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24
민지형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4월

누구나 흑역사라고 할 수 있을,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되도록 그런 기억들은 떨쳐버리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이 책 [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두고 상반된 선택을 하는 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기억이란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에 선택하는 자에게 달려있긴 하지만 만약 범죄 사건 등에 얽힌 기억이라면? 공적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억이라면? 아마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기억을 스캔해서 저장한 뒤 실제처럼 체험할 수 있는 기계인 " 라이프 랜드스케이프 " 를 두고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사건과 그 사건에 얽히는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 [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부잣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재이. 지루함을 참을 수 없어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재이가 그래도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부자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머물고 있는 성북동 타운하우스에서의 삶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60대의 늙은 대저택 주인이 한번씩 사모님이 없는 틈을 타서 재이를 은근하게 추행하는 것을 빼놓고는 사건이 전혀 없다 시피 한다.

그러던 어느날 사장님은 TV에서 호라이즌 사의 신제품 "라이프 랜드스케이프" 라는 기계의 광고를 보고는 당장 구입한다. 사용자의 뇌 속 기억을 스캔해서 그것을 다시 현실처럼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주는 기계라고 했다. 사모님과의 달콤했던 연애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다시 체험해 보고 싶었던 걸까? 기계를 구입한 후 사장님은 혼자 쓰는 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사장님이 떠올린 기억이 너무나 궁금했던 재이는 그가 하와이로 골프 여행을 간 틈을 타서 몰래 기계를 사용하게 된다. 부자들의 삶이 고작 이것 밖에 안되는 건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사장님의 기억들. 실망한 재이는 이제 이 집을 떠날 때가 온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런데 종종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를 사장님 몰래 사용했던 사모님의 상태가 이상해지고 있음을 눈치챈 재이. 그녀가 손을 써보기도 전에 사건이 발생해버린다. 사모님이 중식도로 사장님을 잔인하게 난도질하고는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대체 " 라이프 랜드스케이프 "에 담긴 비밀이 무엇일까?

한편, 호라이즌 사의 총수인 노아는 비서실장 태오를 통해서 딸 리사가 수행해야 할 미션을 전달한다. 성북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이후 사라져버린 라이프 랜드스케이프. 그것을 가지고 튄 듯한 입주 가사도우미를 찾으라는 명령이었다. 언론과 대중은 호라이즌 사가 개발한 라이프 랜드스케이프가 인간의 뇌와 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호라이즌사를 고발하겠다고 난리법석이다. 리사는 싸구려 모텔에 묵고 있던 재이를 찾아서 기자회견 때 해야 할 말과 경찰 앞에서 해야 할 말에 대한 연습을 시킨다. 결국 재이의 완벽한 연기와 암기 덕분에 살인 사건과 라이프 랜드스케이프와의 연관성은 완전히 지워지게 되고 기계의 판매고는 살인 사건 이전에 비해 더욱더 올라가게 되는데......

기술의 발전을 생각해 봤을 때 앞으로 이런 미래가 반드시 오리라 생각된다. 뇌 스캔 기술이 발달하고 가상 현실이 더욱 더 탄탄하게 구축이 되면 나의 기억은 물론 남의 기억도 마치 내것처럼 경험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 같다. 그런데 만약에 그 기억이 누군가의 잘못을 드러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잘못을 한 자가 돈과 권력이 있는 상류층이라면? 그럴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이 책 [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이 잘 그려내고 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을 지우는 작업을 한다. 역사 교과서를 제멋대로 편찬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기억이라는 게 굉장히 취약하고 거짓 기억과 진실된 기억을 분간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기억 조작을 하려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진짜 기억이 필요한 시점이 있는 것 같다. 기억을 불러내어 현실처럼 체험하게 하는 기계 " 라이프 랜드스케이프" 그들은 과연 그것을 통해 무엇을 불러냈고 무엇을 경험했던 것일까?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