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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의 품격
김희재 외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3년 11월
평점 :
드라마가 가진 힘이 있다. 특정 드라마에 빠져서 울고 웃다 하다 보면 어느새 거친 현실을 마주할 에너지가 비축됨을 느낀다. 특히 "토지" 나 "허준" 같은 대하드라마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막장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뭘까? 음식으로 치면, 평소에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다가 가끔 맵고 짜고 단, 혀끝을 감싸고도는 그런 음식을 먹고 싶은 이유와 비슷할까? 아니면 인간에게는 남의 불행이나 범죄를 지켜보고 비난하거나 단죄하고픈 욕망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소시민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드라마 주인공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4인의 작가가 모여 만들어낸 소설 [막장의 품격]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 혹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형식을 띄고 있다. 우선 큰 틀에서는 주인공인 스타 작가 윤정과 베테랑 PD 민호의 일과 사랑 이야기겠지만 ( 정확히 말하면 불륜 ), 그들이 함께 손을 잡고 기획해 내는 3편의 막장 드라마가 소설 속 이야기로 실린다. 따라서 [막장]이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총 4편의 작품이 실린 앤솔로지라고 보면 되겠다. 지금 당장 TV 드라마로 빚어내도 좋을 만한 완성도 있는 이야기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초보 방송 작가 시절, 지민호 PD의 리드 아래 대본 집필을 배웠던 윤정. 그녀가 쓴 드라마 몇 편이 큰 흥행을 거둔 탓에 윤정은 흔히 말하는 스타 작가가 되었다. 특히 민호와 함께 했던 작품이 대박을 터트리며 그들은 환상의 콤비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던 사살이 있었으니... 유부남이었던 민호와 윤정은 몰래 사랑하는 사이였고, 지금은 잠시 결별한 상태. 드라마 제작을 핑계로 민호가 다시 윤정을 만나려고 시도하는 것일까? 어쨌든 환상적인 콤비 윤정과 민호 외에 초보 작가 재범과 영지도 참여해서 기획한 3편의 막장 드라마! 과연 어떤 막장이 펼쳐질 것인가?
[이야기 하나, 남자를 나눠가진 여자들] 주인공 추예지는 자신의 게임회사 경영을 맡은 대표 수호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결혼 약속까지 하게 되지만 알고 보니 수호에게는 예지 외에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자신의 바람을 들키고도 너무나 당당한 수호를 보며 예지는 엄청난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데... [이야기 둘, 안 되는 거 없고, 못 하는 거 없는 '막장 조작단'] 5년간 사귄 남자 친구 민우가 한 병원의 부원장 아들이었고 정아는 그의 엄마, 명숙에게서 민우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남자친구를 구하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 분하기 짝이 없는 정아. 그녀는 우연히 수호가 이끌고 있는 방송 제작사 "막장 조작단"을 알게 되고 그들은 함께 거대한 복수극을 연출하게 되는데... [이야기 셋, 귀혼] 대기업인 대원그룹에 합격하여 대원 백화점 대표 정광현의 수행비서가 되는 추예지.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광현이 의식을 잃게 되고 대원 그룹의 회장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과 지위를 약속하며 예지에게 광현과의 영혼결혼식을 올릴 것을 종용하게 되는데...
훈훈하기 그지없는 가족 드라마를 봐도 될 텐데, 막장 드라마에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우리의 심리는 과연 뭘까?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안정된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써 어느 정도 욕망을 억눌러가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막장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마치 사회 속 소속감이나 지위가 원래부터 없는 냥, 낯부끄러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나의 욕망을 대신 저질러 준다는 면에서 우선 끌리지만 결국 막장 드라마는 권선징악이라는 룰을 철저히 지킨다는 면에서도 끌린다. 악인들은 처벌을 받고 선한 자들은 결국 승리를 한다는 게 막장 드라마의 기본 룰이다. 그런 면에서 막장 드라마는 시청자들과 적절한 밀당을 하다가 막판에 사이다를 안겨준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민호와 윤정이 힘을 합친 팀은 3편의 드라마 대본을 쓰게 되지만, 결국엔 방송국 국장에 의해서 제작이 거절당하게 되는데... 과연 제작에 들어가게 되는 대본은 무엇? 윤정과 민호의 불륜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막판에 이어지는 예상 못 한 반전 덕분에 ( 선택되는 대본, 윤정의 사랑 ) 더 재미있었던 소설 [막장의 품격]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