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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고 바라옵건대 ㅣ 안전가옥 FIC-PICK 7
김보영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평점 :
안전가옥 출판사의 신작 [원하고 바라옵건대]는 상상 속의 동물인 신수를 주제로 쓰인 다섯 편의 이야기를 묶은 앤솔로지이다. 국어사전을 뒤져보니 "신수"란 신령스러운 짐승인 용, 봉황, 해태, 주작 그리고 현무 등등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현실에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으나 유물이나 전래 이야기 등을 통해서 가끔 볼 수 있는 신수는, 동물이지만 신묘한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 이 책 [원하고 바라옵건대]는 각각 백호, 용, 맥, 진묘수 그리고 곤을 주인공으로 이색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과연 이 신비로운 존재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 후보에 올랐던 김보영 작가가 쓴 첫 번째 이야기 [신군의 계절]은 고구려의 역사를 바탕으로 꾸며진 이야기이다. 동천왕의 어머니인 후녀와 산군 백호와의 묘하고도 질긴 인연을 다루고 있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려진 후녀는 우연히 산군 백호의 눈에 띄게 된다. 배고팠던 산군의 먹잇감이 될 뻔했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 후녀. 훗날 성인이 된 후 왕에게 간택이 되지만 왕과 왕후의 권력 싸움에 놓이게 되면서 병사들에게 쫓기게 되는 후녀. 그때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산군 백호였다.
두 번째 이야기 [용아화생기]는 가뭄에 시달리는 한 마을을 위해 희생하는 청년 규와 용이 되기 바로 직전의 상태인 용아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오랜 시간 수련을 했으나 승천에 계속 실패하는 용아.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머무르는 용소에서 물을 길어 마을로 나르는 규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호통을 쳤으나 점차 순진무구한 규에게 마음을 뺏겨서 계속 그를 도와주는 용아. 태어난 곳을 이해한 후에야 비로소 허물을 벗고 날아오른다던 반룡의 이야기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규로 인해 삶을 이해한 후 용아는 비로소 용으로 화생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이야기인 [맥의 배를 가르면]이 제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월간지 기자인 주인공이 기사를 찾아헤매다가 맥에게 꿈을 빼앗겼다는 몽상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주인공인 "나"는 몽상가들과 함께 동물원에 침투하고 나쁜 꿈을 잡아먹은 맥의 배를 갈라 꿈을 현실에 풀어놓는데 성공하게 된다. 소설을 읽고 있는데 눈앞에는 화가 달리가 그린 초현실적인 그림들이 두둥 떠올랐다. 몽상가들은 그들이 꾸던 말도 안 되는 꿈을 현실에 이루지만 현실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데....
네 번째 이야기 [죽은 자의 영토]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현대로 온 것 같아 재미있었고 마지막 이야기인 [달팽이의 뿔]은 이 거대한 우주 속 먼지 한 톨에 불과한 "나" 란 존재를 다시 일깨워주는 듯한 이야기였다. 서양에서 "신"이라고 하면 멀고 먼 곳에 있는, 매우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동양의 "신수"들은 인간 가까이에 머물며 살아간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이 책 [원하고 바라옵건대]에 등장하는 신수들은 오래된 시골 마을이나 허름한 슈퍼마켓 등에서 머물면서 인간과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즉 신수라해서 인간들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게 아니라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혹은 가까운 이웃처럼 그려져서 더욱더 좋았던 것 같다. 신비하지만 동시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던 책 [원하고 바라옵건대]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