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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리플리 ㅣ 리플리 5부작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평점 :
인간은 소망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우리는 화려한 삶을 동경하고 부러워하지만 " 나 "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인지하고 살아가기에 그럭저럭 결핍을 견뎌내며 살아간다. 그러나 가끔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그들이 머리가 좋고 대담하기까지 한다면 인간 사회에서 금지하는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정상인 듯 정상 아닌, 광기로 가득 찬 남자 " Mr. 리플리 " 가 그러했다.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의 주인공 톰 리플리는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청년이다. 평소에 세금과 관련된 소소한 사기를 쳐가며 아슬아슬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거의 대부분이 넘어간다. 그러나 재능이 아무리 있다 한들, 톰은 매일 자신을 짓누르는 가난과 삶에 대한 불안 탓에 숨 막힌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중년의 남자로부터 추적을 당하는 톰 리플리. 자신의 범죄를 알고 쫓아오는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그는 디키 그린리프라는 청년의 아버지였고, 유럽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아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와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톰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건실한 청년이라는 이미지메이킹에 성공한 리플리. 자신의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부유한 그린리프 씨에게서 든든한 자금 지원을 받아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다. 유럽에서 디키를 만난 리플리는 자신의 매력으로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다고 생각했으나 유럽을 떠날 생각이 없는 디키 탓에 그가 꿈꾸고 계획했던 안락한 생활은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막다른 골목에 놓이게 되면서 견딜 수 없는 초조함에 시달리게 된 리플리... 디키를 죽이고 자신이 디키가 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재능 많은 청년 리플리를 생각하면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1인 연극을 완벽하게 해내는 배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나"라는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 리플리는 관계 맺기를 꺼려 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연기를 지켜봐야 하는 관객에 불과한 것. 실제로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리플리는 디키를 연기하다가 디키가 되는 꿈을 꾼 뒤 실제로 디키가 되어버린다.
또 하나의 이미지는 다양한 가면을 가지고 다니는 마술사.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극도로 꺼리는데 비해서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 후 그들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는 리플리. 어떤 상황이 와도 그는 품 속에서 가면만 꺼내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원하는 가면을 그때그때 써가며 살아가는 리플리.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최근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 인물이 생각났다. 재벌 혼외자에 여자와 남자라는 성을 그때그때 갈아탈 수 있는 사람. 리플리와 그녀 혹은 그는 정말 재능 있는 사람들이다.
살인을 하고, 그 살인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리플리. 그리고 거짓말과 임기응변으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처해가는 리플리. 그의 삶은 영원히 안정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창조한 연극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 불안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자신의 매력발산으로 넘기고 나면 내일 또다른 태양이 뜰 거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리플리를 보며 내가 불안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리플리의 완전 범죄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