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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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우리집에 지옥이 세들어 왔다 ”


방이 차고 넘치는 큰 주택의 주인이라고 상상해보자. 경제는 불황이고 거의 폐가가 되기 직전인 쓰러져가는 집에 들어오려는 세입자는 눈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럴 때 월세 떼먹고 도망갈 염려없는 다수의 세입자가 들어온다면? 모두가 반길 상황이지 않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세입자들은 원래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고 가야할 죄인들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 지옥이 요새 리모델링하느라 죄인들 둘 데가 모자란대서 빈방이랑 남는 공간 빌려주기로 했다. 아까처럼 죄인들 좀 오갈 거야. 함부로 문 열면 험한 꼴 본다 .”


2021년 제 1회 K-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를 읽었다. 리모델링으로 방이 모자라 더 이상 죄인을 수용할 수 없는 지옥에 월세를 내준다는 아주 참신하고도 독특한 설정으로 무장한 소설이다. 되도록 내 삶에서 멀리 떨어져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무시무시한 지옥도가 집안에서 펼쳐지는데, 이상하게도 주인공 서주와 할머니는 별 반감없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생전 자신이 남긴 음식 쓰레기를 꾸역꾸역 먹는 형벌을 받은 죄인, 달군 철판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거나 줄톱 그물이 떨어지는 순간 살보라가 날리고 거기에 대항하겠다고 자신의 뼈로 무기를 만들어 저항하는 죄인들, 생전에 구업을 지었는지 자신의 혓바닥으로 밭을 가는 형벌을 받은 죄인들 등등등 다채로운 벌을 받는 죄인들의 모습이 이방, 저방, 보일러실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 우주가 나 대신 복수해준다니, 좋잖아.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위한 지옥을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까? 어디의 누구일지는 모르겠지만 소용없어요. 내 지옥은 여기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 서주의 지옥은 그녀가 딛고 선 현실, 바로 여기이다. 함께 사는 할머니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손녀. 다른 가족의 존재는 보이지 않고 그녀가 의지하는 사람은 바로 할머니 뿐이다. 업둥이를 조건없이 키워줄 만큼 따뜻한 사람이긴 하지만 욕쟁이라 불릴 만큼 할머니는 무뚝뚝하고 서주에게 거친 말을 내뱉기 일쑤이다.


예전에는 떵떵거리고 살았을 법한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현재 문은 삐걱거리고 방에는 먼지와 곰팡이가 그득하며 지옥 소속인들 외에는 세입자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할머니의 두 아들 중 장남은 기둥 뿌리 뽑아서 도망갔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둘째 아들은 그 존재를 잊을 만하면 나타나 얼마 남지도 않은 할머니에게 손을 벌린다.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삐걱대는 할머니와 더 삐걱대는 집,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서주는 외롭기만 한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달콤한 미숫가루를 타주고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주는 남자가 생겼다? 그는 바로바로바로 지옥의 대장, 악마이다. 끝이 뾰족한 꼬리와 두 개의 앙증맞은 뿔을 가진 그는 분명 악마인데,, 왜 그녀에게 이토록 친절한 걸까? 다른 이의 감정, 그 다채롭고도 변화무쌍한 감정을 즐기고 먹고 사는 듯한 이 악마, 혹시 매일 매일 서주가 경험해야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반한 걸까? 어울리지도 않게 달콤하기 그지 없는 악마와 세상의 온갖 걱정을 다 끌어안고 사는 듯한 여주인공 서주의 달콤살벌한 연애 이야기가 시작되려는걸까? 그러나 그는 분명 악마인 것!!! 서주에게 접근하는 그의 의도가 매우 불온해보이기까지한데....

로맨틱 판타지 스릴러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은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였다. 설정도 독특했지만 여주인공과 할머니의 티키타카가 재미있었고 예상을 훨씬 벗어난, 젠틀하기 그지 없는 악마의 존재가 재미를 더하였다. 지옥은 말그대로 무시무시했으나 그가 타주는 미숫가루와 만들어주는 죽은 엄청나게 맛있고 달콤하였으니.... 뭔가 색다른 소재의 책을 찾는 독자가 있으면 꼭 소개해주고 싶은 책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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