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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것들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26
기에천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6월
평점 :
"그 순간부터 시작된 거야. 이토록 작고 귀여운 나를 향한 세상의 잔혹한 박해기."
공장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인형들을 보고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소설 [귀여운 것들]에 나오는 인형들은 하나같이 오래되고 기형에다가 인간의 배설물을 모아 만든 좀 이상한 것들이다. 설상가상으로 세상에 제대로 속하지 못한 이들은 버려지고 납치되어 학대까지 당하게 된다. 가혹하고 잔인한 인간 세상을, 다소 비정상적인 존재들의 눈으로 본 소설 [귀여운 것들]
까만 눈동자, 분홍빛 코, 그리고 파란 털을 가진 귀여운 토끼 인형 깔랑. 한때는 주인의 따뜻한 품 속에서 천국을 누렸던 깔랑.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장식장 위에만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주인인 이희지가 점점 나이를 먹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면서 깔랑에게 더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 그러던 어느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어선 후 자고 있는 이희지에게 걸어간 깔랑. 눈을 번쩍 뜬 이희지는 괴물이 되어버린 깔랑을 들고 밖으로 나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던 온통 검은 빛깔의 여인에게 깔랑을 건네준다.
두려움과 분노에 몸을 떨던 깔랑. 인형이 도착한 곳은 어느 어두운 방 안이었다. 거기서 그는 눈알, 귀, 등짝 등등 조각조각 난 인형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고 곧이어 덩치가 큰 지점토 인형도 발견한다. 지점토 인형은 검은 여자에게 엄마라고 애교를 떨며 매달리지만 검은 여자는 들고 있던 돌망치로 그것을 아주 세게 내리친다. 산산이 부서져 거의 가루가 된 지점토 인형은 다시 검은 여자의 손에 의해 원래 모습으로 반죽이 되지만 눈, 코, 입의 위치가 엉망이 된다.
그래도 좋은지 연신 웃으며 깔랑을 의자에 묶고는 초록빛 나는 인형을 데려다가 송곳으로 찌르는 등 온갖 호러쇼를 펼치는 지점토 인형. 죽었구나 싶었던 깔랑 앞에 손이 4개 달린 그로테라는 인형이 나타나서 깔랑을 구해주지만 알고 보니 이것은 함정?! 검은 여자의 학대를 받는 지점토 인형이 또 다른 학대를 펼치는 와중에 과연 깔랑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토이 스토리의 잔혹 버전이라고 하면 될까? [귀여운 것들]에 나오는, 이제는 별로 귀여워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손이 4개가 되어 폐기처분될 뻔 했다가 살아남은 그로테, 이희지에게 다가가려다 버려진 토끼 인형 깔랑, 검은 여자가 예뻐지기 위해서 스스로 만들어낸 지점토 인형. 일종의 연작 소설인 책은 각 이야기에서 이들이 어떻게 가혹한 세상을 헤쳐나가는지 보여준다. 고독사, 아동 학대, 불법 수렵 등등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한 소설.
팀 버튼 감독이 쓴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이 [귀여운 것들]을 읽다 보니 그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을 읽고 우울에 빠져서 정말 곤란했던 기억이 난다. 이 [귀여운 것들]은 그 책에 비하면 덜 음울한데 그 이유는 약자에 해당하는 인형들이 뭉쳐서 서로를 구해내는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학대가 학대를 부르고 폭력이 폭력을 낳는 과정이 묘사되지만, "악에서 구한 내 친구들"이라는 제목도 어울릴만큼 뭔가 귀엽고
씩씩한 소설이기도 하다. 책 소개에서 보니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가 생각난다는 말이 있던데 딱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귀엽지만 잔혹하고 뭔가 기괴한 분위기가 내내 흐르는 소설 [귀여운 것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