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녕가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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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핏줄을 타고 흘렀던 강렬한 노래의 선율

그리하여 한국 현대 가요사의 첫 길목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내가 직접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 책 [화녕가]를 통해서 아주 뼈저리게 간접적으로 느꼈다. 실로 오랜만에 책을 읽다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내가 "우리 민족" 중 하나로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조상님들의 처절한 희생 덕분이라는 것... 물론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우리 민족의 안녕을 위해서, 모진 고통을 당하고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싸운 분들이 계셨다는 것... 이 책 [화녕가]를 통해서 나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였던 시절, 11세의 인서는 진주에서 존경받는 양반의 손자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인서가 아직 아기였던 시절 그를 버리고 어딘가로 도망가버려서 현재 행방불명인 상태이다. 인서에게는 인예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는데, 그들은 할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 된 젊은 서씨 부인의 손에 길러졌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서씨 부인은 유독 인서를 미워하고 인예만 예뻐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만약에 인서가 잘못을 저지르는 날에는 행랑 아범의 볼기짝이 터지는 날이다.

헌병대장 스바로의 아들 킨타로는 일본 아이들을 위한 학교에 다니기가 싫다. 일본 아이들은 몰려 다니며 서로에게 이지메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의 아이들은 들풀만 가지고도 서로 잘 어울려 논다. 킨타로는 그런 이유로 조선인들과 섞여 살고 싶어한다. 그러던 어느날, 킨타로에게

불쑥 왕사탕을 내밀려 친근감을 표시한 인예. 그날부터 인예는 킨타로에게 있어서 달콤한 왕사탕을 나눠준 소중한 친구가 된다.

한편, 화녕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탓에 어릴 적부터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유행가를 불러왔다. 인서는 어릴 적부터 그런 화녕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그녀를 마음 속 깊이 담아둔다. 이 책은 아직 조선이 일제 치하에서 풀려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주인공들이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일본이 전쟁을 거듭하면서 권력을 잃어가는 시점, 즉 그들이 젊은이가 되는 시절까지를 다 담고 있다. 주인공은 물론 화녕과 인서이지만, 인예와 나중에 현성으로 이름을 바꾸는 킨타로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이 책은 화녕과 인서의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긴 하나, 큰 주제로 볼 수 있는 것은 "나라 잃은 민족" 과 그들을 위해서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도 오직 독립을 위해 싸운 우리 조상님들이다. 이외에 재미를 주는 요소로는, 인서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인데, 한마디로 나중에 비밀이 다 드러나는데 완전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킨타로가 조선과 조선인들을 너무 좋아해서 아예 이름을 현성으로 바꾸고 끝까지 화녕과 인서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실제로 핍박받는 조선인들을 위해 이렇게 노력한 일본인들이 있지 않았을까?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씨 부인과 인예의 강한 질투, 시기 등을 지켜보면서 문득 대하소설 [토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토지]도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 최씨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루지 않았던가? 당시 우리 나라, 즉 조선은 여자들의 독립이나 사회 진출이 용이하지 않았기에 그녀들의 추악한 면모도 이해가 가긴 갔다. 물론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은 "화녕과 인서"의 독무대라고 보면 된다. 양반이면서도 잘난척 하지 않고 민초들에게 골고루 은혜를 베풀었던 인서. 한국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그처럼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착하고 어진 양반들이 많이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뜨겁고도 차가운 여인, "화녕"...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천황에 대한 만세를 외쳐야만 했던 그녀... 아마도 같이 죽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남긴 유언 때문에 죽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지.... 한마디로 너무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거의 몇 시간을 이 책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길이가 너무 짧았다는 것. 아마도 작가님이 결심만 하신다면 대하드라마로도 뽑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던 소설 [화녕가]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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