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든 회사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도시 전설]같은 괴담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니만큼 우리는 그런 조직에서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된다. 특히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타협하기 힘든 인간관계를 겪거나 말도 안 되는 업무를 떠맡게 되면서 일종의 트라우마를 안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 -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 느끼는 미움이나 혐오, 부당한 업무나 대우에 대한 분노 등등 - 이 켜켜이 쌓이면서 괴담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주제와 소재로 무장한 신선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안전가옥 출판사. 이번에는 마치 유령처럼 회사들을 떠도는 괴담 이야기인 [오피스 괴담]이라는 옴니버스를 출간했다. 이 책에 실려있는 5편 모두가 으스스하고 소름 돋는 이야기라 좋았지만 특히 예스러운 고택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그린 최유안 작가의 [명주 고택]과 빨리빨리를 외치다가 망해버린 것 같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듯한 전혜진 작가의 [컨베이어 리바이어던]이 마음에 남았다. 특히 [컨베이어 리바이어던]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악몽 같은 현실을 고스란히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다 읽고 나니 먹먹한 느낌마저 들었다.
첫 번째 단편 [오버타임 크리스마스]는 작은 패션 회사 [포커온]에 입사하게 된 한 신입사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입사원 유수빈은 대충 돌아가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동료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그녀를 왕따시킨다. 회사에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편의점에서 알게 된 추락 사건과 아무리 삭제해도 사라지지 않는 회사 메신저 속 'AKSTP'이라는 아이디... 엉망진창이지만 유일하게 야근 금지라는 장점이 있는 이 [포커온]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두 번째 단편 [명주 고택]은 고즈넉한 고택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다룬다. 덴마크 여왕이 방한하게 되고, 경북도청 문화관광부 소속 주인공 은희는 고택 방문 행사를 맡게 된다. 행사 장소를 찾지 못해서 쩔쩔매던 가운데, 한 미스터리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 은희. 추천받은 명주 고택이라는 곳에서 의전을 담당할 업체를 심사하게 된다. 업체 [다미마이스]와 [라이프 커뮤니케이션]의 발표를 듣고 난 후 그녀는 소름 끼치는 전화를 받게 되는데....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다가 갑자기 서늘하게 바뀌는 게 마치 한겨울같이 느껴졌던 작품.
[행복을 드립니다]와 [컨베이어 리바이어던]은 각각 싱글맘이 직장에서 겪게 되는 고충과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서 달리는 듯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둘 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야기라 크게 마음에 와닿았다. [오피스 파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둡고 기괴해서 좋았던 것 같다. 결국 남들을 쓰레기로 취급하는 "내" 가 가장 큰 쓰레기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불 밖은 고생이라더니, 졸음과 교통지옥을 뚫고 도착한 곳엔 [오피스]라는 전투지가 우리를 기다린다. 이런 상황에서 괴담이 만들어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닐까? 직장이라는 기묘한 곳에서 살아남았거나 지금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묘한 이야기 [오피스 괴담]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