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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평점 :
열다섯, 앞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앞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왜 하필 내가? 왜 내 인생만 이 지랄이지?!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라 생각했다.
저자가 겪어야 했던 그 '지랄맞음'의 정체가 궁금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잔을 들고야 말겠다는 저자의 굳은
의지가 느껴져서 읽고 싶었던 책이다.
독서를 시작했을 때, 몇 줄 읽지 않았지만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책이 올해 내가 읽은 책 베스트 3 중에 하나가 될 거란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남들에게 추천할 바로 그 책!!!
솔직히 처음에는 읽기가 좀 힘들었다. 너무도 격한 감정이 몰려와서
몇 번 책을 덮었다. 슬픔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분노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앞날이 창창한 15세 소녀에게 닥쳐온 불행. 저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인해 앞으로 천천히 시력을 상실할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
딸의 질병을 인정하기 싫었던 어머니에게 붙들려서
사이비 종교단체 같은 곳에서 이상한 치료를 받는 대목에서 진짜 묘한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머니의 처절한 절망을 느꼈다고 할까?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모정이란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식에게는
두 눈을, 걷지 못하는 자식에게는 다리를 뽑아서라도 주고 싶어 하는 법.
그러나 저자는 툭툭 털고 일어나 마사지사라는 직업도 가지고
삶을 의미 있게 살아내고 있다. 이 책에는 그녀가 마사지사로 일하면서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들과 시력 상실 이후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서 경험했던 일들
그리고 시골에서 살았던 가족들과 이웃들 그리고 친구들과의
재미있기도 하고 파란만장하기도 했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가 진짜 글을 너무너무 잘 쓰신다. 내가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게
너무 죄송할 정도.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글들이다. 나에게 이런 여동생이 있다면
매일 전화해서 그날의 에피소드를 들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몇 가지 마음에 남았던 에피소드를 들어보자면
첫 번째는 같은 장애를 가진 몇몇 친구들과 함께 했던 대만 여행 이야기.
낯선 장소에서 낯선 바람을 맞아가며 아이스크림도 먹고
고궁박물관 견학도 하면서 여행을 만끽하는 모습에서 자유와 해방감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다. 남다른 친절함과 배려심으로 저자에게 감동을 안겨줬던
가이드 아저씨에게 나도 같이 감동했고.
두 번째는 [노루를 사랑한 아저씨]에 나오는 에피소드.
공공장소에서 읽었는데,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박장대소할 뻔했다.
그 정도로 너무 웃겼다. 장애인 학교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인데
동심 파괴를 막으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노루를 만들어낸 학급 친구였던 아저씨의 노력이 가상했다.
나는 저자의 솔직함이 너무 좋았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들에게 냉정해지는 것을 감추지 않았고
선하지만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에게는 불편하다고 말하는 저자.
장애를 향한 세상의 꼬인 시선과 받아들일 수 없는 동정심에
확실하게 선을 긋는 면도 좋았다.
말하자면 타인과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든지 응원하고 싶고
앞으로도 책을 계속 출간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었던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