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리트의 껍질
최석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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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는 몽상의 세계를 잘 표현해낸 화가로 유명하다. 인간의 잠재의식을 파고들어 자아를 탐험하게 만들도록 자극하는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마그리트의 껍질" 인가했는데, 다 읽고 나니, 책에 정말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인간의 본성을 첨예하게 파고든다는 면에서 심리 분석서처럼 느껴지는 "마그리트의 껍질".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자아를 깨닫게 만드는 마그리트의 그림들처럼, 주인공 강규호가 꾸는 악몽들은 그가 본인 스스로에 대해 뭔가 깨닫도록 계속 신호를 준다. 꿈이 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과연 뭘까?

CCTV 설치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 강규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다리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된다.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2년 동안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린 그는 심리 치료를 위해 찾아간 정신 병원에서 역행성 기억 상실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다른 기억은 모조리 남아 있는데, 하필이면 왜 사고가 있기 전 2년 동안만 몽땅 사라진 걸까?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와중에, 그는 화장실 벽에 감추어진 한 여성의 사진과 금고를 발견하게 되는데, 사진 뒤에는 자신의 필체로 " 뒤를 조심할 것 "이라는 문구가 적혀져 있다. 미스터리한 금고와 그것보다 더 미스터리한 사진 뒤의 문구... 이 두 가지가 과연 주인공 강규호의 잃어버린 2년을 되찾아줄 것인가? 강규호, 그는 과연 누구이고 그를 공격한 자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 책 "마그리트의 껍질" 은 인간의 본성, 즉 그 어두운 심연을 파고드는 소설이다. 겉으로 보기엔 주인공의 자아 찾기 혹은 그를 몰래 뒤따르며 위협하는 무리들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소설은 그보다 더 분석적이고 깊이 있게 인간을 통찰한다. 마치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사회에서 잘 교육받은 친절하고 예의 바른 시민의 겉모습 뒤에 감추어진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원초적인 무의식에는 뭐가 있을까?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서 악하게 길러지는 걸까? 혹은 그 반대일까? 등등을 다양한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소설이 묻고 있다. 주인공 강규호가 만나는 정신과 의사가 분석한 비정상적 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강규호의 연인 차수림이 좋아하는 하드보일드 공포영화 속 잔인한 장면들을 통해 이 책은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의 본질은 뭔가?

소설은 이야기 내내, 주인공 강규호가 거대한 음모의 덫에 갇혀있다는 떡밥을 던지지만, 사실 음모와 관련되어 보이는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펼쳐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금씩, 천천히,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주인공의 숨통을 조여오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래서인지 소설 내내 불안감과 긴장감이 팽배하다고 느껴졌다. 예를 들자면, 평범하고 친근하게 다가왔던 주변 인물들, 편의점과 책 대여점 사장님의 친절했던 눈빛이 어느 순간 그를 감시하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해있고, 일하러 가던 도중, 도로 위에서 운전 시비가 붙은 사람들과 무기를 든 채, 살벌한 대치를 하기도 한다. CCTV를 설치하러 간 집의 고객은 열받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골프채를 휘두르며 갑질을 해대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회사 상사는 갑자기 살기를 띈 채 주인공 강규호를 대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낯선 얼굴의 한 남자가 그를 계속 미행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누구이고 왜 강규호를 미행하는 것일까? 내면으로는 끊임없는 악몽 그리고 밖으로는 지속적인 위협, 이 위험천만한 나날 속에서 주인공 강규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굉장히 감각적이고 신선하지만 동시에 매우 소름 끼치고 그로테스크하다고 느껴졌던 소설 "마그리트의 껍질". 인간들이 내면 깊은 곳에 감추어놓은 폭력성과 광기를 증명해 내려는 것 같기도 하고, 행하려는 "힘" 과 막으려는 "힘" 사이에 보이지 않게 벌어지는 팽팽한 대립 구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거대한 미로 속에 갇힌 듯한 강규호가 비상한 머리와 엄청난 독서량 덕택에 얻은 지식을 이용하여 조금씩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는 것을 보는 것이 대단히 재미있었다. 그의 무의식은 꿈속 이미지와 같은 매우 추상적인 단서도 놓치지 않고 사건 해결에 다가간다. 주인공 강규호가 가진 유난히 밝은 회색의 눈동자가 발산하는 싸늘함과 황폐함,, 피와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신봉하며, 그런 그림들을 그려내는 그의 연인 차수림... 그 두 신인류에 대한 보고서 같은 책이 수상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이 책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건 사실 강규호의 이야기도 아니고 차수림의 이야기도 아닌, 독자 바로 당신의 이야기라고.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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