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일 블루 아이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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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나 내면에는 가장 추악한 귀퉁이일망정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루이스 베이어드 장편소설 [페일 블루 아이]는 1830년대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 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하고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주인공인 은퇴한 경찰 거스 랜도가 유명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를 자신의 조수로 삼아서 사건 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오~~~ 고딕 문학의 대가인 포가 엽기적인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으로 등장하다니.... 벌써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배경으로 깔리는 느낌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해서 좀 찾아보니 1830년대에 실제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이런 살인 사건에 휘말린 적은 없겠지만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소설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미 육군 사관 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서 프라이라는 이름의 생도가 나무에 목을 매단 채 발견된다. 겉으로 봐서는 명백한 자살.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사후에 누군가가 시체의 심장을 빼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살인 사건으로 전환된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 학교에서 일어나다니... 세간의 이목이 두려웠던 웨스트포인트 측은 조용히 이 사건을 처리하길 바라는데, 뛰어난 수사 능력으로 뉴욕시에서 명성을 떨쳤던 은퇴 경찰 거스 랜도가 이 사건을 조사할 사람으로 선택된다.

거스 랜도는 수사를 하던 중 매우 지적이고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사관생도 포를 만나게 된다. 그의 관찰력과 추리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랜도는 비밀리에 그가 수사를 도울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한다. 시체를 발견하였거나 프라이와 방을 함께 썼던 생도를 면담하고 프라이 옷 속에 있던 쪽지와 그의 일기 등을 샅샅이 조사하는 거스 랜도. 그는 의도가 불순하거나 다소 종교적인 성향을 띤 단체에 프라이가 속해있었을 거라는 단서를 얻게 된다. 한편 에드거 앨런 포는 번뜩이는 재치도 있지만 가끔 그가 써내는 시가 사건 추리에 도움이 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러주는 시를 받아쓴다는 이상야릇한 이야기를 하는 포. ( 내 생각에 인간의 무의식은 부지불식간에 많은 것을 알아내기에 포의 무의식도 의식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건을 파악했는지도 모르겠다 )

" 웅장한 시르카시아 숲 한복판에서

하늘로 검게 얼룩진 개울 안에서

하늘에 할퀴어 달빛이 산산이 부서진 개울 안에서

아테나이 나긋나긋한 처녀들은

살랑거리며 순종을 표하고

그곳에서 나는 외롭고 다정한 리어노어를 만났노니

구름을 찢어발기는 울부짖음의 손아귀 안에서

처절하게 괴로워하며 나는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도다.

옅은 파란색 눈을 한 처녀에게

옅은 파란색 눈을 한 악귀에게 "

- 169쪽 -

분명 랜도와 포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조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하고 그들은 범인을 찾아낼 결정적인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런데 프라이가 시체로 발견된 지 얼마 안 되어 또 다른 생도가 비슷하게 사망한 채 발견된다. 그는 밸린저라는 생도인데, 바로 포와 얼마 전에 격투를 벌인 생도였다. 포는 한 사관생도의 누나와 사랑에 빠졌었고 밸린저도 그녀를 흠모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상하게도 살인 사건을 둘러싼 여러 정황들이 범인이 바로 "포" 임을 가리킨다고 할까? 그렇다면 정말로 랜도는 진범을 옆에 두고 사건 조사를 해왔던 걸까? 포가 범인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시체를 난도질하여 심장을 강탈해간단 말일까?

[페일 블루 아이]는 굉장히 매혹적이고 독자들을 단번에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황량하고 어두운 19세기 미국의 지역과 배경을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그가 살아생전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하게 해주는 면도 있는 듯하다. 미스터리한 죽음이 발생하고 노련한 탐정과 그의 충실한 조수가 있다는 점에서 정통 탐정물같이 느껴지는 소설이지만 포가 써 내려간 시와 연애 이야기하며 뭔가 고전 문학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사실 영상으로 옮기면 더욱더 고딕 스릴러의 맛이 느껴질 수도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가 죽고 하나 있는 딸마저 떠나버린 쓸쓸한 랜도와 단체 생활에 제대로 적응 못해서 술로 마음을 달래는 연약한 자아의 포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게 신의 한 수!!

도무지 사건 해결은 눈에 안 보이고 웨스트포인트 측은 더 이상 랜도에게 수사를 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그때, 소설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사실 소설 중간중간에 약간의 떡밥은 있긴 했으나 ( 포가 쓴 시도 한몫을 함 )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결말이 등장한다. 포가 쓴 여러 편의 시와 랜도가 웨스트포인트에서 겪게 되는 여러 우여곡절에 대한 사소한 묘사 때문에 전개가 다소 느리게 느껴졌던 [페일 블루 아이] 그러나 마지막에 소름 끼치는 결말로 인해서 모든 이야기가 다 설명되니 모든 독자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으라고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재미있었던 소설 [페일 블루 아이]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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