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트리플 26
단요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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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과 비정형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 속에서

재조립되는 기술문명과 인간의 내면

3편의 sf 장르 단편이 실린 단편소설집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을 읽었다. 3편 모두 개성 가득한 (?) 디스토피아가 제시된다. 의식만 남은 어떤 존재가 인간의 뇌에 심어놓은 칩을 이용해서 마치 자기의 몸인 양 타인을 들락날락한다. 전쟁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파괴하고 절망으로 몰아넣지만 애초에 그 전쟁의 필요성은 과연 누가 결정했던 말인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은 어쩌면 모종의 큰 흐름, 거대한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한 저자.

첫 번째 작품인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과 두 번째 작품인 [제발!]은 일단은 논리적인 구성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서사 구조가 뚜렷하게 보이고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도 크게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세 번째 작품인 [called or uncalled]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인 글인데, 뭔가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 주인공은 제약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인해 몸을 잃게 되고 "의식"을 가진 뇌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돈과 권력이 있는 까닭에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컴퓨터 안의 인공 지능처럼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를 통해 서긴 해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했기에 몸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주인공,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몸이 있을 때 느꼈던 감각.. 그 감각이 너무나 고팠던 그는 자신이 후원했던 한 고아원의 원생의 의식 속으로 드나들게 되는데.... ( 예전에 뇌만 남은 사악한 과학자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그때 느꼈던 섬뜩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악하고 심심한 인간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듯 )

[제발!] 세상은 두 개의 큰 연방으로 나누어져 계속 전쟁 중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전쟁에 참여했다가 다리 한쪽을 잃었는데, 누나는 전쟁 영웅인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게 되면서 적국인 뉴멕시코 연방으로 가서 살게 된다. 누나의 소식에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후 가문이 점점 몰락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누나에게서 편지와 수표가 날아오지만 주인공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것들을 버린다. 그런데

누나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리는 부고장이 날아오고 주인공에게 누나의 유산을 상속받으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 세상은 음모이론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게 다 거짓이고 정신병자들이 하는 말일까? 평범한 인간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 질서를 편성하는 거대한 힘이 작동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한 이야기 )

[called or uncalled]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가 집에 돌아오게 된 주인공. 심각한 조울증 증세 혹은 조현정동장애 증세로 인해서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의 이런 현실이 세상에서 제일 정신병자 같았던 그를 유일한 정상인으로 되돌려놓게 되는데.... ( 주인공은 천재 혹은 정신병자?? 그는 현실을 환상처럼, 환상을 현실처럼 경험한다. 주인공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고 시간의 흐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국가는 무너지고 그가 내뱉는 말들이 마치 메시아의 메시지처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데.. )

내가 SF 장르를 읽을 때, 특히 집중하여 찾아보는 게 현실과의 접점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SF 작가들은 장르소설의 외피를 두른 작품 안에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풍자 그리고 통찰력이라는 요소들을 이루어낸다. 3편의 소설 모두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긴 했지만, 특히 첫 번째 소설 [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은 이상한 섬뜩함을 안겨 준다. 돈과 권력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가 뭐든 좌지우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을 내어준다. 인간은 잘못을 반복하고 기술의 발전은 그러한 결함 있는 인간의 결함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굉장히 참신하고 독특하게 다가왔던 소설집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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