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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고개 비화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평점 :
영혼을 짓누르는 원초적인 공포!
비밀의 문이 열리고
사상 최악의 악마들이 몰려온다
SF 와 호러가 만나 매우 독창적인 세계관을 담은 작품이 탄생했다. 이 [외눈 고개 비화]는 만약 조선에도 인간 사회에 섞여 살아가는 외계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으로 시작된 소설인 것 같다. 그러나 주제는 흥미진진할지 몰라도 내용은 공포 그 자체이다.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외모를 가진 원린자들이 파괴와 죽음을 숭상하며 잔혹하게 인간들을 해하는 장면을 보면 머리칼이 쭈뼛 서고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뭐랄까? 독자들의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세계와 이질적 존재에 대한 일종의 로망이 있고 다소 엽기적이고 잔인한 장면에 반감보다는 반가움을 느낄 독자들이라면 너무나 좋아할 책이랄까?
이 책은 소개 글에 살짝 나온 조선 러브 크래프트 코즈믹이라는 장르에 속한다. 미국의 호러/위어드 픽션 소설가인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들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책 속에 나오는 가상의 예언서 [귀경 잡록]은 러브 크래프트가 탄생시킨 가상의 서적 [네크로노미콘]과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조정은 비밀스럽게 미래를 예언하는 [귀경 잡록]이 삿되다 하여 이를 금서로 지정했지만 이 서적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백성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육십오능음양군자>라는 절대신의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힘에 대해 경고한다. 이 책 [외눈 고개 비화]는 이 책 [귀경 잡록]에 나오는 <육십오능음양군자>의 부하들인 원린자들이 어떤 식으로 평화로웠던 조선과 조선 백성들을 유린하고 난도질하는지 보여주는 증언이라고 하겠다.
태산이 무너지는 기운과 함께 나무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산악이 거대한 움직임으로 뿌리를 드러내며 회전했다.
인고의 세월 끝에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된 비천자들의 흥분은 격렬했다.
그들은 공격적이고 반골이던 본래의 기질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이제 세상은 최악의 위기에 놓였다.
첫 번째 소설인 [외눈 고개 비화]는 섭주 현의 사또인 "나"의 친구가 무려 40년 동안 실종 상태였다가 갑자기 나타난 지점에서 시작된다. 불운으로 인해 감옥에 갇혔던 친구 정겸은 조정에 반감을 품은 한 장군의 말을 듣고 가공할 공격력을 가진 무기를 구하러 외눈 고개로 향한다. 그러나 외눈 고개는 수백 년 전 조선의 장군인 박고헌과 전투를 벌이다가 사라진 원린자들이 만들어낸 이계의 공간!! 그로테스크한 외모에 파괴 본능만 도사린 외계 존재인 비천자들과 그들이 만든 이계 세상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정겸과 장군 무리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지만 정겸이 이계에서 보낸 하루는 어느새 40년이 넘어 있었고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살아남은 비천자들의 조선 파괴 욕망은 더욱더 커져있다는 사실인데....
▶ 40년간 실종되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친구가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며 이 나라가 위험에 처해있다는 경고를 날린다. 과연 그가 경험한 것은 현실인가? 정신적 이상으로 인간 환각인가? 악귀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괴물들이 득시글대는 세상에서 공포스러운 하루 혹은 40년을 보낸 한 남자의 이야기!
육십오능음양군자는 우주의 기운을 지배하는 자다!
너희처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은 물론, 100 년 전의 나에게도 생명을 주신 분이다.
그분이 바로 천지신명이란 말이다! (...)
이제 곧 알게 될 거다. 이제 곧 후회하게 될 거다.
나의 경고를 무시한 너희 미련한 것들!
이제 잔혹하게 처단 받을 것이다.
두 번째 소설 [우상 숭배]는 비리와 수탈을 일삼다가 함경도 함흥이라는 외지로 발령이 난 조정 대신 권윤헌의 이야기이다. 그는 관노인 바우와 함께 첩첩산중을 헤매다가 마치 원시 종교를 연상하게 만드는 열두 채의 움집을 발견하게 된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압도된 그는 움집들 옆에 있던 한 오두막집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조정에서 금지한 사특한 책인 [귀경 잡록]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삿된 책들의 존재에 놀란 것도 잠시, 여섯 개의 눈알이 달린 기괴한 탈을 쓴 낯선 남자가 도끼와 사냥한 노루를 들고 그들에게 다가오는데...
▶ 한번 쓰면 죽기 전까지 벗을 수 없는 탈과 밭에서 자라는 식인 식물들이라는 기괴한 설정에 소름이 돋았던 에피소드. 앞서 [외눈 고개 비화]에서도 느꼈지만 원시 부족의 습성을 가진 원린자들은 아주 기괴하고 기묘한 형태로 인간을 지배하고 파괴한다. 이 소설을 읽으니 육십오능음양군자의 존재가 더욱더 미스터리하게 다가왔다. 혹시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외계에서 온 존재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
이 [외눈 고개 비화]를 읽는 내내 여러 영화들이나 미드들이 떠올랐다. 엽기적인 외모를 가진 외계 종족들이 소개되는 장면에서는 [제5원소]가 떠올랐고 그들이 만들어낸 음산하고 칠흑같이 어두운 이계 세상을 봤을 때는 미드 [기묘한 이야기]도 떠올랐다. 전체적으로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만든 영화들 - 판의 미로, 헬 보이 등등등-이 떠올랐달까? 사실 소설보다는 웹툰이나 영화로 제작되면 공포가 더 실감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도 흥미진진하지만 그로테스크한 외모의 원린자들과 어둡고 축축하고 음산한 이계 세상이 너무나 잘 표현되었기 때문에 영상미가 남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 물론 그 영상미에 대한 해석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말이다) 평온한 삶을 뒤집고 파괴하는 원린자들, 신비롭고 강력한 힘을 잔혹하게 사용하는 절대신의 존재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들을 보며 두려움과 동시에 이상한 환희도 느껴진다. 마치 고대 문명의 제사장과 부족들이 잔인한 신을 향해 올리는 제사와 제물들을 보고 온 느낌이 든다. 뭔가 기괴하고 낯설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이 책으로!!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