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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4년 9월
평점 :
저마다의 세계 앞에 놓인 종말을 견뎌내고
무사히 미래에 다다르는 것
세상 모든 소녀들을 구해낸, 작지만 분명한 기적의 순간
세상의 종말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종말을 맞이하면 내가 속한 이 세상도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법. 그러나 불교에서 이야기하듯,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윤회와 전생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죽음과 재탄생을 거쳤고 따라서 수없이 많은 전생들은 현재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소설 [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의 주인공 재이는 약간 다른 죽음과 전생을 거치게 된다. 재이는 채 어른이 되기도 전에 갑자기 그녀의 세상이 종말을 맞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반복적으로 전생을 가지게 되는 케이스이다. 너무도 특별한 아이 재이,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재이의 생과 사는 마치 이음새가 있는 동그라미였다. 이음새 구간을 지날 때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런가 하면 소영의 인생은 재이라는 동그라미를 훌라후프처럼 허리에 두른 직선이었다. 세상이 박살 났다 재조립되는 동안 그녀 홀로 머나먼 어딘가를 향해 뚜벅뚜벅 늙어갔다. "
재이의 인생은 특별하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벌써 똑같은 인생을 몇 번이나 거쳤다. 할머니가 아이를 부주의하게 데리고 노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서 죽은 순간부터 시작해서, 엄마 은혜 씨가 동창생과 바람을 피우며 한눈을 파느라 수영장에 빠져 죽기도 하고 실패자가 된 아버지가 집에 불을 질러서 죽기도 한다. 언제 죽을지 아예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 발생하기 전에 누군가 경고를 한다거나 아니면 괴물이 나타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시공간의 뒤틀림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닥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재이는 아직 어린아이지만 벌써 인생 몇 회차를 거쳤기에 마치 어른 같은 행동과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재이의 종말과 재탄생은 재이 인생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상한 인연법으로 인해서 아동 심리 센터를 운영하던 소영쌤도 재이의 인생과 같은 패턴을 겪게 된다. 말하자면 재이 인생이 종말을 겪게 되면, 소영의 인생도 다시 리셋된다는 사실. 그러나 재이가 완전한 죽음과 탄생을 겪는 것에 비해, 소영은 나이를 먹은 채로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게 된다. 말하자면 30대 중반의 몸으로 20대로 회귀한다는 것,,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심리 센터를 통해서 재이가 바로 소영의 종말을 일으키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일종의 동맹을 맺게 된다. 소영은 어떤 희생을 해서라고 재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재이는 소영을 위해서 그 어떤 힘든 인생이라도 버텨내기 위해, 그리고 죽음의 전조를 알아내어 막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어른이 되기도 전에 재이는 여러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고 또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부모의 학대, 방임, 불륜 그리고 가정불화 등으로 상처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하는 재이. 너무나 외롭고 힘든 삶이 아닐 수 없다. 소영의 삶도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었지만 재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은 리셋되고, 그녀는 나이만 먹은 채 다시 새로운 세상으로 회귀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서로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위로가 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살다 보면 가장 상처를 주는 사람이 혈육일 경우가 많고, 오히려 사회에서 만난 낯선 이들이 도움을 주거나 애정을 베풀어주고 관심을 기울여주는 경우가 있다. 재이와 소영의 끈끈한 우정 그리고 연대 의식은 냉혹한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안겨주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유를 모른 채 삶을 반복하는 재이와 소영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서로에 대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돌봄이 기적을 불러올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한 소설 [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