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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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된 별종 현대인들을 위하여

무라타 사야카가 전하는 별난 디스토피아

인간, 지구, 미래를 둘러싼 기발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들

무라타 사야카 작가의 소설집 "신앙"은 6편의 단편소설과 2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평소에 내가 편견이 없고 열린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작가의 소설은 많이 색달라서 좀 당황스러웠다. 예를 들자면, 자신이 주문 제작한 클론에 의해서 지배받는 주인공의 모습과 생존율이 좀 낮아서 스스로 문명을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가는 야인이 되려는 모습 등등이 보인다.

묘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평소에 느끼며 살았던 "이상한 절박함" 과 공명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일이나 가정에서 힘에 부치는 상황이 생기면 나 자신을 쪼개고 싶다, 라는 생각이나 그냥 산에 들어가서 나무뿌리나 캐먹고 살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들을 읽는 내내 굉장히 독특하구나..를 연발하면서도 작가와 깊은 공감을 느꼈다.

표제작 "신앙"은 대체적으로 가벼운 느낌이지만 믿음이나 상상의 세계와 단절되어버린 불쌍한 현대인들을 비꼬는 둣 하여 재미있었다. " 신앙" 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믿어야 생기는 법. 주인공 "나가오카"는 놀이공원에서 쓰는 머리띠 하나를 두고도 가성비를 논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인간이다. 어찌어찌하여 명상과 요가를 통해 초현실적인 체험을 한다는 단체에

들어가게 되지만, 모두들 깊은 "트랜스 의식" 상태에 빠져있는 가운데 혼자 처량하게 " 내 돈 돌리도!" 를 외친다. 참으로 불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 깊었던 작품은 "생존"이라는 단편인데, 소득에 따라 생존율이 정해지는 미래 사회를 보여준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은행에서 근무하는 남자 친구 하야토의 생존율은 A, 반면 직업이 변변찮은 주인공 구미는 생존율이 C이다. 생존율보다는 사랑을 선택했기에 지금까지는 관계를 지속해올 수 있었지만 둘이 자녀를 가지게 된다면 자녀의 생존율이 15%로 떨어지게 된다는 말에 구미는 하야토를 놓아주기로 마음먹게 되는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자꾸만 묻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그녀처럼 야인이 되기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모든 것이 소멸되어가는 세계에서 마치 바이러스처럼 "생존율"만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 같아서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허무해짐을 느끼는 주인공 구미.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생존 경쟁이라는 레이스를 달리고 있지 않은가? 알게 모르게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고 "야인"을 선택한 구미를 보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 고양이도 바퀴벌레도 인간도 다 멸종한 세계의 허공에 '생존율'만이

살아남아 존재하는 거야. 눈에는 보이지 않는 대량의 '생존율' 바이러스가

이 별의 진짜 지배자인 거지. 지구의 생물이 멸종한 후 다른 어떤 생물이 와서 이 별에서 생활하든 모두 '생존율'에 지배되고 통제당하다가

결국 멸종하는 거야. 그 반복이 아닐까 싶어서." -79쪽

무라타 사야카가 그려내는 디스토피아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살짝 꼬집고 뒤집고 비틀어서 굉장히 독특하게 그려낸 세계이다. 위의 두 작품뿐 아니라 복제한 다른 자신들과 책임을 나누고 사랑하고 싸우기도 하는 단편 "쓰지 않은 소설"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나 싶도록 기발했다. 독특함과 기묘함 안에 깊은 허무함과 절망감을 안고 있는 듯한 단편 소설집 "신앙" 뭔가 새로운 SF 물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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