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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ㅣ 레이디가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월
평점 :
아무리 한 분야의 전문가라도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면 일이 쉬워지고 익숙해지면서, 판에 박힌 틀 혹은 정형화된 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 추미스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마음은 아직도 젊은 것인지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듯하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하게 된 "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라는 단편 소설집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시 " 하이쿠 "를 바탕으로 미미 여사가 쓴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번에 하이쿠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이 짧은 문장에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가 압축되어 표현된다니 이 어찌 신기하지 않을 수가.
이뿐만 아니라, 이 책은 앞으로 출간될 " 레이디 가가 시리즈 " 중 한 권이라고 한다. 각 무대마다 새롭고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이 어마어마한 가수 레이디 가가. 마치 그녀처럼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미지로 미스터리 소설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고 하니, 너무 반가운 소식이다. 이 책에는 총 12편의 하이쿠를 제목으로 가진 단편들이 실려있는데, 미유키 작가가 문인 친구들과 모여서 만든 BBK ( 노망 방지 가라오케 ) 모임에 속한 사람들이 하이쿠를 짓고 그에 따라 미유키 작가가 제목에 어울리는 단편 소설을 지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대단히 신선하고 창의적인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첫 번째 단편 " 산산이 지는 것은 여물고자 함이니 복사꽃 "에서 일찍이 남편 쇼조를 떠나보낸 아키코 여사는 딸 미쓰하를 고생시키는 사위 유이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백화점에서 열리는 그림책 원화전을 보러 간 아키코 여사는 사위 유이치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되는데...
-- 남편 없이 혼자 애써 키워 딸이 시집가서 고생만 죽어라 한다면 엄마의 기분이 어떨까? 백수인 사위 놈은 바람까지 피운다. 엄마는 속이 타들어가지만 정작 딸 미쓰하는 속으로 엄마 아키코가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비난하는데... 복사꽃이 지는 이유는 열매를 맺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며 딸에게 시간을 주는 아키코 여사의 뒷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 이와사 아키코는 울지 않았다. 아직 딸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으니까. 서랍은 열세 단, 인생은 길다 ."
세 번째 단편 "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에서 미노리는 언니 노리카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을 눈치채게 된다. 외모나 스타일이 조금씩 바뀌는 언니를 보면서 남자 친구가 언니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라며 안심하고 있던 그때,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 제목을 봤을 때 늑대 인간이라도 나오는 이야기인가? 했는데 늑대 인간보다 더한 괴물이 등장한다.
역시 인간이 제일 무섭다.
" 나는 달님의 한탄을 들었다. 이 빛으로도 정화할 수 없는 게 있단다. 미안하구나 ."
네 번째 단편 " 장미꽃잎 지는 새벽 두 시 누군가 떠나네 "에서 주인공 미에코는 자꾸 선을 넘는 남자 친구 게이타의 행동을 견딜 수가 없다. 미에코에게 술집에서 일하라고 권유하는 등, 더 이상 그의 행동을 참을 수가 없었던 미에코를 게이타를 멀리하고 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미에코는 게이타와 그의 친구들에게 납치가 되는데....
--- 어떻게 이 하이쿠만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지을 수가 있을까?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원령이라던가 잔류 사념 등과 같은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장르의 이야기라서 더 재미있었던 듯. 제일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 그랬구나. 그것은 그녀의 작별 인사였던 것이다. 가버린 것이다. 가야 할 곳으로 ”
각 12편의 단편은 계절을 상징하기도 하고 SF, 호러, 판타지 등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편집자의 후기를 듣고 나서 다시 찾아보니까 확실히 그 패턴이 뚜렷하게 보이는 듯하다. 단편들의 특징인 짧지만 강렬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다. 우리가 ( 여성으로서 ) 현실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내용들이라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슬펐다가 분노했다가 소름을 느끼면서 머리끝이 쭈뼛서는 경험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각 단편을 읽기 전에 읽었던 제목과 이후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상이 다르다. 좀 더 강렬하고 풍부하게 다가온다고 하면 맞을 것 같다. 완성도도 높고 장르적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작품집을 읽어서 너무 행복했다.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작품을 미미 여사가 들고 나올지 정말 기대가 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