설 [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는 음주 운전 교통사고로 가족 전부를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정인 외에도 형사인 한결과 일반인 민준의 이야기도 살짝 등장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 책에서 중요한 인물은 바로 정인이다. 그는 원래 대학원생이었으나 가족을 잃은 이후로 죽은 동생 정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정윤이가 다니던 교회인 새순결장막교회라는 곳에도 다니게 되고, 그가 하던 일인 숙취해소제 알모사10의 영업을 다니게 된다. 처음에는 수어를 사용하는데다가 영업에도 서툰 듯한 정인이 고전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점점 단골 고객을 확보하게 되면서 승승장구하게 되는 정인.
전도 유망했던 대학원생이었던 정인이 갑자기 영업사원으로 변모하려 했던 정확한 이유가 뭘까? 단지 너무 일찍 그리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동생을 추모하기 위한 마음에서였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대해 정인이 느끼는 강한 불신감, 절망, 허무함 등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을 비극으로 몰아넣는 세상... 그에게는 부조리의 극치가 아닐지.. 정인과 그의 직장동료들이 파는 제품이 너무 엉뚱해서 오히려 정인이 세상에서 느끼는 부조리함을 더욱더 부각시키는 듯했다. ( 똥을 안 싸도 되게 해주는 약, 알코올을 10분 만에 분해시켜주는 약 등등 ) 사막같은 건조한 얼굴과 싸늘한 눈빛을 가진 듯한 정인이 가진 계획이 과연 뭘까? 여전히 멈추지 않는 음주 운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을 음주 운전을 양심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한 흥미진진한 추리소설 [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