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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여자, 축구 - 슛 한 번에 온 마을이 들썩거리는 화제의 여자 축구팀 이야기
노해원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6월
평점 :
환갑 넘어서도 축구하는 게 꿈인
시골 언니들의 유기농 축구
예전에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여자 축구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잘하는 팀도 물론 있었지만 패스는 번번이 실패하고 크기가 작은 골대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골키퍼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던 그때, 뭔가 내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축구에 웃고 우는 그녀들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느낌? 승부에 상관없이 팀 동료들을 아껴주고 챙겨주는 마음과 일단 시합이 시작이 되면 목소리가 쉴 때까지 소리치며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 열정. 그 프로는 여자 축구는 재미없다는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바꿔주었다.
이 책 "시골, 여자, 축구"는 제11회 브런치 북 대상 수상작이다. 사실 나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축구라는 주제 때문에 이 책에 끌렸다기보다는 무려 대상을 받은 책의 내용과 작가의 글솜씨가 궁금했다. 그런데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나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벌어지는 여자들의 짜릿한 한판 승부가 전달하는 쏠쏠한 재미에 그만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실제로 축구를 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은 그야말로 땀내 나고 열기를 뿜어내는 축구 경기 한복판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쓴 저자 노해원씨는 무려 세 아이의 엄마이다. 효율적으로 집안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헐레벌떡 축구를 하기 위해 뛰어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처음에는 축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람들과의 사랑과 우정을 키우기 위해서 더욱더 축구에 매진하게 된다는 그녀. 그런데 코치가 축구팀을 창설하게 된 계기도 재미있었다. 배낭여행을 하다가 문득 남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던 민달팽이 코치는 어느 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라는 책을 읽고 지역 여성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밴드를 통해 사람들을 모은다. 작은 동네에서 만들어진 축구단이라 팀원들을 비롯하여 경쟁 상대까지 30분 안팎의 지역에서 산다는 재미있게 다가왔다.
[시골, 여자, 축구]에는 축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저자의 모습이 담겨 있기에 어찌 보면 성장 스토리 같기도 했다. 축구를 하기 이전에는 "해원"이라는 이름의 개인으로 머물렀다면 어느덧 한 축구팀의 팀 플레이어로 자라난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반반 FC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한 축구팀의 주장이자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을 가진 선수인 저자. 처음에는 축구공만 따라다니고 냅다 소리만 지르던 초보 선수였지만 조금씩 자기 포지션에 맞게 사고를 하고 점점 더 거친 플레이에 익숙해져가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하는 즐거움이라는 비밀을 알아버린 고수가 보인다고 할까? 축구를 통해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진한 우정에 물들어버린 듯한 저자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 같이 뛰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과 느리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우리 팀에 대한 믿음, 그리고 언더독의 반란을 보여 주고 싶은 전투적 심리. 우리는 돈도 없고 승부욕도 없지만 우리만의 색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 54쪽-
"그동안 나는 운동장에서도 내 삶에서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그저 나 혼자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축구도 세상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83쪽-
나는 이런 이야기가 참 좋다. 축구를 응원하는 예쁜 미녀를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승부에 웃고 우는 진정한 여자 축구 선수들의 이야기라서 좋다. 점점 파편화되고 개인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함께 하는 삶, 진정한 사람 냄새를 팍팍 풍기는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다. 그리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일을 하면서 성장해나가는 건강한 사람의 이야기라서 좋다. 또한 글이 재치가 있고 유머감각이 살아 있다. 어른들의 달리기를 "마치 등에 돌을 묶어 놓은 사람처럼" 뛴다고 묘사한 문장을 읽고 나의 달리기도 꼭 그렇게 뒤뚱거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나 싶어서 순간 실소를 금치 못했다. 비록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지만 좌절하고 이기면서 남다른 삶을 살아나가는 저자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순간 치열하게 승부하고 웃고 우는 감동적인 여자 축구 선수들의 이야기 [시골, 여자, 축구]
*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